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백신도 일반 상자에 배송"…"국가 독감백신, 못 믿겠다"

"노인 백신도 일반 상자에 배송"…"국가 독감백신, 못 믿겠다"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0.09.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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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된 13∼18세 어린이 백신 외 '노인 백신'도 일반 택배 상자에 배달"
"유료 백신 맞겠다" 환자 늘어…'공급 부족'에 '급 중단'까지 "혼란 더하기 혼란"

국가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사업이 백신 유통상의 문제로 전면 중단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소재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한 어린이가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의협신문 김선경

국가독감예방접종사업(NIP)이 22일 일시 중단됐다. 유통 과정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다. 문제가 된 것은 13∼18세 어린이 대상 백신. 하지만, 개원가에서는 앞서 배달된 '노인 대상 백신' 역시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용 서울시개원내과의사회장은 [의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배달된 백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전에 백신이 오면, 아이스 박스 상태로 도착했는데, 그냥 일반 택배 상자 오듯이 배달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업체는 '신성약품'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시간이 조사되진 않았지만, 배송 과정에서 백신이 상온에 얼마간의 시간 동안 노출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2주간의 '일시 정지' 처분이 내려왔다.

이정용 회장은 "우리병원뿐이 아니라, 내과의사들 단톡방에서 배송 관련 이야기들이 많았다. 모두 일반 택배 상자로 받았다고 했다. 아이스박스로 받았다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면서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13∼18세 어린이 대상 백신 외에 노인 대상 백신 역시 이와 유사하게 배달됐다는 증언이 많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의사 커뮤니티에도 역시 같은 내용의 증언이 나왔다.

A의사는 "21일 노인 무료 독감 백신을 배송받았다. 종이상자에 담아서 왔다"면서 "아이스팩도 없었고, 냉기도 없었다"고 적었다. 댓글에서도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는 의사들의 댓글이 잇달아 달렸다.

방역 당국은 업체가 냉장차를 이용한 점을 들어 "아이스박스와 같은 수송 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지만, 이는 국가에서 진행하는 의무교육과 배치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정용 회장은 "(백신이)우리 병원에 오기 전에도 이런 상태(일반 택배 형태)로 돌아다녔다는 소리다. 어떤 환자가 이런 상태의 백신을 맞고 싶겠는가?"라며 "국가예방접종사업에 참여하려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이 있다. 백신의 보관과 이송 방법에 대한 것도 물론 포함됐다"면서 "의료기관에는 보관을 철저히 하라고 압박하면서, 정작 정부는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국가에서 하는 접종은 못 믿겠어요. 유료 백신으로 맞을 수 있을까요?"

NIP 불량 배송 사건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백신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유료 백신을 찾는 환자가 늘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환자 민원도 많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B이비인후과 개원의사(서울·이촌동)은 [의협신문]과의 통화에서 "다행히 인근 학교에서 오전부터 안내문자가 가서 생각보다 민원전화는 많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기존에 맞았던 분들이 자기 주사 괜찮냐고 물어보는 분들의 문의가 오히려 많았다"고 전했다.

B의사는 "환자분들께서 특히 걱정이 많으시다. 이번 사태로 인해, 모든 백신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정용 회장 역시 "방금도 60대 환자가 다녀갔는데, 유료 백신을 맞고싶다고 했다"면서 "무료접종 대상임에도 국가에서 제공되는 것은 못믿겠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백신에 대한 불신이 심어진 것 같다"고 한탄했다.

2살 짜리 아들을 둔 홍서현(36세·경상남도 김해시)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이에게 백신 예방접종을 더욱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며 "그런데, 이번에 배송이 잘못됐다고 하니 다른 연령을 대상으로 한 백신 역시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 이에, 유료 백신을 취급하는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사업이 백신 유통상의 문제로 전면 중단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소재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한 어린이가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국가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사업이 백신 유통상의 문제로 전면 중단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소재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한 어린이가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무료·유료 백신 모두에 '공급' 물량 부족…"수급 어렵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독감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으로 인해,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무료·유료 백신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C내과 개원의사(서울·불광동)는 "앞서 신종인플루엔자 창궐 당시에도 독감예방접종 백신 물량을 구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이에, 학습효과 등으로 인해 물량 공급 어려움을 두려워한 의료기관에서 사재기를 해두려는 곳도 봤다"며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현재 (1주당) 2만 5000원에서 3만원 까지 부르는 곳이 많다"고 한탄했다.

의료계 "상온 노출 백신, 당장 폐기해야"

환자들의 '백신' 불신이 높아지면서 의료계는 상온에 노출된 백신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WHO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4가 백신이 상온에 노출 된 경우 그 안전성은 '모른다'고 돼 있는 만큼, 안전성이 불명확하다는 의견이다.

개원의들은 최근 질병관리청에서 "상온에 노출된 백신을 검사해, 이상이 없다면 즉시 접종에 나서겠다"는 발표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반응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23일 성명에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상자에 담겨진 어르신 독감예방백신이 배달됐다는 소문이 허다하다. 어느 선까지 콜드 체인 시스템이 어겨졌는지도 모른다"면서 "이런 불안한 백신 공급 상황에서 명확한 판단기준도 없는 상온 노출 백신주사를 어느 의사가 안심하고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환자들 또한 이를 믿고 주사를 맞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당국의 안이한 접종 관리 상황 그리고 사태 발행 후 그 대책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원칙대로 의학적 상식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며 "각 병원에서 백신 보관 냉장고에 잠시 넣어둔 콜라 캔 하나로 엄벌을 받을 정도로 엄격했던 정부의 태도와 비교한다면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한 당국의 대처와 무책임에 실망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방역당국은 현 사태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적정 유통 업체 선정 및 유통과정의 단순화를 통한 안전성 확보는 물론 정확한 상황 파악으로 문제의 핵심을 찾아 같은 잘못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결하여야 할 것"이라면서 "반드시 의학적으로 타당한 결정으로 코로나19 시대에 필수적인 독감 예방접종을 전 국민이 안심하고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신의 유통 과정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22일 성명을 통해 "질병관리청의 발표대로 유통 과정상의 문제라면 해당 백신들의 수량 및 공급과정이 명확히 드러나 있을 텐데,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는 모든 의료기관으로 불신이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미 접종을 시작한 영유아와 국가지원사업 대상이 아닌 일반 국민들은 백신의 품질 자체와 안전성 문제를 걱정하며 큰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예방접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국민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더욱 동요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대응 지침이 필요한 부분으로는 ▲의료기관에 기공급된 백신 처리방안 ▲국가지원사업 대상자가 아닌 일반인에 대한 접종 여부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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