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산재 인정 촉구' 기자회견 개최…8월 5일 '산재 여부' 결정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감정 '청장년 급사증후군' 가능성 적시
"지병 없던 청년이 근무 중 갑자기 사망…대한민국 전공의들의 현실"
당직 중 사망한 故 신형록 전공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감정서가 나왔다. 부검은 인천남동경찰서의 의뢰로 진행했다. 부검감정서에는 '규명되지 않은 내인에 의한 사망, 원인불명의 내인성 급사, 청장년 급사증후군 가능성' 등이 언급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30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린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고 신형록 전공의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부검 결과 일부를 공개했다.
국과수는 사인으로 해부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내인에 의한 사망과 함께 심장에서 초래된 치명적인 부정맥과 같은 심장의 원인과 청장년에서 보는 원인불명의 내인성 급사를 일컫는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가능성 등을 적시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평소 지병이 없던 청년이 갑자기 근무 중에 사망했다. 이는 대한민국 전공의들이 처한 상황이다. 이는 공포"라고 말했다.
"고 신형록 전공의 과로사가 아니면, 누구를 과로사라고 할 건가?"
당직 중 사망한 故 신형록 전공의의 산재 여부를 심사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30일 오후 3시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에서 열렸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업무상질병판정위 개최 1시간 전인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고 신형록 전공의의 산재 인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고 신형록 전공의의 유족과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수련이사, 강수진 보건의료노조 가천대길병원지부장, 최원영 간호사(행동하는 간호사회·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문화부장)이 참석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고 신형록 선생님은 법적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조차 없이 최대 근무시간을 훨씬 초과해 근무했다. 지속적으로 과로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근로환경에서, 심각한 만성과로에 시달렸다"면서 "고 신형록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이 업무상 과로사가 아니라면, 어떠한 이유로 설명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기준은 주 60시간 이상 근로, 주 52시간 이상+가중요인 1개, 주 52시간 미만+가중요인 2개 이상을 과로로 인정하고 있다. 가중요인에는 ▲근무 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가 해당된다.
이승우 회장은 "고 신형록선생님의 근무시간은 주 60시간 이상의 근로보다 터무니없이 많았다. 휴일도 부족했다. 특히 정신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업무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가장 가까이에서 전공의들의 과로를 지켜보고 있다는 간호사들도 산재 인정을 촉구했다.
최원영 간호사(행동하는 간호사회·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문화부장)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공의들의 과로를 지켜봤다. 전공의들은 제가 퇴근할 때도, 다음날 다시 출근할 때도 같은 자리를 지키며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 신형록 전공의는 일주일에 110시간 이상을 일했다. 하루 평균 17∼18시간씩 일한 셈"이라고 밝힌 최원영 간호사는 "이는 명백한 타살이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전공의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배정해 죽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원영 간호사는 "그의 죽음이 해부학적으로는 불명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당직표와 근무시간은 명백하다. 과로사의 인정기준의 2배 가까이 되는 주 110시간을 근무했다. 이게 과로사가 아니라면, 이 나라의 어떤 죽음이 감히 과로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2~3명이 해야 할 일을 상대적 약자인 전공의 한 사람에게 떠맡겨 놓고, 그렇게 아낀 돈을 병원이 챙기고 있다. 이것이 전공의 선생님들의 목숨값이다. 간호사의 입장으로, 전공의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줄 것을 함께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병원, 전공의법 위반 '과태료 500만 원'…유족 측 "한탄스럽다"
유족 대표로 참석한 故 신 전공의 누나는 기자회견에서 "2월 27일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전 항목 위반으로 밝혀졌다. 길병원은 전공의법 위반으로 과태료 500만 원을 받았다. 제 동생의 죽음이 고작 500만 원 과태료라니…비참하고, 한탄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전공의들이 제 동생과 같이 살인적인 근무 강도를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제 동생의 사망 원인이, 대한민국 전공의들이 현재 과도한 근무환경에서 수련하고 있음이 모두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법 위반에 대한 과태료의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이승우 회장은 "현재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위반 시, 과태료가 3번 걸렸을 때 최대 500만 원이다. 여러 건이 걸리건 상관없이, 건별 부과가 아닌, 병원별로 부과하고 있다"며 "큰 병원에서 이는 큰 부담이 아니다.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수련이사는 "전공의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무시간이 80시간이다. 한 전공의의 당직표가 80시간으로 기재돼 있지만, 이는 당직표에만 존재하는 근무시간"이라며 "한 전공의가 맡은 환자가 너무 많다. 도저히 근무시간 안에 다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에, 전공의들은 당직표에 없는 다른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지현 수련이사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시정명령을 해도, 이제껏 수련병원 취소나 수련 과목 취소가 이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에, 병원들은 해당 내용을 개선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승우 회장은 "의사의 노동을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과중한 노동임이 틀림없다. 고 신형록선생님의 죽음과 같이 슬프고, 참혹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병원은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만약, 대한민국 전공의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것을 지금처럼 무책임한 태도로 내버려 둔다면, 왜곡된 의료체계에서 묵묵히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1만 6천 전공의들의 행동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故 신형록 전공의의 산재여부는 오늘(30일) 개최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회의 6일 뒤 8월 5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