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만에 뇌출혈...법원, 적절한 치료 안해 치료시기 놓쳐
대법원, 상고 기각...당직의사 금고 8개월 집행유예 2년 확정
설사 환자가 진료를 거부했다 하더라도 의료진은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뇌출혈 환자를 취객으로 오인,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이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 금고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형사2부 재판부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당직의사 A씨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2014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B씨는 2014년 5월 6일 새벽 1시 36분경 술에 취한 상태에서 C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당시 B씨는 진료를 안 보겠다고 말하고, 화장실에서 자거나 소변기에 대변을 보고 바닥에 구토를 하기도 했다.
당직의사인 A씨는 진료 협조를 받지 못하자 새벽 4시경 보호자에게 상태를 설명하고 술이 깬 뒤 내원해 검사를 받도록 안내하며 귀가 조치했다.
B씨는 귀가 후 13시간이 지난 오후 5시경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상태에서 보호자에게 발견됐다. 응급실을 찾았지만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검찰은 "두개골 골절이나 뇌출혈 여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뇌 CT 촬영을 하거나 이를 보호자에 알리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정확한 진단 및 수술 등의 기회를 놓쳤다"며 A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고, 한 쪽 눈에 멍이 들어 있는 것(외에) 특별한 외상은 보지 못했다. 당시 환자의 상태를 보았을 때 뇌출혈 증상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CT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진술했다.
1, 2심 법원은 당시 B씨가 보인 행동이 일반 주취자들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았다"며 "B씨의 증세를 제대로 진찰했다면 뇌출혈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응급실 도착 당시 코피가 나 있는 상태였고, 응급실에 있는 동안 구토 및 소변기에 대변을 보고 화장실 바닥에 뒹구는 증세를 보였으며, 오른쪽 눈 주위에 멍이 들어 붓기가 있는 상태였고, 특히 휠체어에서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오른쪽 팔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점을 짚었다.
재판부는 "비록 피해자가 당시 술에 취한 상태로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일반적인 주취자의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면서 "피해자가 응급실에 내원한 경위, 당시의 증상, 응급실 내에서 보인 증세와 상태를 제대로 진찰했더라면 두개골 골절 또는 뇌출혈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CT 촬영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주취상태에서 CT 촬영을 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뇌출혈 가능성을 의심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CT 촬영이 가능한 상태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했다"며 "만약 곧바로 CT 촬영 등을 시행할 수 없는 상태여서 부득이 퇴원 조치를 하는 경우라면, 보호자로 하여금 뇌출혈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피해자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 즉시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가 퇴원하기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아무런 치료행위나 처치를 취하지 않은 점, 피해자의 처에게 뇌출혈 가능성에 대해 아무런 설명없이 퇴원하도록 조치한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에도 '최초 병원 내원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재돼 있는 점 등을 짚었다.
재판부는 "당직의사로서 피해자에게 적절한 처치를 하거나 적어도 보호자에게 피해자의 두개골 골절 또는 뇌출혈 가능성을 설명하여 주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피고인은 환자의 구체적 증상, 상황에 대하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CT 촬영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보호자에 대하여 뇌출혈 가능성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아니한 채 퇴원하도록 함으로써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였고, 이러한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옳다고 판단, 당직의사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재판부가 의료진에게 보다 적극적인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판례가 잇따를 전망이다.
앞서 대법원은 농약을 마시고 음독 자살을 기도, 환자가 사망한 민사 소송에서도 의료진의 주의의무를 강조하며 의료진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3월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하다 중독 증상이 악화돼 사망한 H씨 유족이 S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병원측 상고를 기각, 유족 측에 9800만원을 지급하라는 서울고등법원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음독자살을 시도한 H씨는 응급실 의료진에게 "죽으려고 농약을 먹었다. 죽게 내버려 두라"며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의사 P씨는 병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H씨의 손을 결박한 후 위세척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세척튜브 삽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H씨는 결박을 풀고 고개를 돌리거나 얼굴을 마구 흔들며 튜브를 빼내는 등 극렬히 반항했다.
P씨는 보호자에게 H씨가 치료를 거부하고 극렬히 반항해 위세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아울러 농약독성이 나타날 경우 S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므로 상급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권유했다.
P씨는"위 세척과 결박을 하지 않을테니 제발 수액주사라도 맞으라"고 H씨를 설득한 끝에 아트로핀 0.5mg, PAM-A 0.5g 앰플 2개, 포도당액 1000cc와 비타민 B1 및 C1을 혼합 투액했다.
전원을 위해 대기할 무렵 H씨는 바지에 변을 보는 등 중증 중독증상이 나타났으며, 전원 도중에도 구토와 설사를 했다. 상급병원 도착 당시 의식이 저하되는 등 증상이 악화됐다. 상급병원에서 위세척을 실시했으나 음독 3일 만에 약물중독에 의한 심폐정지로 사망했다.
당시 법원은 "망인의 거부로 위세척등을 실시할 수 없었다면 망인을 결박하는 등으로 망인의 반항을 억압한 후 위 세척을 실시하고 활성탄을 투여해야 했다"며 "병원측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전원을 위해 대기하던 중 망인이 바지에 변을 보는 등 중증으로 판단될 수 있는데도 전원과정에서 아트로핀 지속 투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원고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