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한 누리가 높고 푸른 하늘 이고 있다.
산과 들이 단풍으로 병풍 두르니 풍악(猦嶽)이네
임이 오시는 날 소소(瀟瀟) 바람에 나뭇잎 벗고
전나(全裸)의 나체(裸體)되어 하늘을 유혹한다.
모질게 찬 북풍에 시달려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새봄 잉태(孕胎)하느라
대지는 소리없이 꿈틀거린다.
가을! 모두 보내야 하는 가을은 슬프고 외로운 계절
그 슬픔을 삼키는 아품
새 생명이 다시 움트는 봄에
희망두어 차디찬 슬픔 가슴에 품어 삭인다.
이제 가을 가고 삭풍(朔風)이 눈을 몰고 오면
우리의 깊은 사랑도 하얀 눈속에 얼어 붙겠지
그리고 곧 뒤이어 큰 봄의 산고(産苦)가 지축(地軸)을 흔든다.
가고 오는 것이 보내고 맞는 것이 생의 인연이가.
꽃피고 새가 우는 소망의 파란 봄날이 오면
홍매화 하얀 목련화 꽃이 피듯
고목에도 연두색싹이 피어나리
나도 그 화려한 새봄 보고 싶지만 내가 그봄 기다려 낼지
아니면 그 봄이 나를 기다려 줄지
가늠하기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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