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적정 역량 유지·관리 위한 고민 핵심 화두
'세계의사면허기구(International Association of Medical Regulatory Authorities, IAMRA)'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의사면허기구의 국제적인 연합체이다. 의사면허를 둘러싼 의학교육, 면허시험, 재등록, 보수교육, 그리고 역량 강화 및 유지에 관한 모든 논의를 다루는 기구로서 2년마다 학술대회와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근대적 의사면허기구를 약 150여 년 전에 출범시킨 영국과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경험하거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주축이 되어 참가하고 있다. 국제 규모의 조직에다 영국이 주도해 만들어 운영하는 기구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회장은 주로 영국과 미국의 의사가 아닌 아프리카나 다른 지역을 물색하여 선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전 IAMRA 총회는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되었고 당시 최초로 참가자가 500명을 넘어서면서 이목을 끌었다. 직전 '2018 두바이 총회'는 무려 1000명이 넘게 참가하면서 이제 의사면허관리에 관한 관심과 논의는 명실공히 국제적 규모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중·일 3국 별도의 면허관리기구 없어
얼마 전 중국은 중국 의사면허 제도의 선진화를 위하여 중국 주재 세계보건기구의 주도하에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 의사면허기구의 관계자를 초청하여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앞으로 중국이 나아갈 바에 대한 자문과 조언을 구하였다. 중국은 아직 의사면허 신고가 우리나라의 군 단위 급에서 이루어져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관리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1998년 중국 최초로 의사면허시험을 도입하고 의사면허시험을 위한 기구를 설치하여 빠르게 역량을 육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과 같이 중국도 아직 의사나 다른 의료인을 위한 별도의 면허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에 미국 시카고에 있는 미국전공의교육평가원(ACGME) 본부에서 열린 심포지엄은 매 2년마다 개최되는 IAMRA 정기 학술대회와 총회 사이에 열린 심포지엄 성격을 띤 행사이다. 미국이 IAMRA 사무국을 인수하며 생겨난 행사로 주제는 '면허 취득 후의 역량의 지속성'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미국전공의교육평가원(ACGME), 미국의학회(American Board of Medical Specialties), 미국외국의대졸업자교육원(ECFMG), 그리고 미국의사국가시험원(NBME)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미국의 의학교육에 관련된 규제기구(Regulator)가 함께 지원하는 심포지엄이다. 개방형 심포지엄이 아닌 초청자 한정 심포지엄으로 참가자는 200명 미만의 행사다. 미국전공의교육평가원 시설 자체가 이 정도의 행사를 충분히 소화할 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별도의 시설을 빌려 행사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미국의 주관 행사이기는 하나 이웃 나라 캐나다의 의사국가시험원(Medical Council of Canada)과 캐나다 전공의 교육과 전문의시험 기구인 캐나다의학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of Canada)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영국의 시험과 평가인증기구가 참가하였다.
의료도 팀 단위 관리 방식 패러다임 전환, 적정 평가 방식 놓고 열띤 논의
첫날은 의학교육이 역량 바탕으로 그리고 의료가 팀 접근 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각 기관의 위치와 입장에서 팀과 역량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팀에 의한 의료에 대한 고찰 그리고 역량 바탕 의학교육에 대한 현재의 진행 상황을 검토하였다. 미국 전공의 교육의 특징인 이정표(Milestone) 개념과 네덜란드의 위임가능직무(Entrust able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EPA) 개념의 현재 진행 상황, 그리고 의과대학, 전공의, 국가 면허시험국가면허시험, 자격시험, 보수교육 차원의 합리적 적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특히 현대적 의료의 특성이 집단적 접근임을 들어 팀에 대한 평가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하였다.
