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불법진료 위험수위

약국 불법진료 위험수위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0.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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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불법진료 이대로 둘 것인가

서울 도봉구 00약국. 소위 대형약국으로 불리는 곳.
시민: "영양제 좀 주세요"
약사: "선생님께서 드실건가요?"
시민: "네."

약사: "어디가 불편하세요?"
시민: "요새 조금 무리해도 쉽게 피로해 져서영양제 좀 먹으려구요."

약사: "밤에 식은 땀도 많이 나시죠?"
시민: "네"

약사: "간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시민: "네! 그래요"

약사: "음양오행설 아시죠? 한방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선생님은 음과 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 간에 문제가 왔다고 볼 수 있어요"

약사는 노트에 인체도를 그려놓고 음양오행이 어떻고 허실이 어떻고 하며 시민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놨다.

약사: "선생님은 양약보다는 한약으로 원기를 보충해야 합니다. 쉽게 피곤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것도 음양오행에 불균형이 생겨 간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예요. 마침 약효 좋은 보약이 있는데 한 번 드셔 보시죠"

약사는 대량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한의원의 절반도 안되는 값으로 구입할 수 있다며 저렴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환자는 약사의 권유대로 한약 한 첩을 구입, 약국 문을 나섰다.

충남 00군 00약국. 이 약국은 난치병만 정복하는 약국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병원, 저 약국, 한의원을 맴돌며 가진 돈 다쓴 말기암 환자와 중증의 당뇨병, 신경통 환자는 물론 대학병원에서도 진단을 내리지 못한 희귀 질환자가 이 약국에 들려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약국을 취재한 모 전문지 기자는 박00 약사가 웬만한 방사선과 전문의가 판독하는 수준의 필름 판독실력까지 갖췄다며 치켜 세우고 있다.

서울 장위동 00약국. 이 약국은 의료장비로 허가도 나지 않은 '미약자기 자동물질분석기'(공명자기분석기)를 설치해 놓고 2분 만에 질환을 분석, 처방까지 내리고 있다. 이 약국은 한약분쟁의 산물로 약사가 쓸 수 있는 100대 처방에다가 스스로 개발한 특수 발효약을 한약 보조제로 활용, 치료기간을 단축시키고 효과를 배가하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의료법 제25조(무면허의료행위등 금지) 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벌칙규정이 마련돼 있다.

약사의 문진은 무면허 의료행위다. X선 필름을 판독하는 행위도 물론 무면허 의료행위다. 더욱이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의료장비로 진단을 하는 행위는 명명백백히 무면허 의료행위다.

문제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단속해야 할 보건당국은 뒷짐을 지고 있다는데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보건당국의 감시와 단속이 소홀한 틈을 이용, 약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약국 저 약국에서 자행되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은연 중에 사회와 국민속에서 당연한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가벼운 질환의 경우 약사가 문진을 통해 처방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의약분업 합의안을 이끌어 내는데 관여한 모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가벼운 질환은 약사가 일반의약품으로 치료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의협의 임의조제 근절 요구를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약사의 임의조제 관행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확산됐으며, 당연시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의조제와 불법 의료행위를 외쳐대는 의사회는 밥그릇을 지키려는 이기주의적인 집단으로 손쉽게 매도당하고 만다.

약계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약사 직능의 확대를 꾸준히 주장하고 추진해 왔다. 흔히 방송이나 신문에서 접할 수 있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문구는 약사회가 약의 독점을 통한 약사 직능 확대와 진료권 확보를 위해 오래 전에 만들어낸 작품이다. 은연 중에 약의 전문가는 약사라는 인식을 전파시켜 왔으며, 이제 의약분업을 목전에 두고 일반의약품 혼합판매라는 큰 결실(?)을 맺게된 것이다.

환자에게 어떤 약을 어떻게 얼마나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진료영역에 해당한다. 조제는 의사의 결정내용이 담긴 처방전에 따라 해당하는 약을 약 봉투에 집어넣어 환자에게 복용법을 알려준 후 전해 주는 행위에 국한된다. 다시말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혼합해 전혀 주는 것이 약사에게 주어진 업무인 셈이다.

물론 극히 일부이긴 하겠지만 의사가 처방오류를 범해 배합이 금기시 됐거나 처방이 잘못된 처방을 내렸을 경우 적절한 처방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도 약사에게 주어진 업무다. 의약품은 환자의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약사라는 면허를 가진 특정한 사람에게 취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진료과정을 생략한 채 약을 환자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약은 약사에게를" 주장하며 약사 직능 확대를 요구해 온 약사들의 요구인 셈이다.

현재의 의약분업안이 의사들에게 전면 외면당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진료과정을 생략한 채 약사가 환자에게 약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데 있다. 약사회가 의약분업 반대에서 적극 수용으로 말을 바꾼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약사가 의료인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의약품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약사들의 최종 목표는 독립된 보건의료인에 있다. 의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약사가 꿈꾸는 세상이다. 약계에서 끊임없이 공인받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이 약료(藥療,Pharmaceutical Care)다. 약료는 약사가 약물요법을 이용해 치료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약사만이 환자 중심의 약료의 유일한 전문가이자 약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대형 체인약국의 공세로 경영 압박을 받고있는 미국 개인약국들은 파마슈티컬-케어와 함께 질병관리(Disease Management)라는 새로운 탈출구를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경영 개선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는 특히 약사가 1차의료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천식같은 만성질환자의 효율적 교육과 관리를 의미한다. 질병 발생의 소지가 있는 환자의 사전 교육, 관리를 통해 질병을 예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의료비를 크게 절약하게 된다.

미국내 개인약국의 50%가 환자의 혈압관리에 참여하고 있으며, 42%는 당뇨환자의 교육과 혈당조절을 도와준다. 천식환자 관리에 나선 약국도 30%나 되며, 각종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약국이 12%, 에이즈환자 특별관리에 5%, 혈액응고 이상 관리에 5%의 약국이 동참했다.

약사의 이같은 능동적 활동으로 타 의료직종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원할한 업무 협조를 이루어 가고 있는데 하루 평균 5.3회씩 의사와 처방에 관해 의견을 나누면서 약사의 의견대로 처방을 변경하는 비율이 67.2%나 됐다. 의약분업을 앞둔 우리나라도 국민건강 제고라는 의료의 최종 목표를 위해 과감한 제도개혁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약계 전문지 기사 내용 중 발췌.

약사회는 끊임없이 약사가 약물을 통해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독립된 보건의료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의사 6만 5천 시대. 2010년대엔 환자 1인당 의사수(한의사 제외)가 선진국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약사는 독립된 보건의료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아래 치밀한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같은 작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약은 약사에게"라는 논리가 보건당국의 무관심 속에 은연 중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당장 이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각 약국에서 자행되는 불법 의료행위를 철저히 적발하여 의료의 개념과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바로잡는 일이다. 특히 일간지, 방송, 생활정보지, 사보, 인터넷 등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무분별하게 게재되고 있는 무자격자에 의한 의료행위 광고를 근절시키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의료의 정의와 범위도 올바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무법과 탈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선진국 제도인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해 봐야 하등의 효과가 있을리 만무하다. 보건당국과 사법당국이 감시·감독을 게을리하는 이 순간에 불필요한 보건의료비가 낭비되고, 의료왜곡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늘어나며, 의료의 본질이 훼손시켜 의료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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