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DRG 당연 적응 위한 공청회'쟁점

[집중취재]'DRG 당연 적응 위한 공청회'쟁점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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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G, 또 다른 파행 서곡"


오는 11월 전면 확대 실시를 앞두고 있는 질병군별 포괄수가제(DRG)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보건복지부도 이러한 반대의견에 밀려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DRG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복지부는 9월 26일 ‘포괄수가제도 당연적용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공급자, 가입자, 시민단체, 학계 대표들로부터 DRG 당연적용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이날 공청회에서 복지부 보험급여과 임종규 과장은 “지난 9월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수렴 결과 DRG 당연적용에 대한 의견이 양분되어 있어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며, “각 단체에서 제기한 의견에 대한 검토과정이 필요해 공청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임 과장은 또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과 10월 중 개최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견을 거쳐 최종안을 발표할 것”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 의료계 대표들은 의료의 질 저하를 우려하면서 전면시행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냈으며, 가입자 대표 및 시민단체는 의료서비스의 효율성 제고 및 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는 반드시 DRG 전면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팽팽히 맞섰다.

따라서 건정심위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DRG 전면 확대 시행과 관련된 쟁점들은 무엇이고, 의료계 및 정부·시민단체 등에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공청회에서 나온 얘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부가 DRG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로 인해 의료비 증가는 물론 진료행태의 왜곡을 막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사평가원 상대가치연구반 강길원 책임연구원은 “진료량을 늘려야 수익도 증가하는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의료기관들은 수익증대를 위해 서비스 제공을 극대화 한다”고 지적한 뒤 "효율적 진료를 위한 유인 구조가 없기 때문에 수가통제에도 불구하고 총입원진료비와 건당 입원진료비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의 말대로라면 DRG는 행위별수가제와는 달리 의료공급자들이 가장 비용효과적인 진료방법을 찾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이 제고되고 의료비가 절감된다.

그러나 이선희 교수(이화의대 예방의학)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의료비는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높아진 의료욕구의 산물로 보아야 하고, 이는 경제성장에 따른 의료수요의 현실화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밝힌 뒤 “효율적인 의료자원 이용행태는 공급자에게만 맞춰져서는 소용이 없고, 소비자와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최근 10년간 의료비 상승요인을 분석해 볼 때 물가상승에 따른 수가조정요인이 4.7%, 수요자측 요인 51.3%, 공급자에 의한 진료강도를 의미하는 건강진료비 변화는 -2.4%로서 강력한 양적 통제가 이루어져왔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의료비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행위별수가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청회 주제발표에서 강길원 연구원은 DRG를 도입하게 될 경우 행위별수가 때 보다 행위량은 약 3.16%∼10.26% 감소하고, 시범사업 참여 전 보다 재원일수는 4.3%∼9.3% 정도 감소하는 것은 물론 1인당 항생제 사용액은 9.75%∼24.92%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과잉진료와 의료서비스의 오남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초래된 진료행태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지정토론으로 나온 김진현 교수(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 인제대)와 한겨레신문 안종주 기자도 “행위별수가제에서는 과잉진료, 부당청구, 허위청구 등 진료량을 늘려서 수익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이 많은데, 이러한 측면에서 고려할 경우 DRG 는 행위별수가제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선희 교수는 “지불체계의 문제 외에도 비현실적인 건강보험 수가수준이라는 국내 보험체계의 구조적 문제가 진료행태 왜곡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분쟁 시 의사들은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빠짐없이 의료행위를 하는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진료량 증대 문제 해결은 어렵고, 이러한 체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포괄수가제에서도 진료행태 왜곡은 시정되기 힘들며, 또 다른 파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 이석현 보험이사(고대구로병원장)도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은 비용효과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진료의 적절성이 비용효과적인 측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며, “DRG는 진료행태를 정상화시키는 순기능보다는 왜곡시키는 역기능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 이평수 소장은 “DRG를 했을 때 의료의 질 저하는 분명히 있다”며, “문제는 질 저하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소장은 “다량의 진료나 약제의 사용 및 고가의 약제 등이 의료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광의의 의미에서 의료의 질은 진료의 경제성 내지는 효율성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DRG제도를 도입할 경우 적정진료에 대한 모니터링의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와는 반대로 병협 이석현 보험이사는 “치료비를 미리 정해 놓고 이에 맞춰서 진료를 하라는 것은 규격화된 진료일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진료를 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이근영 교수(한림의대 산부인과)도 “규격화된 진료로 인해 새로운 치료방법, 첨단의 의료용구 적용, 신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 의욕을 상실시켜 질 저하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즉, 새로운 의학기술을 적용시키는데 있어서 DRG는 환자들에게 특정한 서비스 제공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공급자들에게도 경제적 이윤동기의 기회를 막아 결국에는 질 저하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길원 연구원은 의료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 및 국민의 선택권 제한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DRG 제도에 대한 장점만 부각시키다보니 부작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편에서 한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할 시민단체 대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를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안종주 기자와 이평수 소장만이 국민의 선택권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는데, 안 기자에 따르면
“의사들은 얼마나 환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비급여 진료를 할 때 환자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는지 의사들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평수 소장은 “의료는 고도의 전문영역으로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내용과 방법은 전문가인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뒤 “수요자 내지 이용자 입장에서 제공받는 서비스의 내용과 질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 한 것이 의료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소장은 “추가부담이 없다고 비전문가인 환자가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할 경우 이를 설득하고 방치하는 것은 의료전문가의 고유영역”이라며, “의사의 설득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추가 또는 특정 서비스를 요구하는 이유는 환자의 의사에 대한 신뢰도와도 상관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 선택권 제한에 대해 의료계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근영 교수는 “DRG를 실시할 경우 특정시술이나 검사를 소비자가 별도로 받고 싶은 경우 소비자 욕구에 부응할 통로가 원칙적으로 차단된다”고 말했다.

