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감염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감염병별 특성에 따른 감염병 분류 체계가 필요하다. 이 분류체계에 따라 환자 신고, 환자 및 접촉자 관리 등의 감염병 관리 방법이 결정된다.
2000년 8월 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감염병을 제1군에서 제4군으로 나누는 군(群)별 분류체계를 시행한 후 20년이 지났다. 해외여행 등 국제교류의 증가로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에볼라바이러스병 등 신종감염병 유행에 대한 대비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특히 2015년 메르스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 이후 감염병 분류체계 개편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었다. 정부는 변화되는 감염병 양상에 맞게 질병별 심각도와 전파력 등 위험도를 평가하여 감염병을 재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원칙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감염병 분류와 관리체계가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었다.
감염병을 심각도⸱전파력⸱격리수준‧신고시기 등을 고려하여 제1급~제4급감염병으로 나누는 ‘급(級)’ 체계 개편을 포함하는 개정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2018년 3월 27일 공포되었고 2020년 1월 1일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 전 제1군에서 제5군까지의 감염병과 지정감염병으로 분류되었던 80종의 법정감염병을 제1급에서 제4급까지의 감염병 86종으로 재분류하였다. 기존의 바이러스성출혈열은 에볼라바이러스병, 마버그병, 라싸열, 크리미안콩고출혈열, 남아메리카출혈열, 리프트밸리열 등 6가지로 세분화되고, 2016년부터 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된 사람유두종바이러스감염증이 제4급감염병에 새로이 추가되었다.
제1급감염병은 생물테러감염병 또는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 발생의 우려가 커서 발생 또는 유행 즉시 신고하여야 하고, 음압격리와 같은 높은 수준의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으로 에볼라바이러스병,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이 있다. 제2급감염병은 전파가능성을 고려하여 발생 또는 유행 시 24시간 이내에 신고하여야 하고,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으로 결핵, 홍역, 콜레라, 반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알균(VRSA) 감염증 등 호흡기감염병, 수인성식품매개감염병, 의료관련감염병이다. 제3급감염병은 발생을 계속 감시할 필요가 있어 발생 또는 유행 시 24시간 이내에 신고하여야 하는 감염병으로 파상풍, 일본뇌염, B형간염, 말라리아, 쯔쯔가무시증, 공수병 등 혈액매개감염병, 모기-진드기매개감염병,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제4급감염병은 제1급에서 제3급까지의 감염병 외에 유행여부를 조사하기 위하여 표본감시를 하고 있는 감염병으로 인플루엔자, 매독, 기존의 제5군감염병과 지정감염병 및 사람유두종바이러스감염증 등이다.
이와 함께 감염병 신고 시기도 감염병 분류체계에 맞추어 개정되었다. 개정 전에는 제1군에서 제4군까지의 감염병을 ‘지체 없이’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에서는 제1급감염병은 ‘즉시’, 제2급과 제3급 감염병은 ‘24시간 이내’, 제4급감염병은 ‘7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시간개념을 명시하여 신고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특히 제1급감염병의 경우에는 신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질병관리본부장 또는 관할 보건소장에게 구두 또는 전화로 우선 신고하도록 감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제1급감염병을 조기에 인지하여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감염병 분류체계 개편을 통해 제1급감염병은 중앙이 중점 관리하고 제2급과 제3급 감염병은 시도와 시군구가 관리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 등을 개정하였다. 이러한 감염병 분류체계 개편을 통해 국민과 의료인들이 감염병의 심각도, 전파력, 격리수준, 신고시기 등을 쉽게 이해하고 감염병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