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보복(同害報復)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

동해보복(同害報復)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

  •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1.1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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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이 최선 다해 진료해야 국민 건강권 지킬 수 있어
의료분쟁특례법 제정해 진료 위축·환자 건강권 침해 막아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의협신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의협신문

3,700년 전 함무라비 법전에는 "의사가 사람에게 수술칼로 중한 상처를 만들어 사람을 죽게 하였거나, 혹은 수술칼로 사람의 각막을 절개하여 사람의 눈을 못 쓰게 하였으면, 그의 손을 자른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논리를 담은 함무라비 법전은 수천 년 전 바빌로니아를 지배한 법리였다. 

지난해 9월 A대학병원 교수가 장폐색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됐다. 2018년 10월에는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했다며 의사 3명을, 2017년에는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집단감염 사망 사건이 벌어지자 의료진 3명을 구속했다. 

진료 중 예상치 못한 악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구속하는 것은 법리보다는 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고의로 환자의 생명을 해하려는 의료진은 없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진료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진료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의료인 법정 구속은 설득력이 없다.

의료사고에 대한 오해는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을 포함한 진료에서 발생하는 부(副)작용이나 부(否)작용은 이미 알려져 있다. 아무리 주의 의무를 다한다고 해도 부작용은 발생한다. 부작용은 발생 가능성·빈도·정도·위험성 등 확률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의료인들은 이런 부작용을 의료사고로 인식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부작용뿐만 아니라 불만족스러운 주관적 치료 결과까지도 의료사고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의료사고는 매우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건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부작용 발생에서부터 인지, 대처에 이르기까지 주의 의무에 초점을 맞추면 의료 사고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악 결과를 마주한 환자와 가족들의 감정 폭발과 이어지는 소송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많은 소송에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일부 승소 및 부분 기각을 선고하고 있다. 

병원 측은 무과실 배상이라는 비(非)논리를 받아들여야 하고, 환자 측은 일부 승소라는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세간에서는 의료소송에서 환자들이 이기기 어렵다고 하지만, 일부 승소 판결을 포함하면 실제 승소율은 낮지 않다. 

의료사고의 과실은 의료진 측면에서 주의 의무가 중요하고, 환자 측면에서는 고지 의무가 중요하다. 부(副)작용이나 부(否)작용의 발생은 막을 수 없지만 발생 이후의 대처는 악 결과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소송에 돌입한 경우 방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환자의 고지 의무, 가령 혈우병처럼 치명적인 출혈 성향이 있는 경우 처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환자 책임을 무겁게 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병력을 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2017년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감염으로 인한 사망사고처럼 의료진이나 환자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의료 소송을 당한 의료진 개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면서 또 다른 환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된다. 진료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데, 소송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하는 진료를 위축시키고, 다른 환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의료분쟁이 늘어날수록 환자들의 건강권 침해 범위도 늘어난다.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과 악 결과에 대한 감정 폭발이 만들어낸 의료분쟁으로부터 의료진이 자유로워져야 하는 이유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것은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건강권을 강화하며, 의료 이용을 늘리는 것이다. 의료 이용이 늘어날수록 의료분쟁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분쟁의 위험성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의료소송의 결과가 진료를 위축시키고,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은 누구도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 

의료분쟁을 예방하고, 진료권과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의료분쟁특례법이건 건강권 보호법이건 의료진이 최선의 진료를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장폐색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거나,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했다거나, 신생아 집단감염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진을 법정구속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자괴감이 든다. BC 1750년 전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함무라비 법전은 밝힌다. "의사가 사람을 죽게 하면, 그의 손을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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