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실손보험 청구대행 강제' 및 전산체계 구축·운영 심평원 위탁 골자
20대 국회 무산 법안 21대 재추진...여야 의원 대표발의, 심사 과정 이목 집중
[의협 창립 112주년 특집] 실손보험의 '공습'…보험업법 개정안 실체는?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대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보험사 배만 불리는 악법"이라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7월 17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7월 31일),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10월 8일)은 '실손보험 청구 대행법(보험업법 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로 "번거로운 절차로 인해 보험소비자들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보험연구원은 실손보험으로 인한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높다며 보험제도를 손질, 내년부터 이용이 많은 가입자에게 최대 300%까지 할증하고, 비필수·선택적 의료에만 적용하는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필수치료는 '주계약'으로, 비급여는 '특약'으로 보장구조를 분리하고, 자기부담률도 10%P 상향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영 실손보험사들의 손해율이 높다는 이유로 기존 실손보험 상품마저 중단하고, 보험제도마저 뜯어고치려고 하는 상황에서 보험가입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청구 대행법'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들 보험업법 개정안은 실손보험 청구 서류를 환자가 아닌 의료기관이 대신 보험사에 제출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환자가 의료기관에 전자문서로 전송을 요청하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따르도록 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해당 업무를 위탁하는 내용도 담았다.
실손의료보험금의 청구업무는 가입이 강제되는 국민건강보험·국민연금·산업재해보상보험·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른 책임보험·연말정산 등과 달리 민간보험사와 보험가입자 간의 사적(私的) 계약에 따른 것이다. 이 사적 계약은 요양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청구업무를 대행토록 규정하고, 법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다.
의료계는 민영보험사와 환자 간의 사적 계약인 실손보험 청구 업무를 민간의료기관과 공공기관인 심평원에 떠넘겨 건강보험법을 위반하고, 법률 위임의 범위를 넘어섰다며 반발하고 있다.
환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보험사가 할 일을 의료기관이 대신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아울러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보험사 vs 환자'에서 '의료기관 vs 환자'로 전이되고,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 시 의료기관이 환자의 불만과 원망을 받는 구조로 바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의협신문]은 의협 창립 112주년을 맞아 '실손보험의 공습, 보험업법 개정안의 실체는?'이라는 특집 기획을 통해 10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보험업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은 무엇이고, 보험사들이 원하는 실손보험 청구대행의 속내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아울러 의료계가 이 법률안을 왜 반대하는지, 그리고 법률적 쟁점은 무엇인지 진단한다. [편집자주]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환자의 실손의료보험금 청구를 의료기관에서 대행하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정무위원회 심사 대상에 올라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추진됐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와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업법이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정무위원회)은 지난 7월 17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정무위원회)을 7월 31일,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은 10월 8일 각각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전재수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한 서류의 전자적 전송·수신 비용과 시스템 구축·운영 등의 비용을 보험회사가 부담토록 하는 내용이 있지만 이번 안에는 빠졌다.
전재수 의원안은 보험회사로 하여금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거나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중계기관은 보험회사 및 요양기관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계약자·피보험자·보험금을 취득할 자·대리인이 의료비 증명서류를 보험계약자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할 것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따르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전산시스템의 시설·장비 등에 관한 기준, 위탁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금융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토록 했다.
국민의힘 윤창현(비례대표) 의원안은 전재수 의원안과 유사하게 요양기관이 의료비 증명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송토록 규정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전산시스템 구축·운영 사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구체화했다. 아울러 심평원이 실손보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얻은 정보와 자료를 건강보험 업무에 사용하거나 보관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비밀 누설 금지조항과 처벌 규정도 마련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서울 노원구갑) 의원안은 전재수·윤창현 의원의 대표발의안과 맥을 같이한다.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위한 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토록 요양기관에 요청하면 따르도록 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고용진 의원안은 중계기관을 심평원에 위탁하면 정보를 집적하거나 향후 비급여 의료비용을 심사할 것을 우려하는 의료계의 입장을 일부 반영했다. 심평원이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 또는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비밀 누설 금지조항과 처벌 규정을 신설했다. 여기에 덧붙여 위탁업무와 관련하여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여당(전재수·고용진) 야당(윤창현) 의원 대표발의...민영회사 영리업무 위해 '공공기관' 동원
의료계는 문제의 법안들이 발의될 때마다 즉각 반발했다. 의협 등 의료계의 반대 이유는 명확하다.
