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환자 더 나은 삶 위한 멈추지 않는 열정
인터뷰 - 최수봉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
평온한 의사의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주위의 압박과 몰이해가 거듭됐고, 질시와 조롱에 비난까지 더해졌다. 그래도 한 번 내디딘 그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당뇨환자를 살리고자 연구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최수봉 건국대 명예교수의 삶이다.
"환자를 살리는 게 의사입니다. 제겐 꿈이 있습니다. 당뇨 환자가 합병증 없이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지론은 명확하다. 어느 환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당뇨와의 지난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뇨 환자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늘 열정을 돋운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다시 연구실을 찾으며 그 열정의 열매를 찾는다.
결실은 이미 가까이에 있다.
세계 66개국에 Dana RS·Dana R·Dana IIS 등 수일개발 인슐린펌프가 진출했으며, 세계적인 당뇨병 권위자인 호보르카 영국 캠브리지대학 교수와 함께 개발한 'CamAPS FX' 어플리케이션을 탑재한 Dana RS 제품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상처도 많았지만, 켜켜이 쌓인 내성은 자양분 되어 이제 새로운 미래를 예비한다.
인슐린펌프와 함께 한 41년. 지금 그의 머릿 속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을까.
인슐린펌프 개발은 40여년 전 어느 당뇨 환자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했던 자괴감에 시작된다.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어린 자녀를 둔 34세 여성 당뇨 환자가 갖은 합병증에 시달리다가 4년만에 주검에 이르는 과정과 마주하면서 당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마침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 당뇨병 석학인 디 프론조 하버드의대 교수에게 사사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당뇨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부터 원인을 밝히는 연구를 거듭하다보니 더 과학적인 인슐린펌프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생각만으로 다가설 일이 아니다. 의학자로서의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공학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아무도 생각조차 않은 분야다.
"취미가 더 무섭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계를 만지기 좋아했고 의대 다닐 때도 청계천이나 세운상가 등을 자주 찾으면서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 때는 전자공학 전공도 생각했습니다. 당시 서울대병원 부원장이셨던 고창순 교수님의 권유로 서울대 의공학과 초대 연구부장을 맡았습니다. 그 곳에서의 첫 작품이 인슐린펌프였습니다. 그러나 공대 출신 선생들과의 협업에는 생각 차이가 많았고, 선배나 동료 의사들에게도 불편한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서울대 의공학과를 나오게 됐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았을까. 힘든 시간은 새 세상을 잉태했다.
"학교를 나와서 제가 개발한 인슐린펌프를 근간으로 1979년 의료기기 제조회사인 수일개발과 함께 본격적인 인슐린펌프 연구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기기를 만든다는 목표로 첫 발을 뗐습니다. 환자를 낫게 하는 데 쓰는 의료기기는 공학자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의사가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기쁨을 준다는 일념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66개국에 수일개발의 인슐린펌프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인슐린펌프 분야에서 많은 것을 바꿨다. 그의 생각은 길이 됐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막상 현실로 구현하니까 불안했습니다. 안전성 측면이 걱정됐습니다. 인슐린 과다 분비를 막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연구끝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발명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기술들이 있습니다. 특허기간이 끝난 후 세계 각국의 다른 기업 제품에도 제 특허기술이 도입됐습니다."
당뇨병 치료의 핵심은 인슐린 부족을 해결하는 데 있다. 그는 당뇨 초기부터 인슐린펌프 치료를 하면 췌장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지난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43차 유럽당뇨병학회에서 '인슐린펌프 치료로 감소됐던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 증가'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며,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74차 미국당뇨병학회에서도 인슐린펌프를 통한 인슐린 분비력·당화혈색소 정상화 등에 대한 결과를 발표해 주목받았습니다. 췌장 기능 회복은 당뇨병 유병기간이 길수록 떨어집니다. 당뇨 초기부터 적극적인 인슐린펌프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2018년 8월부터 인슐린펌프용 주사기·주사바늘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됐으며, 올해 1월부터는 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인슐린 펌프에 대해서도 급여가 적용됐다.
"저희 제품이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 제품보다는 많이 저렴하지만, 그래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환자들의 부담이 줄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슐린펌프는 안경과 같습니다. 시력을 잃고나서 안경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슐린 부족을 해결하고 여러 가지 당뇨 합병증을 예방하는 지름길입니다."
최근 수일개발 제품은 한국인터넷진흥원 'IoT 보안인증'을 획득했다. 또 중소기업청이 선정하는 글로벌강소기업에도 뽑혔다.
"지난해 미국에서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의 인슐린펌프가 해킹 문제로 리콜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의료기기에서 보안은 생명입니다. 독일 정부는 수일개발 제품에 대해 정보 보안 최고등급인 '그린'을 부여했습니다. 보안과 안전성 측면에서는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40년이 지난 인슐린펌프는 작고 똑똑해졌다. 무게는 60곔 정도다. 모바일로 적정량의 인슐린 주입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반의 차세대 인슐린펌프와 함께 최근에는 당뇨병의 권위자인 영국 캠브리지대학 로만 호보르카 교수와 함께 개발한 'CamAPS FX' 앱을 'DANA RS'에 장착한 '완전인공췌장(APS)치료시스템'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기술적인 진전은 계속됩니다."
지난 25년간 국내에 인슐린펌프 치료를 알려왔다. 전국 인슐린펌프 의사 세미나도 매분기 끊임없이 계속하여 95차까지 진행됐다.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다.
"인슐린펌프 치료는 쉽지 않지만 의미 있습니다. 당뇨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드릴 수 있습니다. 후배 의사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준비 중입니다.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난 40년간 휴가를 가본적이 없습니다. 연구와 교육과 일에 미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슐린펌프도 개인도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깊은 밤이 지난 새벽 창가에 불이 켜지면 그의 몸속 에너지도 함께 숨을 틔운다. 쉼 없이 지나온 여정은 벌써 일흔 성상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머물지도 멈추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