의사 개인에 대한 평가로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힘든 의사에 대한 360도 평가, 즉 의사, 간호사, 직원, 환자, 학생 등 모든 가능한 관련된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의사에 대해 평가를 하는 다면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나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상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4차 산업혁명 빅 데이터 기반 실증적 새 평가기술 도입 신선한 충격
ACGME 발표에서 미국 전공의 교육에서 20%는 이정표(Milestone)의 목표인 5단계(expert)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자료를 보여주었다. 현재의 의학교육도 빅 데이터(Big Data)를 축적할 수 있고, 이 자료를 전공의평가에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어서 미국의 국시원과 캐나다의 국 시원국시원, 그리고 기타 전문의 시험에서 첫 번 응시에 탈락한 의사가 실제 의료 활동의 문제로 징계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근거가 제시되었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며 의학교육과 평가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의한 혁신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징계를 받는 의사의 집단적 특성에 대한 분석도 나와 있는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외국 의대 출신이 행정처분 대상이 될 확률이 높게 나온 연구 결과가 있지만, 오히려 외국 의대 출신 중 미국에서 재훈련을 받은 집단의 우수성에 대한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언급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의료가 팀에 의한 집단적 성격으로 바뀌며 이제 의사 홀로 단독개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강력히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시대적 요구와 상황의 변화 등으로 과거와 같은 단독 플레이 형 의사 또는 의료체계에서 팀(Team) 단위로 이끌어 가는 의사 또는 진료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책임 분산 업무 효율 시너지 효과 등 '단독' 보다 팀 단위 개원이 대세
단독개원에 대한 것은 이미 영국에서 국가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고 여럿이 모여 하는 집단(group)보다는 팀을 이루어 개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권장되고 있다. 이것은 영국 자체의 연구로 이미 의료성과에 대한 측정을 바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보여주는 특색을 보면 매우 미국적인 요소가 강하게 보인다. 즉 다양한 기관의 출연으로 집단적인 역량을 발휘하는데 한 사람 또는 개개인의 능력의 합이 팀의 역량을 추월할 수 없고, 특정 집단 단독보다는 다(多) 집단이 모여 또 다른 집단적 역량을 창출할 수 있다는 모습이다. 이런 심포지엄이 몇 번 되풀이되어 축적되고 나면 이를 바탕으로 제도적 변경이 이루어지고, 급진적인 개혁이나 혁명(revolution)보다는 점진적 개선(evolution)을 가능케 한다.
우리나라는 의학교육 관련 행사도 각 기관이 지니는 고유성과 특성, 그리고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학교육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소유권 다툼도 보인다. 다양한 집단의 출연으로 공동으로 주관하는 행사는 특히 그 구성과 기획 단계에서 절대로 녹록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전공의 교육에 관한 이해당사자로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모여 공동으로 논의할 자리는 절대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각 기관의 행사도 중요하지만 여러 기관이 모여서 하는 행사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개선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전공의 교육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공의 교육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나 학술대회 개최가 아직 초보적이며 제한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부터 재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9 시카고 심포지엄, 의사 역량 평가·유지 관심 집중
이번 시카고에서 열린 IAMRA 심포지엄은 의료 규제적 측면에서 본 현재의 의학교육 평가 중 임상에서 의사의 역량에 대한 평가와 적정 역량의 유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달리 표현한다면, 의학교육의 규제기관(Regulator)인 평가인증원, 시험기구, 의학회, ECFMG 등이 모여 현대적 의학교육의 방법론에 입각한 의사의 역량 유지를 위한 규제를 논한 것이다. 미국답게 정부부서의 인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런 모든 것은 전문직이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학술대회의 후반부는 결국 의사면허와 자격의 'revalidation'에 대한 논의로 귀결이 되었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의사의 역량 지속을 위한 규제기관의 'Quality Assurance'와 'Quality Improvement'의 균형(Continued Competency : Balancing Assurance and Improvement)에 대한 논의였다. 향후 'revalidation' 혹은 미국의 'recertification'은 때에 따라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다각적이면서 보다 신중한 논의가 펼쳐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도 호주와 캐나다는 영국과 미국과는 달리 보수교육 강화를 골자로 하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영미권과 기타 지역 '의학교육·의사면허관리 체계' 확연한 차이
이번 심포지엄의 특색을 살펴보면 그중 하나는 참가자의 연령대가 매우 높아 보였다. 발표자나 토론자 등이 모두 기관의 부회장이나 부원장 이상의 직급이어서 학술대회에 무게감을 실어주었고, 영미권의 의학교육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결정되는 중요한 의사결정 구조의 하나로 비쳤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싱가포르 면허기구와 홍콩 의학회의 회장 대리로 참석한 사람과 필자가 참석하였다. 그 외 아프리카국가의 면허기구에서 온 몇 사람이 눈에 띈 것이 전부였다.
올해에 빈에서 열린 유럽의학교육학회는 참가자가 4500명을 넘어섰고 단일국가 참여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아시아 국가들이었다. 이에 반하여 초청자를 제한하는 세계면허기구연합회의 심포지엄은 개방적인 의학교육 학술대회(conference)와 의학교육 규제기관 학술대회의 차이점을 분명히 눈을 뜨고 경험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