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소통 창구, 잘못된 메시지보다 더 위험"
온 나라가 마스크 때문에 난리다. 어제 아침 전철역에서 병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니 아직 약국 문이 열기도 전인데 수십명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오늘 (2020년 3월 5일) 점심시간에 같은 길을 지나가면서 보니 7개의 문전 약국과 의료기업체에 모두 '공적 마스크 품절'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군데는 1일 20명분이라는 설명까지 함께. 뉴스를 보니 아예 약국 앞에 텐트까지 치고 기다리는 사람도도 생겼다고 한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마스크는 효과가 없다, 또는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의견들이 나오더니, 이틀 전 (3월 3일) 중앙방역대책본부의"세계보건기구(WHO)도 마스크 착용을 우선적으로 권고하고 있지는 않다"라면서 '일반 시민의 경우 마스크 착용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일회용 마스크를 재사용해도 된다는 내용이 함께 나와서인지, 언론에서는 마스크 부족 사태 때문에 말을 바꾸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정부의 메시지가 사뭇 달랐다. 기억이 부정확할 수 있어서, 보건복지부·서울시·질병관리본부·식약처 등의 사이트를 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1월 27일 게시된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예방행동수칙' 포스터를 보면, 1 마스크 착용, 2. 손씻기, 3 기침 예절로 되어있어서 1번이 마스크 착용이었다. 그 아래에는 '대중교통 이용, 공공장소 방문시 필수!' 라는 문구가 달려있으나, 어디에도 유증상자나 고위험군에 한정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2월 7일 게시된 서울시-질본의 동일한 제목의 포스터에는 1 손씻기, 2 마스크 착용, 3 기침 예절로 되어있어서 마스크는 순서가 하나 밀렸으나, 다른 문구는 동일했다. 또한 서울시의 마스크 종류와 착용법 안내 지침에는 '일상생활 예방용으로는 KF80도 충분해요' 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유증상자나 고위험군에 한정된다는 이야기는 없다(서울시 페이스북).
2월 1일 보건복지부 페이스북에는 '주말, 나들이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꼭 착용해주세요!'라는 제목과 함께, '일반마스크보단 보건용 마스크'를 사용하라고 안내했다(보건복지부 페이스북).
2월 4일 보건복지부 정책 브리핑에서도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KF80 이상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증상이 없는 분들도 본인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는 한 감염내과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다.
중앙 사고 수습본부(이하 중수본)의 입장도 예방효과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2월 5일 중수본의 브리핑에서는 '일반인은 KF 80 보건용마스크를 착용하면 신종 코로나에 대한 예방 효과가 있다'고 했다(질병관리본부 아프지마TV). 2월 7일 브리핑에서도 '면마스크나 일반마스크 사용에 대해서 궁금하신 부분이 많은데요. 일반인에 있어서 면마스크 사용도 충분히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라고 했다(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브리핑). 같은 날 한 일간지 기사를 보면, 중앙 방역대책본부 과장도 "우리나라도 중국과 멀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불안함을 느낄 경우 마스크를 당연히 착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종합해보면 결국 일반인의 경우 KF 80 보건용 마스크 착용이 좋지만 면마스크라도 쓰는게 좋겠다는 이야기이다.
마스크 권장 분위기가 바뀐 것은 2월 12일, 식약처와 의사협회가 함께 마스크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할 때 부터인 것 같다. 이 권고사항에서는 보건용 마스크 (KF80이상) 착용이 필요한 경우로 1) 기침·재채기·가래·콧물·목아픔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2) 건강한 사람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를 돌보는 경우, 3)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경우, 4) 많은 사람을 접촉하여야 하는, 감염과 전파 위험이 높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 (예: 대중교통 운전기사·판매원·역무원·우체국 집배원·택배기사·대형건물 관리원 및 고객을 직접 응대해야 하는 직업종사자 등)를 꼽았다. 반면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공간, 의료기관 방문이 아닌 일반 외출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식약처 홈페이지).
그러다가 3월 3일에는 식약처와 질본이 마스크 사용에 대한 한시적인 임시 권고라고 하면서, 건강취약계층이나 기저질환자등이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에서 2m이내에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경우 (예: 군중모임·대중교통)등에는 KF80이상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보건복지부 대변인실과 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 담당관실에서 발간한 '위기, 위험, 그리고 소통'이라는 제목의 공중보건 위기대응 소통안내서를 보면 5가지 커뮤니케이션 실패 유형의 첫 번째로 '일관성 없는 메시지'를 꼽고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당국자들이 일관되지 않은 메시지를 공중에게 보내면, 국민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당국이 제시한 예방수칙 등 권고 사항에 대해 하나하나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따라서 위기 국면에서 보건당국과 관련 부처·지자체·협조기관 등이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공중의 입장에서 일관된 메시지가 제공돼야 한다. 특히, 신종 감염병 등으로 인해 새로운 메시지가 전달돼야 할 상황에서는 당국의 한 목소리가 필수적이다. 잘못된 메시지만이 국민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위에 정리해본 내용은 일반 국민들이 본적도 없고, 봤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고위험군 같은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또한 최근에는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공간에서는 일반인들이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정작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회사나 공장에서 일을 할 때, 마트나 시장, 음식점이나 커피숍에 갈 때 마스크를 해야 하는지가 아니겠는가? 권고안이 모호해 읽어봐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언론에 매일 노출되는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은 중요할 수 있다. 2월 9일 아산의 시장을 방문하였을 때도, 12일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에 방문했을 때도 대통령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5일 서울-대구간의 영상 회의 사진에서도 국무총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딱히 권고안의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상황들이다. 그렇다면 이는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간접적인 암시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스크가 필요하냐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메르스 당시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하더니 정작 본인은 착용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당시 질본의 해명자료를 보면 "메르스가 공기 중 감염이 아니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마스크 착용은 메르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위생을 위해 장려한다"고 평상시의 개인 위생 수칙에 대한 내용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 2015년 6월 3일).
그 이후 5년이 지났다. 마스크가 정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러나 공중보건은 학문적인 논란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고, 정부는 방침을 정하여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지금 확실해 보이는 것은 정부에 마스크에 대한 권고기준이 명확히 마련 되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우왕좌왕하는 동안 국민들에게 마스크가 필요한지 아닌지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3월 3일 브리핑에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당초 위험한 상황에서의 의사소통을 처음부터 제대로 못 한 부분에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제라도 방역당국에서는 마스크 사용에 대해 계속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 부분은 언론 노출도 별로 안되었고, 좀 더 인지도 있는 분의 사과가 아니라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메시지에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할 것은 좀 더 제대로 사과하고 방침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 정확히 납득시켜야, 앞으로의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먹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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