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전공의, 전임의 강력한 투쟁에 이어 교수들 파업 동참 여부 촉각
"제자들 불이익 좌시하지 않겠다" 경고…20년전 의약분업 상황 연출되나?
4대악 의료정책 철폐를 주장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의료계 총파업이 전공의·전임의 사직서 제출이라는 상황까지 가면서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도 학교별로 성명을 내고 전공의 파업 및 의대생 국시 거부를 지지하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파업 및 국시 거부를 주장하는 제자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불이익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고만 밝힌 교수들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파업에 어떤 식으로 힘을 보탤지 논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내부에서는 파업에 동참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과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병원 밖으로 나가는 단체행동은 무리다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등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년전 의약분업 사태 당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계 파업에 동참했던 것처럼 강력한 입장 표명을 할 지 주목된다.
의대생·전공의·전임의까지 강력한 투쟁 전개…파업 동참 고민하는 교수들
전의교협은 2차례에 걸쳐 전공의 파업 및 의대생 국시 거부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또 제자들이 불이익을 보는 일이 없도록 선배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의협의 사태해결을 위한 협상이 결렬되고, 급기야 대통령이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하자, 후배 및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교수들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전공의들이 파업에만 그치지 않고 사직서까지 제출하면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부터다.
여기에 전국 79개 병원 전임의들 역시 27일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고 정부의 일방적 의료정책 추진 즉각 철회 및 원점 재논의를 주장하자 스승으로서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27일 저녁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 및 이후 정부를 어떻게 압박할 것인지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총파업에 교수들까지 동참하면 대한민국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겪었던 의료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0년 의료계 6월 폐업 때 의대교수들 사직서 제출하고 응급실 철수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당시. 의료계의 요구안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개선하려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의료계는 폐업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이른바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의료계 6월 폐업 투쟁.
6월 폐업 투쟁은 김대중 대통령이 의료계의 집단 폐업에 대해 "정부는 의료계를 '적대적'으로 탄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나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겠다는 생각은 안 된다"고 지시했다.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의 '적대적'이라는 표현이 의료계를 흥분으로 몰고 가는 등 의료계와 정부의 불신의 골은 깊어졌다.
폐업에서 가장 먼저 뜻을 모은 것은 대한전공의협의회. 6월 20일 폐업 1일째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1만 6000여명의 전공의들은 전날(6월 19일)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지역별 출정식과 전공의 총회를 개최했다.
또 부실한 의약분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는 정부에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고, 오후 3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경인지역 900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6월 21일 폐업 2일째에는 서울의대교수협의회가 6월 22일까지 정부의 수용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교수직 사퇴를 포함한 전면철수를 발표했고, 6월 23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어 6월 22일 폐업 3일째 전의교협은 오후 서울대병원에서 확대 대표자회의를 열어 23일 낮 12시 교수사직서를 일제히 제출하고, 응급실에서 철수하겠다고 결의했다.
다만, 응급실, 중환자실 및 입원실의 기존환자에 대한 진료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6월 23일 폐업 4일째 정부·여당은 오전 국무총리 공관에서 긴급 당정회의를 열어 조정안을 내놓고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7월 1일 시행하겠음을 밝히는 등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전의교협은 23일 정오를 기해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응급실에서 철수했다. 당시 교수들의 파업 참여는 의료계 투쟁에 큰 힘이 됐고, 정부도 교수들의 행동에 당황했다.
진료실 지키던 전국 의대교수들 4000명 모여 결의대회 개최
의약분업 사태 당시 성명서만 발표해오던 전의교협은 처음으로 2000년 8월 30일 오후 2시 가톨릭대학교 운동장에서 4000여명의 교수가 참여한 가운데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전국의과대학교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1000여명의 교수들이 참석할 것을 예상했으나 32도가 넘는 땡볕 아래 4000여명의 교수들이 참석해 대회장소였던 마리아 홀은 순식간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서 결국 의대 운동장으로 장소를 옮기게 됐다.
이 자리에서 김현집 전의교협 회장(서울의대 교수)은 약사법을 포함한 제반 의료 관련법 개정 등 4개 요구안을 제시하고, 정부의 구체적인 답변이 없을 경우 외래진료 철수 및 전면철수를 결의하기도 했다.
4대악 의료정책 철폐를 위한 총파업…교수들의 선택은?
다시 2020년 상황. 20년 전과 상황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우선 전공의와 의대생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27일 긴급회의 이후 3차 성명서는 이런 내용으로 발표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각 의과대학 교수회를 중심으로 의대생 국시 거부 및 전공의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이 나오고 있으며, 혹여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스승으로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제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만 냈는데, 최근 대통령이 파업에 엄정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하면서 동요하는 교수들이 많아졌다"며 "전의교협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내야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교수들의 노력에도 정부가 정책을 강행하고, 불이익을 보는 일이 발생하면 서서히 외래 진료를 축소하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를 선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