20년간 실패한 사업 또 추진...원격의료 정의·허용 범위·의료사고 책임 등 불분명
편의 내세우며 '약품 배송' 배제 모순...주관부처 '중소벤처기업부' "의료를 산업으로만 봐"
중소벤처기업부가 강원도에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의료계의 반발과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의료계의 반대로 기존 보건복지부에서 시도했던 원격의료 사업 확대를 중소벤처기업부를 통해 우회 추진하는 꼼수를 썼다는 점과 강원도 사업 추진 경과에 따라 사업 확대의 길도 열어놨다는 점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부는 24일 현행 의료법상 금지돼 있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강원도에 한해 규제특구 사업 일환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강원도 격오지 만성질환자 중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1차 의료기관에서 원격으로 모니터링 및 내원 안내, 상담·교육, 진단·처방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원격 진단과 처방은 방문간호사 입회하에 허용하고, 조제약 역시 방문간호사 등을 통해 전달하도록 했다.
소식이 의료계에 알려지자, 즉각적인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경기도 A원장은 "정부가 결국 원격의료라는 댐의 둑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데 원격의료를 보건복지부가 아닌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추진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가 의료를 산업으로 보는 시각을 방증하는 것이다. 2년 추진한다는 데, 2년 후에 참여 환자 만족도 조사 결과 같은 것과 웨어러블의료기기 산업 발전, 고용창출 등을 얘기를 해가면서 사업을 확대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원격의료는 보건복지부 등에서 지난 20년 가까이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해왔지만 전국적으로 시행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의료계의 반대 때문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역시 사업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시범사업 결과로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B원장은 "원격진료 수가가 얼마로 결정됐는지 모르겠지만, 원격의료 시행을 위해 관련 장비 설치하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의원 경영 입장에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방문간호 수가가 원격진료 수가보다 높을 수도 있다"며 "특히 외국에서 가능한 처방약 배송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원격진료를 한 다는 것은 환자 편의성을 내세우는 명분에도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의 C원장은 현행 의료법 위반 가능성, 원격의료 정의, 허용 범위의 모호성,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불분명성 등을 지적했다.
C원장은 "기사를 통해 보면, 재택치료 중인 만성질환자(당뇨,고혈압)를 웨어러블기계(혈압계,혈당계등)를 사용해 상시체크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환자와 의사가 전화로 상담하고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면 방문간호사 입회하에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도록 하고, 약 수령은 가족이나 빙문간호사를 통해 하도록 하는 사업으로 이해했다. 의사 환자 간 전화상담도 허용했는데, 원격진료 정의가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전화상담은 허용하고 화상전화는 불허할 것인지 등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방문간호사 입회하에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의사가 전화로 수액요법 및 혈액, 소변검사 지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경우 의료기관이 아닌 만성질환자가 많이 수용된 요양원 등 요양시설에서 촉탁의와의 전화로 진단과 처방이 이뤄질 수 있고,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C원장은 "원격진료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법적책임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다. 당뇨와 고혈압은 다수의 합병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합병증 발생 시 환자, 보호자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법적 대응을 할 경우 대면진료와 같은 책임을 지울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무엇보다 괘씸한 것은 이런 중대한 사안을 의료계와 아무런 협의없이 진행하고도, 보건복지부는 책임을 중소벤처기업부로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오전 11시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규제자유특구 원격의료사업 추진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정책 철회를 위한 전면 투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