첫 번째 이유는 불필요한 의사-환자 간 갈등과 법적 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민감한 환자 정부 유출 우려 등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 상충되며, 보험사가 취합한 정보를 이용해 보험 가입자의 보험 가입과 보험금 지급에 불이익을 줄수 있다는 것과 나아가 의료법 위반 소지도 다분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환자 정부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송 대행 역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에 의협과 각 광역시도의사회·전문과의사회 등은 반대성명을 연이어 발표해, 해당 법률안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특히 "심평원은 건강보험을 전문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설립된 준정부기관인 심평원이 실손보험 심사하는 것은 공공기관이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꼴"이라며 "민간보험 대책 TFT를 구성해 금융위원회 방안에 대해 조직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시민단체 등 유관단체와 공조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의료계 "의사-환자 간 갈등·법적 분쟁 야기...환자 정보 유출" 우려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관련단체도 의협의 반대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가 반대하고 나서 의료계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
건보공단 노조는 지난 4월 "'의료정보 빅브라더' 꿈꾸는 심평원-청구액 최소화하려는 보험사 결탁"할 우려가 있다며 문제의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를 주장했다.
건보공단 노조는 "실손보험료 의료기관 청구 대행은 민간보험 활성화와 의료영리화의 길을 터주는 일"이라며 "심평원이 보험 청구액을 줄이려는 민간보험사가 결탁해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시민사회·건보공단 노조 "민간보험 활성화·의료영리화 길 터주려 심평원·민간보험사 결탁"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실도 실손보험 청구 대행법이 병·의원에게 과다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신중한 법안 심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10월 이용준 정무위 수석전문위원 보험업법 개정안들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실손보험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 즉 요양기관에 실손보험료 지급 관련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부당성 여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제출 의무화되는 서류에 환자의 개인정보가 담겨 유출될 경우 부작용 발생, 보험사가 환자 개인정보를 활용해 보험 가입, 갱신, 보험급 지금 거부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실손의료보험계약에 있어 요양기관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요양기관에게 보험금 지급 행정에 관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관련 단체의 찬반의견도 적시하며, 법안 심사에서 신중을 기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손의료보험금의 청구 관련 사항은 민간보험사의 사적 계약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제3자인 요양기관에 본연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민간보험계약 관련 사항에 대해 법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 요양기관은 환자와 의료계약을 체결한 주체로서 환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환자가 정보를 전송하도록 지정한 제3자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송하는 것은 요양기관이 환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업무에 해당한다는 반론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은 "실손의료보험금 청구를 위해 제출되는 의료비 증명서류에는 환자의 건강에 관한 민감정보가 포함될 수 있는데, 이런 서류가 요양기관을 통해 전자적으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정보 유출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거나 해당 정보가 보험금 지급 외의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므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타 목적으로 이용될 부작용 사례의 예로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의 진료기록, 진료비 청구 내역 등의 진료 정보를 축적해 보험 가입이나 갱신, 지급 거부 등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계기관이 갖춰야할 자격·설비·인력 등 요건을 대통령령에 포괄위임한 부분도 우려했다.
한편, 문제의 법안에 대한 반대의견이 비등함에도 정무위원회는 11월 중으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법률안 심사를 결정한 상태다. 관련 법안을 여야 의원이 모두 발의한 만큼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 유관단체의 찬반의견이 법안 심사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