이선희 교수도 “소비자마다 의료서비스 구매 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선택기준이 다르다고 보고 되고 있는 만큼 가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소비자에게는 DRG 제도가 나름대로 긍정적 제도로 평가될 수 있으나 의료의 질과 선택권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는 DRG 제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개별적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지향하는 국내 소비자의 속성 등을 고려할 때 궁극적으로 선택권 제한 문제는 건강권 등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강조했다.


중증환자 기피 현상 심각해질 것

이근영 교수는 “이미 미국에서도 DRG 시행 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 것이 중증환자 기피현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와 같이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중증환자 진료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 전제되지 않는 경우 손실을 피하기 위한 중증환자 기피현상을 막기 어렵고 이로 인해 수많은 임상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이 교수는 “중증환자에 대한 기피로 인해 환자들이 가장 큰 불편과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의사와 환자간의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많을 경우 분명히 사회에서는 의사들 탓으로만 돌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평수 소장은 “대학병원의 경우 의사(교수)들은 관리기전이 미약하며, 대학병원이라는 특성으로 중증환자에 대한 다양한 진료를 시도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DRG를 시행할 경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별도의 방안을 마련해 연구비를 확보 또는 지원받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이 소장은 “DRG는 대학병원의 교육 및 연구 등에 따른 보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복합질병 등 고비용 환자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시행과정에서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총액계약제로 가기 위한 중간과정

김진현 교수는 “지불보상제도를 논의할 때 과도한 이윤동기를 억제하는 매커니즘이 중요하며, 소비자 입장에서도 행위별수가제도가 문제가 많은 만큼 행위별수가제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에서는 행위별수가의 대안으로 DRG를 전면시행하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지불보상제도의 최종 종착점은 DRG가 아니라 총액예산제(총액계약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기퇴원의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특정 입원 기간에 대해서만 DRG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며, 이왕이면 외래를 포함한 DRG를 실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는 질 저하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면, 곧바로 총액예산제(총액계약제)로 넘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평수 소장도 “DRG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술 등 외래 포괄수가제의 조기 개발과 적용이 필요하고, 수가수준의 적정화와 요양기관 계약제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의료계는 사뭇 긴장하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입원환자에 대한 DRG 전면시행이 될 경우 외래에 대한 DRG 시행은 물론 총액계약제가 실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는 외래 포괄수가제나 총애계약제에 대해 논의의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최근 외래포괄수가제에 대한 연구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 정부 임기 중 언젠가 추진될 가능성이 많다.

10년 동안 준비한 정책 포기할 수 없다

복지부 임종규 과장은 “10년 동안 준비기간을 거친 정책은 DRG가 유일할 것”이라며, “준비기간이 많은 만큼 의료계와의 협의과정도 충분히 거쳤으며, 많은 문제점을 보완했기 때문에 전면시행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평수 소장도 “복지부 사업 중 가장 많은 협의의 과정을 거친 것이 DRG인 만큼 현재 적용중인 DRG는 모든 요양기관에 전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는 “7년간의 사업 실시로 문제점을 최대한 보완했으며, 7개 DRG에 대해서는 현재 제기되는 문제점들의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종주 기자도 “DRG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전적으로 많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10년 동안 준비한 DRG는 전면 시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특히 안 기자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우려해 복지부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강길원 연구원도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의료기관간 기능분담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인두제나 총액계약제 방식의 지불제도가 단기간 내에 정착되기는 어렵다”며, 의료기관의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DRG지불제도가 지불제도 개혁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전면시행 이유를 밝혔다.

건강보험재정에 미치는 효과 미비

이선희 교수는 “정부는 건강보험재정 절감의 목표로 DRG제도를 도입했는데, 실제로 DRG 제도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재정절감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이 교수는 “정부의 재정절감 효과는 정부가 누차 주장하듯 수가통제를 통해 무리하게 견인해내지 않는다고 할 경우, 진료량 증가율을 둔화시키는 정도에서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 건강보험 재정절감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에 따르면 행위별수가보다 DRG수가를 더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DRG로 인한 재정절감 효과는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소비자부담분을 보험급여 혜택으로 확대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DRG 제도로 인한 재정절감 효과는 더욱 더 찾기 힘들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결국 이 교수는 “건강보험재정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고 행정효율성 마저 진료의 질 저하를 위한 모니터링 노력으로 상쇄된다면 실제로 소비자에게 급여혜택 확대라는 이점 이외에는 DRG제도 도입의 편익들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강길원 연구원은 “의료제공자들이 가장 비용효과적인 진료방법을 찾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이 제고되고 의료비가 절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강 연구원은 DRG를 실시할 경우 행위량, 재원일수, 1인당 항생제 사용액 등이 감소해 보험재정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 당근에 속지마라

이선희 교수는 이날 공청회에서 “눈 앞의 당근 때문에 DRG를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라며, 시범사업 당시 신중하게 대처하지 못한 의료계를 질타했다.
이 교수의 말대로라면 DRG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는 내부논의를 통해 치밀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지적은 비단 이 교수뿐만 아니라 학계, 개원의 등 의료정책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면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DRG로 인한 수입 증가 때문에 커다란 의미에서 DRG 문제를 등한시한 의료계를 비판할 정도이니 의협은 이번 기회에 DRG에 대한 보다 확실한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DRG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지금부터라도 대의를 위해 의료계가 무슨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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