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구속 사유 있는지 의문임에도 하급심서 법정구속 판결 남용
정태원 변호사 "의료과실 업무상과실치사상 양형기준 신설" 주장
의료과실에 대한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다 보니 법관에 따라 의료진을 법정에서 구속하거나 양형을 무겁게 선고하는 사례가 증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형사사건의 경우 하급심에서 법정 구속 사유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최근 법정 구속까지 하는 판결이 남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태원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스)는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의료정책포럼] 최근호 '이슈 & 진단'에서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자제의 필요성' 글을 통해 의료과실과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관한 양형기준을 별도로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진을 구속하거나 형사처벌을 엄하게 하는 사례가 증가해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환아 사망 관련 주치의 등 교수 2명과 간호사 1명이 구속된 사건, 횡격막탈장 및 혈흉으로 인한 저혈량 쇼크 사망에서 응급의학과장·소아청소년과장·가정의학과 전공의 모두 법정 구속사건, 의료과실로 자궁 내 태아를 사망하게 했다는 이유로 제1심 재판에서 금고 8월형이 선고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정 변호사는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증가추세의 원인 중 하나로 '의료분쟁의 형사 사건화' 경향을 지적했다.
전통적 인술의 객체였던 환자가 진료계약상 동등한 당사자로 승격됐고, 환자가 비용·시간·진상규명의 편의성에서 유리한 형사 절차에 더 의존하게 돼 의료분쟁이 점차 형사 사건화 되어 간다고 분석한 것.
이런 경향에 대해 정 변호사는 "사법기관의 민·형사책임의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데, 이는 민·형사책임을 엄격히 구분하는 대법원 판례나 구속제도의 취지에도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형사처벌의 사회적 효용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 부족도 형사처벌 증가의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 그리고 양형기준이 미비한 것도 문제라고 봤다.
현재 대법원의 양형 기준표 중 의료과실에 해당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항목에는 의료의 전문성이나 특수성이 고려된 의료과실에 대한 양형기준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재판에서는 사실상의 추정이나 개연성만으로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힌 정 변호사는 "의료과실과 사망 등의 나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의 인정 여부에 관해 형사재판에서는 인과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경우에만 인정되며, 그 존재 여부가 불명한 때에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사)에게 유리하게' 및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구제 차원에서 민사책임을 지우는 것은 형평에 맞지만, 형사책임까지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경우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 사건에서도 민사재판이나 하급심에서 과실 및 책임이 인정됐으나 상급심 등에서 무죄가 선고된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43세 피해자의 격심한 두통에 대해 의료진이 고혈압으로 오진해 혈압강하제만 투여했고,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 출혈 발생, 그리고 의식불명으로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서 형사 제1심, 제2심은 단순 고혈압으로 오진했으므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주막하출혈은 뇌전산화단층촬영을 하더라도 발견 가능성이 작고 뇌출혈 전문 의사가 아니라면 진단하기 어려우므로 내과 의사인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 변호사는 대법원의 양형 기준표상 의료과실 항목이 없다 보니 법관에 따라 판결이 제각각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의료과실에 대한 양형기준도 일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동일하게 적용하게 돼 하급심의 재판부마다 양형의 차이가 크고, 법관에 따라서는 의료진에 대한 엄중한 형사처벌이나 구속이 필요하다고 보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과실에 대한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다는 것은 의료과실에 대한 국가형벌권 행사에 의료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서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국가형벌권 행사의 자제 방법으로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은 금고형보다는 벌금형을 활용하는 것이 적정하다"라고 제안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건, 횡격막탈장 및 혈흉으로 인한 사망 사건, 자궁 내 태아 사망 사건 등의 경우 법정 구속 사유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구속된 의료인들은 전부 일정한 주거가 있고, 전문직 종사자들인 의료진이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반복된 의료과실로 인한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 자체도 상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
더구나 의료사고의 경우 상급심에서 유·무죄 판결이 바뀌는 경우가 다수 있음을 고려하면, 하급심에서 판결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까지 해야 할 필요성이 과연 있었는지도 의문이라는 것.
정 변호사는 "의료과실에 대한 국가형벌권(의료진 구속 등)은 의료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투입돼야 한다"며 "만약 국가형벌권이 과도하게 투입된다면 방어 진료, 진료 기피 현상의 초래와 의료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등 그 피해는 환자 전체가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을 인정하거나 양형을 정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의료과실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관한 양형기준을 별도로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