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남의 일은 도와 주지만 정작 자기 일에 힘들어 하거나 자신을 보살피기 힘들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속담과는 달리 전기이발기가 나온 이래 혼자서 삭발하는 스님들도 있다고 한다.
성형외과 의사 중에서도 거울을 보며 직접 보툴리눔톡신(보톡스)를 얼굴에 놓는 의사도 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이 성형수술을 받으려면 수술을 어지간히 잘한다고 알려진 의사가 아니고는 내 얼굴을 맡기기가 어렵다.
몇 해 전 필자도 윗눈꺼풀의 가쪽이 처지고 눈썹은 자꾸 팔자 형태로 내려가기에 '믿을 수 있는 의사'에게 얼굴을 맡겼다. 쳐진 윗눈꺼풀의 피부를 잘라내고 눈썹위 피부의 가쪽을 잘라내고 당기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후 아내도 그 의사에게 수술 받아 우리는 '젊은 부부'로 재탄생했다.
필자보다 6살이 위인 그가, 코로나19 여파로 환자가 줄어들어 그 동안 진료하던 강남의 성형외과의원을 폐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교수는 65세로 은퇴할 때 제자들이 '논문집'을 헌정하기도 하고, 학회지에 은퇴기념호를 발간하기도 한다. 반면에 개원의사는 수십 년 간의 '진료생활'을 접을 때 '폐업신고'를 하고 진료실을 홀연히 떠나면 그만이니 너무나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의 은퇴를 맞아 동료 성형외과의사로서 그와의 인연을 간략히 돌아본다.
20여년 전 강남집담회(1983년에 시작한 성형외과 월례집담회)에서 얼굴의 해부학에 관한 낸 논문 4편을 가지고 30분간 발표한 적이 있다. 발표를 마치고 나오는데 처음 뵙는 한 분이 필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발표를 잘 들었다며 "논문 한 편 쓰는 데 연구비가 얼마나 듭니까?"하고 물었다. 연구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당시 대학의 교내연구비로 연간 500만원 정도 받는 때였다.
그는 주름과 지방이식수술을 주로 하고 있었으며, 수술에 필요한 해부학적 구조 등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장기간의 수술경험을 통해 더 밝혀보고자 하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의 가설들을 밝혀줄 방법(method)과 그 결과를 논문으로 만들어 줄 사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동연구가 시작되고, 우리는 10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실었다.
그는 1976년 의사국가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모교인 조선의대를 빛냈다. 모교 성형외과 20주년 심포지엄에 그와 필자는 연자로 발표하느라 광주에서 만났다. 해남이 고향인 그는 운주사의 천불상과 칠성바위를 보여주며 마음을 다스릴 때 이곳을 가끔 찾는다고 했다. 그들 부부는 소쇄원의 정자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하루 밤을 지내는 '운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녹우당'에서 '해남 윤씨 종손어른'을 만나게 해주고 '윤두서 자화상'도 같이 감상했다.
그는 얼굴의 주름을 없애는데 지방이식과 얼굴당김술을 같이 사용했는데 그만의 특이한 철학과 방법이 있다.
"1. 넣고, 2. 빼고, 3. 당기고, 4. 지지고 볶는다"가 그것이다.
1. 지방을 배에서 채취하고 원심분리하여 필요한 부분에 이식한다. 2. 지방흡입술로 얕은 지방을 뺀다. 3. '일라스티쿰'이라는 탄성재료를 이용해 얼굴피부를 당긴다. 4. 마지막으로 필요 시 '필링'(peeling)한다. 그는 이런 자신의 '비법'을 학회에서 후배들에게 가감 없이 발표했다. 이 방법은 개원의들에게 '족보'가 됐다.
한 분야에서 남다른 수술 술기를 가졌으며, 아직 건강한 그가 코로나 여파로 환자가 줄어들어 병원을 접는 것을 보며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모쪼록 후배들에게 그 좋은 수술 술기를 전수할 기회가 이어지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