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사 "보건소에만 네 번 전화…실제 당해보니 알겠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 "보건소 '진료' 아닌 '방역' 집중해야"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 환자'로 판단, 관할 보건소에 검사 절차를 의뢰했다. 관할 보건소 관계자는 '검사를 꼭 받아야 하냐?'고 되물었다.
10일 A개원의는 "1339 및 보건소의 미흡한 안내로 혼란을 겪었다"는 사연을 SNS에 올렸다. 일선에서 지역사회 방역의 책임을 맡고 있는 보건소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의협신문]은 해당 의사에게 직접 연락, 사실관계를 물었다.
환자가 내원한 시간은 2월 10일 오전 9시 반. 병원에서 환자가 선별진료소로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경으로 파악됐다. A의사와 B보건소 관계자 등의 발언을 토대로 약 3시간 반 가량 동안 '진땀' 빼야 했던 상황을 시간대 별로 재구성했다.
오전 9시 반=환자 내원
환아는 보호자와 함께 내원했다. 5일째 열과 기침 증세가 있다고 했다. 진찰 결과, 기침, 콧물, 열이 있어 검사를 진행했다.
오전 10시=환자 '싱가포르' 여행력 확인
가슴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 증상이 보였다.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지침상 모든 폐렴 환자는 여행력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여행력을 다시 물었다. 그때서야 설 연휴 기간에 싱가포르에 다녀왔다고 했다. 이때부터 병원은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17, 19번째 확진 환자가 다녀온 국가였기 때문. 즉시,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스크를 착용토록 했다.
오전 10시 5분=첫 번째 1339 연락
여행력과 의심 증상을 확인하고, 같은 병원에 있는 의료진과 상의한 끝에 1339에 연락했다. 4∼5번 전화한 끝에 겨우 상담을 받았다. 1339 담당자는 '중국 방문력이 없어 직접 접수를 못한다'며 '인터넷 접수 후에 답변을 기다리라'고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만 받은 채 전화를 끊었다.
오전 10시 20분=인터넷 접수 계속 실패…두 번째 1339 연락
1339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공인인증과 함께 설치할 프로그램이 많았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홈페이지 접수가 어렵다고 판단, 다시 1339에 연락했다. 이번에도 역시 5~6번 시도 끝에 연결이 됐다. 결국, 돌아온 답은 '관할 보건소에 연락하라'는 것.
오전 10시 30분=첫 번째 보건소 연락
관할 보건소에 연락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담당자가 현재 없다. 다시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까지 빈 공간에서 이동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환자가 중국 방문력이 없어, 사례정의에 맞지 않지만, 의료진의 소견이 있으니 접수는 받겠다. 역학 조사관에게 연락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전 10시 35분=환자 격리 및 선별진료소 연락
환아와 보호자를 빈 병실로 안내해 격리 조치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가까운 선별진료소에 연락했다. 선별진료소에서는 '대기 장소가 없으니, 환자에게 PCR 검사(코로나 선별검사)할 수 있는 시간을 대략 오후 4시경이라고 안내해 달라'며 '그전까지 보건소 지시를 따르라'고 했다.
오전 10시 50분=두 번째 보건소 연락
보건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현재 역학조사관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단 현 상태를 유지하라'고 했다. 환아와 보호자를 계속 빈 병실에 격리했다.
오전 11시=보호자, 컴플레인 시작
보호자는 '아이가 폐렴인데,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만 하는 거냐'며 컴플레인을 시작했다.
오전 11시 10분=세 번째 보건소 연락…"병원에 D레벨 방호복 없냐" 물어
보건소에 세 번째로 연락했다. '선별진료소에 연락하니, 4시까지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렸다. 보건소 관계자는 '4시까지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라'고 했다.
통화 과정에서 보건소 담당자는 '사례정의에 안 맞는다. 병원에서 그냥 폐렴 치료를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병원에 D레벨 방호복이 없냐'고도 말했다. 동네병원에 그런 것이 어디 있겠나. 황당했다.
환자의 컴플레인이 심한 상황이라고 전하자, 직접 설명하겠다고 했다. 보건소 담당자와 통화한 보호자는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이유를 물었다.
보호자는 '보건소 직원이 꼭 검사해야겠냐고 하더라. 의사 선생님이 하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검사비만 공짜로, 음압 병실 비 등 나머지는 부담해야 하는데, 그래도 하겠냐고 했다. 보건소와 더는 직접 통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12시 30분=선별진료소에 다시 연락
선별진료소에 다시 연락했다. '마침 자리가 비었다. 환자를 보내도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오후 12시 35분=네 번째 보건소에 연락 "자차로 보내세요"
선별진료소에 보낸다고 알려야 할 것 같아 다시 보건소에 연락했다. 환자를 선별진료소에 앰뷸런스로 보내야 하는지를 물었다. 보건소 관계자는 '꼭 검사해야 하느냐. 자차로 보내라'고 했다. 보건소가 안내한대로 보호자에게 자가운전해서 선별진료소로 가라고 안내했다.
오후 1시=환자·보호자, 선별진료소
환자와 보호자는 자차를 이용해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2월 11일=바이러스 검사 결과...천만다행 '음성'
직원 일부는 감염 확산을 우려해 퇴근하지 않은 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원에서 밤을 샜다. 11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 결과는 천만다행 '음성'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번 의심환자 사례를 짚어보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1339는 '중국 방문력이 없어, 상담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례정의를 변경, "환자의 중국 방문력이 없더라도 의사 소견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 모두를 의사환자로 구분해 즉각 신고·검사·관리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상황에 따라 '의사환자' 기준 확대 등 신속 대응을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실제 실행을 맡고 있는 1339와 일선 보건소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의료진이 '의심환자'가 의료기관에 있다고 전화로 제보한 상황임에도 인터넷 접수를 해야 한다거나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늦장 대응이 그것이다.
만약, 위 상황에서 환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우선 해당 병원은 휴업 조치 됐을 것이다. 대기 환자나 병원 직원들은 코로나 환자를 '밀접 접촉' 했으므로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아무런 조치 없이 환자와 보호자가 집이나 다른 장소를 다니며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보건소는 의료진이 '의심 환자'라고 문의한 경우 당시 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의 연락처 확보를 안내하고, 접촉자들에 대한 후속 조치를 권고해야 한다. 이번 사례와 같이 2시간 넘도록 4번의 통화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초기 연락 시에 적절한 안내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A의사는 "직접 겪어보니, 방역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단 걸 실감했다. 의료기관은 혹시 모를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직원 중, 몇 명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병원에 남아 밤까지 샜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A의사는 "의료진과 병원에서는 심각한 사안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안내했다"고 지적했다.
[의협신문]은 해당 보건소 측에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B보건소 관계자는 일련의 사건 경과에 대해 "해당 직원이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포괄적인 내용은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역학적으로, 최대 잠복기가 14일이다. 담당자는 설 연휴에 해외 방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간이 지났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의사환자 기준에 '의사 판단'이 들어갔기 때문에 해당 경우도 포함하는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음압병실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안내하는 과정에서 보호자와 마찰도 있었던 것 같다"고 언급한 보건소 관계자는 "현재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중한 업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도 감안해 달라"고 말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보건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등 감염병 사태에 늘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며 "감염병은 국가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영역이다. 바로 이것이 보건소가 진료 영역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방역에 더욱 매진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