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성 선한의료포럼 이사장
인술, 의사가 가져야 할 제일의 덕목…"섬기고 실천해야"
슈바이처가 되고 싶었던 소년
소년은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감동은 깊었고 여운은 길었다. 그가 읽은 책은 바로 슈바이처 위인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소년은 의학과 신학을 공부해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슈바이처는 저의 롤 모델이었고, 어릴 때부터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들, 특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자연스럽게 봉사정신이 스며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한성 선한의료포럼 이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를 꿈꿔 왔고, 살아가는 내내 마음속에 봉사의 뜻을 품어왔다고 말한다. 이웃과 사회에 헌신적이었던 어머니, 6·25 전쟁 이후 충남 대천에서 고아원을 운영한 외삼촌, 의과대학을 다닌 외사촌형 등 주위 환경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사가 된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시립병원을 찾아가 무료진료를 하며 개인적으로 의료봉사를 해오던 박 이사장은 2003년 서울시의사회장을 맡은 직후 의료봉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의료봉사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영등포 소재 노숙자 합숙소와 시흥에 있는 노인복지회 등에서 무료진료 활동을 벌였다. 이후 서울시의사회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선한의료포럼은 보다 자발적이고 효율적인 의료봉사를 위해 만든 단체다. 2008년 선한봉사센터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발해 오늘에 이르렀다. 노숙자,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 다문화가족, 돈과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차상위계층 등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의 손을 잡았다. 복지시설부터 쪽방촌, 해외에 이르기까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갔다. 특히 6·25전쟁에 파병했던 해외 국가들 중 에티오피아나 필리핀 같은 나라의 참전용사들을 찾아 고마움을 표시하고 의료봉사 및 교육을 통해 그들의 가족과 이웃을 돕는 일은 선한의료포럼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다. 한편 NGO단체로서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나 정책의 잘잘못을 비평하고, 올바른 의료정책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아 에티오피아로
"6·25전쟁 발발 60년이 되던 2010년,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참전했던 16개국 중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나라가 에티오피아죠."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에티오피아는 6.25전쟁에 6천여 명의 군인들을 파병했다. 이들은 최전방 등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그 과정에서 사망·부상·포로·실종 등 약 650명의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희생됐다. 이후 오랜 내전으로 에티오피아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7400명이나 참전했던 필리핀도 지금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지역이다. 선한의료포럼은 6·25 당시 도움을 준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발적인 NGO 단체로서 해외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 의료봉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1년에 1∼2회 정도 봉사를 떠나는데 거의 모든 진료과목에 걸쳐 의사와 간호사·임상병리사·영상기사·약사 등 약 30명의 의료봉사단이 꾸려진다. 그런 만큼 비용 부담이 컸다. 1억 5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자체 조달한 적도 있고, KOICA의 지원으로 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저희의 열정과 의지에 비해 재정은 늘 부족했습니다. 재정 형편 때문에 도와줄 수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60여 년 전 16개 나라에서 온 참전용사들이 젊음과 피로 우리나라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감사하고 보은하는 의미에서 무료 의료봉사는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 수도 점점 줄고 있어요. 이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계속하고 그 나라에 진실로 도움이 되는 의료제도나 시설, 장비를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박 이사장은 그 안에 더욱 빛나고 행복한 순간들이 함께한다고 말한다. 한번은 필리핀 라구나주 산페드로 시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에 생후 3개월 정도 된 구순구개열 아기를 진료한 적이 있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있던 아기의 사정이 안타까워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강남세브란스병원장, 강남구의사회장 등 여러 사람이 흔쾌히 지원을 해주었다. 덕분에 2019년 1월 아기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기와 웃으면서 떠나는 어머니의 환한 미소는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더 좋았던 건 이 일을 계기로 세브란스병원과 산페드로시티가 MOU를 맺고 1년에 1명 정도 수술을 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삶
"평생 마음에 새기고 있는 의사로서의 철학이 있습니다. '욕위대자 당위인력(欲爲大者 當爲人役)'. 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훈이었는데요, 마음을 비우고 남을 섬기는 일부터 배우고 실천해야만 비로소 의사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돈 버는 직업이 아니다'는 게 박 이사장의 평소 지론이다. 만일 돈을 벌고 싶다면 의과대학 말고 경영대학이나 다른 분야를 공부해 욕심대로 마음껏 돈을 벌라고 말하곤 한다. 의사가 돈을 먼저 생각하고 환자를 보게 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면 결국 환자를 제대로 고치기보다는 환자를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인술은 의사가 가져야 할 제일의 덕목이다. 박 이사장은 이런 덕목이 나중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술에 앞서서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참 의사가 무엇인지 그렇게 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먼저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 박 이사장은 참 의료를 실행할 수 있는 후배들을 육성하고 보다 많은 의료봉사를 실천하기 위하여 모교 의과대학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박한성 장학금은 의과대학 2학년부터 3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어느덧 20년 동안 여덟 명의 의사를 키워냈다. 그는 이 학생들이 자신처럼 봉사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참 의사가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과 함께 환자들에게 열심히 진정어린 치료하고 사랑과 긍휼의 정신으로 환자를 최우선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이 생겨서 환자들이 믿고 진료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로 사는 즐거움을 아는 이 시대의 낭만 닥터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 출범 당시 김승호 회장님께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김승호 회장님께서도 나누고 베푸는 행복을 아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령의료봉사상은 그 값어치가 무한하여 이 상을 받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마음에 그동안은 생각조차 못했다는 그는 후보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다른 이들을 치료해 줄 수 있고, 도움을 주고 싶은 곳에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정말 많이 듣게 돼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원하는 데는 얼마든지 쓸 수 있죠. 봉사하는 삶을 살다보면 재정이 고갈되는 게 아니라 자꾸 채워지거든요."
의료 관광과 메디컬 마케팅, 의료 서비스와 같은 병원 경영 시대. 그는 아직도 의사와 환자 간의 릴레이션십이 치료의 기본이며 많은 혜택을 받기에 그만큼 베풀어야 하는 직업이 의사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환자를 소비자로 보기 전에 긍휼히 여겨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이 시대의 '낭만 닥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