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소, 의사노조 조직 방안 모색..."의사=노동자, 인식 전환 중요"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확보해 대정부·정치권 교섭력 강화 필요"
정부의 의사 증원 등 '4대 악' 정책 추진에 의사들이 파업으로 맞서고 있는 가운데,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의사노조 조직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현재 의사들은 파업이나 집단휴진 등 단체행동에 나서면 의료법·공정거래법 등으로 처벌될 수 있지만, 의사노조를 조직해 노동법·근로기준법상 확실한 노동자의 지휘를 확보할 경우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맞설 합법적 쟁의수단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대정부 교섭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
그간 여러 차례 의사노조 조직에 대한 법률적·환경적·현실적 측면들을 연구해온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8일 '의사노조,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재 교수노조를 조직·운영 중인 주인숙 중앙보훈병원의사협의회 노동조합 위원장은 중앙보훈병원 노조 조직 과정과 운영 현황을 통해 노조 조직의 장단점을 짚었다.
중앙보훈병원의사협의회는 병원 이사회 측의 의료의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의사들의 진료권을 침해, 환자의 안전권 침해, 행정직 출신 관료들의 갑질 등을 경험하며 병원노동자로서 자각해 노조 조직에 나섰다.
노조는 지난 2018년 8월 7일 결성됐으며, 병원 내 의사 146명 중 110명 가입한 상태. 이후 원활한 노조활동을 위해 보건의료노조 가입을 시도했으나, 노조 측으로부터 의사는 사용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해, 현재는 독립노조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주 위원장에 따르면 독립노조는 의사 가입이 쉽지만, 전입자가 없고 협상기술이 취약해 만족스러운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있고, 생존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주 위원장은 노조 역량 강화를 위해 "의사가 사용자→노동자적인 위치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노조 조직을 미루기보다는 독립노조라도 만들어 전국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사들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 전국단위 노조를 결성, 진료권과 적정 근로환경을 보호하고 보장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성택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은 가칭 '전국의과대학교수노조연합' 설립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권 회장에 따르면 2018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가 고등교육법에서 규율하는 대학 교원들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오는 11월 21일 노조 결성을 위한 총회를 준비 중이다.
권 회장은 "교수노조가 설립되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갖고) 의협보다 더 강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협상권이 있어야 한다"며 "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한 뒤 의료정책과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현미 전 재영한인의사회장은 2016년 영국 전공의들의 파업과 결과에 관해 소개했다.
박 전 회장에 따르면 2014년 영국 총리가 공공의료를 7일로 만들겠다며 의사의 주중 연장근무, 주말 근무를 강요했다. 또한 6만여 명의 전공의 급여를 삭감하겠다고 해 전공의들이 2016년까지 네 차례 파업을 감행했다.
파업에도 불구하고 수상은 정책을 강행했지만, 전공의 외 병원종사자 즉 방사선사, 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등 주중 연장근무와 주말 근무에 따르지 않으면서 공공의료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영국 의사의 2/3가 다른 영연방 나라로 떠나버렸고, 영국 정부는 전공의 근무단축과 임금 인상 조건을 들고 협상테이블에 나왔다.
박 전 회장은 "파업 당시에는 정부가 정책을 강행해 좌절감을 느꼈지만, 의사들이 단결해 행동하니, 결국은 늦더라도 정부가 의사들의 요구를 수용하더라"면서 우리나라 의사노조 조직 및 의사 단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재현 전국의사노조협의회 준비위원장은 직능과 직역을 불문한 전국의사노조 조직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가 건드린 의사들의 역린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지켜내야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단일 의료보험자에 의한 강제적 가입으로 원가 이하의 수가와 일방적인 의료정책 밀어붙이기로 의사들의 진료권은 국가로부터 침해를 받아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의사노조 단체는 의사노조와 일부 대학병원 교수노조, 전공의 노조가 있지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가입회원이 소수로 전체 의사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면서 "전체 의사의 권익보호와 대정부 교섭투쟁을 위해선 개별 병원들의 의사노조 단체가 아니라, 봉직의, 개원의, 의대교수, 전공의 노조를 담을 수 있는 전국의사노조협의회를 구성해 각 단체 의사노조가 모여 하나의 전국 단위 의사노조를 조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김은용 대구광역시의사회 의무이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의사의 발언권과 위상이 조금 높아지지 않았을까 잠시 착각했다. 끝나고 나니 정전 때 급히 가져다 쓰는 초나 건전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며 실망감을 토로했다.
김 이사는 "의사노조가 설립되면 병협과 의사 간 대립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병협과 노조가 대립하면 병원 입장에서는 보건의료노조도 벅찬데 의사노조가 생기면 병원경영에 불리해진다. 결국 수가문제로 귀결된다"면서 "병원협회는 정부에 수가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건전한 흐름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원의의 노동자로서의 인식 전환을 주문했다. "개원의들이 사용자, 사업자라는 주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조직에 속해있는 노동자로 속해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개원의는 관리의료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인식을 전환하고 노조의 한 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라 주장했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석한 이정원 노무사는 개원의 경우 현재 노동법·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지위여서 정식 노조원으로 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해 정식 노조원인 교수, 봉직의, 전공의와 뜻을 같이하고, 개원의 이슈는 노조원들과 협의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