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의 평가를 위해 의사를 포함시킨 의약한정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히자 대한한의사협회는 "첩약 검증에 한약 비전문가 양의계 참여는 2만 5000여 한의사를 모욕하는 경거망동한 짓"이라며 반발했다. 앞서 한의협이 제작한 첩약급여화 홍보물에서는 대상질환 3가지 중 2가지에 의사의 치료를 병행하라고 했었다.
한약 검증을 한약 전문가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과정과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영국에서 성행하던 영적치유를 검증해 효과가 없음을 밝힌 주인공은 영적치유전문가가 아니라 재활의학과 의사였던 에드짜르트 에른스트 교수였다.
최근 암환자들에게 산삼으로 만든 약침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며 환자에게 수천만원의 진료비를 받은 한의사들이 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민사재판에서는 환자에게 받았던 돈을 유가족에게 반환하라는 법원의 결정도 있었다. 이 한의원은 소송기간에 더욱 번창해서 한방병원으로 확장했고 건물도 한 채 더 늘린 유명한 곳이라 의미가 크다.
무려 8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한 한의사들에게 사기죄가 인정된 배경에는 의사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전국의사총연합, 한방대책특별위원회의 의사들이 한의사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필자도 생명과학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실험 논문 반박 등에 참여했다.
소송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절박한 심정의 암환자들을 현혹시켜 환자가 평생 모은 돈을 임종 전에 갈취하는 행태를 보다 못한 전의총이 피해자들을 도와 나섰다.
한의원 홈페이지에 말기암 환자 호전사례라며 CT 영상을 제시한 38건 중 36건은 동일한 영상이거나 비교가 불가능한 서로 다른 부위의 사진이며, 2건의 영상에서만 호전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지적했다. 호전 사례도 원인이 약침이 아닐 수 있어서 근거가 될 수 없음도 설명했다.
한의사들은 산삼약침 관련 논문들을 근거로 제출했다. 필자를 비롯해 전의총, 한특위의 전문가들은 세포실험·동물실험·증례보고 등 수십편의 논문 중 단 하나도 암치료 효능을 입증하거나 한의사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증류해서 만들었다는 약침액에 진세노사이드가 포함될 수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감정에서도 진세노사이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의사들은 진세노사이드가 검출됐다는 성분분석결과지를 제출했다. 필자는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적은 양인지 다른 논문들과 비교해 자료를 제작했다.
결국 법원은 한의사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의학과 과학 전문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기이며 허위과장광고라고 판결했다.
약침을 경혈에 주사했다면 한방 원리를 주장해볼 수 있었겠지만 정맥에 주사했다. 산삼의 '한의학적 성질'이 암치료 효과가 있다는 모호한 주장만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몇몇 진세노사이드 분자 이름들을 거론하며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 자연사멸을 유도한다고 환자를 속였다. 과학의 용어를 사용해 주장하는 바람에 진실인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게 되어 사기가 됐고, '혈맥약침'이라며 의사의 행위인 정맥주사를 하다 무면허의료행위까지 처벌받게 됐다.
이곳을 비롯해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한의사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들의 주장이 사기가 아님을 입증한다면 2100년까지 매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대한민국이 독식할 수 있겠다. 한의학 연구 예산이 1년에 1000억원 정도인데 왜 노벨상이 없을까?
의사를 줄곧 비난하던 한의사단체인 참의료실천연합의 간부가 한의계 내부 문제로 쓴 글이 드러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시는 동안 한의사인 자신은 아버지를 '양방병원'에 맡겨놓고 해드릴 게 없었다는 대목이 있었다.
이 한의사처럼 실상을 안다면 암을 치료한다는 한의사들이 주위에 있어도 속지 않고 가족을 의사에게 맡기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환자들이 속지 않도록 지식을 설명하면 한의사들에게 고소당한다. 필자처럼 각오하고 사명이자 직업으로 삼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를 알아도 나서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한의약육성법, 한의약육성발전 종합계획 등 한방 지원에 적극적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한의약진흥원 등 한방을 위해 일하며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사람들도 수백명 이상이다.
그런데 국민에게 절실한 한방 치료의 효과 검증(연구는 하는데 효과가 없다고 판명돼서 폐기한 한방치료법이 하나도 없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이나 사기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국민에게 세금을 걷는 국가가 국민을 위한 일을 해야 하는데 환자보다 한의사들의 이권이 우선순위인 것 같다.
필자는 후원회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으로부터 월급을 받아서 이 일을 하고 있다. 한의협한테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서 무혐의로 종결된 일도 있었다. 2021년부터는 한의사, 환자, 환자를 도우려는 전문가들이 서로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국가가 국민을 위해 나서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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