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신종코로나 의심신고에 보건당국 "중국방문력 없다" 퇴짜
환자 결국 9일만에 확진, 전파부담 커져...질본 "의사 재량 확대"
보건당국이 현장 의사의 판단과 재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지침과 사례 정의를 보완하기로 했다. 감염병 전파경로가 다양해지면서 현장 의사의 판단에 따른 다각적인 대응 필요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특히 16번·18번 확진자 나온 광주21세기병원의 사례가 사태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확진자 확인과정에서 현행 지침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시급한 보완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5일 16번·18번 확진자 발생 후 조치사례 등을 설명하고, "의사의 재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지침과 사례정의를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여러 의미에서 16번·18번 확진자 나온 광주21세기병원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병원 의료진의 신고에도 '중국 방문 이력'을 따지는 지침 탓에 진단시기를 놓쳤고, 그로 인해 과거 메르스 사태와 같이 다수 환자와 의료진이 원내 감염의 위기에 노출되는 등 현 대응체계의 문제점이 확인된 탓이다.
실제 21세기 병원은 16번 환자(43세 여·한국인) 최초 방문 당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의심, 관할 보건소 등에 연락했지만 '중국 방문력'이 없어 현 지침상 의심환자나 조사대상 유증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16번 환자는 지난 15∼19일 태국을 여행한 뒤 귀국, 25일 저녁부터 오한과 발열 등의 증세를 보이다 27일 광주 21세기 병원을 방문했던 상황. 당시 환자의 체온은 38.9도에 달했다.
병원은 환자가 중국은 아니지만 이미 다수 확진자가 나온 태국을 다녀온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증상인 발열과 폐렴 의심증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감염증 의심환자로 봤으나, 지침에 부합하지 못했던 환자는 진단검사를 받지 못했다.
같은 날 전남대병원 응급실을 찾아 폐렴 진단을 받은 환자는, 28일부터 일주일간 21세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3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재이송, 4일 검사에서 확진을 받았다.
의심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지 9일만에야 확진이 나온 셈이다.
5일에는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16번 확진자의 딸(18번 환자·21세 여·한국인)이 추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을 받았다. 6번째 2차 감염이자, 첫 원내 감염 사례다.
18번 환자는 27일 해당 병원에서 인대봉합수술을 받았고, 어머니인 16번 환자가 같은 병실에서 폐렴치료를 받으며 딸을 간호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환자는 2인실을 썼다.
16번 환자의 접촉자는 해당 병원 환자와 의료진·간호사 등 현재까지 306명으로, 보건당국은 추가 원내 감염 가능성에 주의를 쏟고 있다.
일단 해당 환자 같은 층에 머물렀던 3층의 환자들은 모두 다른 층으로 옮겨져 1인 1실 형태로 격리됐고, 3층이 아닌 곳에 입원 중이던 환자들은 증상에 따라 자가격리에 들어가거나 광주소방학교 생활실 내 1인실로 옮겨진 상태로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있다.
의료진과 병원 종사자들도 모두 진료배제 후 자가격리 상태에 들어간 상태로 아직까지 병원 의료진 중 의심증상이 발현된 사람은 없다. 광주21세기병원에서 확진자와 접촉한 의료진과 병원 종사자는 모두 65명으로 파악됐다.
보건당국은 유사사례 방지를 위해, 의사의 판단과 재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지침과 사례정의를 바꿔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5일 관련 질의에 "현재의 지침으로 중국 방문력이 없으면 사례정의에 해당하지 않다보니 기계적인 안내가 이뤄졌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사례정의와 지침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를 보완해 의사의 재량이나 국가의 범위, 증상의 위중도를 따져서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질본은 이르면 오는 7일부터 현장 적용이 가능한 새 지침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