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업계, "생명연장·건보재정 절감 '신약 가치' 인정해야"
혁신적 약가지불제 도입 요구...복지부 "현행 제도 이익도 보고 있다"
다국적 제약업계의 신약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는 혁신적 약가지불제 도입 요구가 거셌지만, 정부는 업계의 요구를 당장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업계의 요구에 신약 도입을 위한 건보재정이 적어 신약 약가 결정 과정에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다국적 제약사 역시 현행 약가제도의 반사이익을 보는 면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환자 중심, 건보재정 지속 가능성 확보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새로운 약가지불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업계의 이해를 당부했다.
7일 국회에선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주관, KRPIA 주최로 '신약의 사회적 가치와 건강보험 재정 관리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업계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프랭크 리텐버그 교수의 '신약이 많이 출시된 질병 분야에서 사망률과 입원률이 줄어 신약의 사회적 가치가 입증됐다'는 'The Health Impact of, and Access to, New Drugs in Korea' 연구 결과까지 들이밀며 신약 가치를 인정하는 혁신적인 약가지불제 도입을 압박했다.
이에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신약 도입을 위한 건보재정 배정분이 적은 것에 대해 인정하면서 "장기적으로 신약에 대한 신약 접근성을 보장하면서 건보재정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약가지불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약가지불제도 개선이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의 건보재정 지출구조 합리화 부분에 포함됐다.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내년 상반기 중으로 나올 것"이라며 "약가지출구조 개선 없이는 미시적 접근밖에 되지 않다는 판단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국적 제약업계의 제네릭 제제의 과다 처방을 줄여 신약 도입 재원을 마련하고, 우리나라 약제비 비중이 높다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주장에 대해서는 의사 처방권 등과 관련된 문제여서 보험약제과 차원이 아닌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전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난색을 보였다.
업계는 우리나라 약제비가 높다는 인식은 위장약, 소화제, 진통소염제 그리고 고혈압·당뇨약 등 제네릭 약의 처방률이 높기 때문이라며 불필요한 제네릭 처방량을 줄여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도입할 재원에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 과장은 "약가 측면에서 보면, 제네릭 제제의 기본 가치는 오리지널약을 싸게 대체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기능이 상실됐다.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약가를 살펴보니 제네릭 약가가 오리지널 약가보다 비싼 경우가 많았다. 약가일괄인하의 부작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자가 제네릭 제제를 쓰게 할 동기가 없다"면서도 "현행 건보 약가제도가 국내 제약산업을 떠받치는 구조"라고 말했다.
나아가 "오리지널약을 다량 보유한 제약사도 현행 약가제도의 이익을 보는 부분이 있다. 미국의 경우 오리지널약이 시장에서 4∼5년이면 나간다. 처음 4조원이던 약제비가 4∼5년 후 200억원 정도로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출시 4∼5년 후에도 전 세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오리지널약이 존재한다"면서 "장기적으로 신약 도입을 늘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특허만료약 역시 퇴출하고 제네릭으로 대체하는 구조로 가야 건보재정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 약가지불제 개편은 5년 내에도 이루기 힘들다.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단 과도기적으로 제네릭 약가제도를 개편했다. 특허만료약 재평가, 기존 급여약의 급여 지속 필요성 여부 재평가 등을 통해서 신약 도입을 위한 별도 재정을 조성해 항암제, 희귀질환약, 중증질환 치료제 도입 재원으로 활용하려는 임시조치를 취한 것이다. 'Trade Off' 등을 통해 기존 특허만료약의 가격을 조정하면서 신약 급여 기준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급여액을) 상쇄하는 방식이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약 도입 시 가치를 인정해 약가를 결정해도 건보재정 인상 효과가 0.6%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건보재정 지속 가능성에 위해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급여 약제비가 OECD 평균에 비해 훨씬 높다. 지난 몇 년간 매년 약제비가 1조 3000억원에서 8000억원씩 늘었다. 고령화 가속화로 약제비 지출이 급여지출의 40%를 넘어섰다. 약제비를 이렇게 놔주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OECD 기준으로는 우리나라처럼 약제정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고 반박했다.
신약 도입에 따른 약제비 증가 폭이 크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변진옥 건보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제도재정연구센터장도 말을 보탰다.
"글리벡 약가협상 당시 노바티스 사는 2만 5000원을 건보공단은 1만 8000원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다. 그러나 글리벡의 특수성 때문에 결국 노바티스의 약가 요구가 관철됐다. 처음에 500명으로 환자 수를 예측했는데, 2007년 2000명으로, 특허가 만료된 2013년 이후에는 적응증을 확대해 현재 수만 명이 됐다. 제네릭이 들어와도 시장이 잠식되지 않았다. 심지어 노바티스사가 리베이트에 걸렸는데도 글리벡은 급여가 정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제네릭 약가가 신약 약가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점도 짚었다. "제네릭 약가가 신약의 55.5% 수준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신약 약가 결정은 전체 약가 결정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라면서 "그리고 신약 약가는 양측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합당한 근거를 토대로 당사자 간 합의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규제라고 칭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토론회에서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약제비 지출구조 선진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부지홍 한국 IQVIA 상무는 ▲사회의 고령화 및 건보 지속 보장성 확대 정책 추진으로 건보재정 지출 확대 불가피 ▲신약 가격 중심의 약제비 관리 정책에 따른 재정절감 효과 미미에 따른 의약품 사용량 관리 등 지출구조 선진화 필요 ▲신약 도입을 촉진하는 정책 도입 시 건보재정 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종합계획에서 제시된 지출구조 합리화로 달성 가능 등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