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광호 명예교수의 의사의 길-(4)그래도 의사가 되려는 이유

맹광호 명예교수의 의사의 길-(4)그래도 의사가 되려는 이유

  • 맹광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예방의학)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2.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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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광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예방의학)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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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맞아, 올해도 3,000여 명의 우수한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2개 의학전문대학원을 제외한 전국 38개 의과대학의 수시와 정시모집 과정을 통해 새로 의대에 입학했다. 전국의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 수는 오히려 해마다 조금씩 더 늘고 있는 상태다. 금년도 의과대학 수시 평균 경쟁률은 무려 33:1, 정시 경쟁률은 6:1 정도였다고 한다. 
 
우수한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이처럼 의대로 몰리는 이유에 대해서, 언론들은 대체로 의사의 '직업적 안정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의사는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는 직업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이런 견해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 중에는 꼭 경제적 안정성 때문이라기보다 의사라는 직업이 남을 돕는 일이어서 다른 어떤 직업보다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막상 진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질 않는다. 

가끔 언론매체 등에서 다양한 직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직업 만족도'를 조사해서 발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들의 직업만족도가 거의 모든 직종 사람들 가운데 최하위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한 사회조사기관이 40여 개 직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사진작가와 문인, 그리고 작곡가와 인문학자 등의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았으며, 의사는 끝에서 두 번째였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의사들의 직업만족도가 다른 어느 나라 의사들보다도 낮다는 점이다. 다소 시간이 지난 자료지만, 2008년 가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의사회 총회' 특별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의사들의 직업만족도는 북미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 13개국 가운데 12위로 거의 최하위였다. 의사직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도 전체 조사대상 의사들의 56%가 '좋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대답한 데 비해, 우리나라 의사들 가운데서는 단 5%만이 긍정적으로 응답하고 있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차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그들의 직업만족도가 낮은 이유를 주로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과 의사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 인식'에 둔다. 이것이 맞는 판단인지 아닌지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그동안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의료계와 정부와의 갈등이나, 날로 증가하는 의료분쟁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런 이유가 저절로 개선되고, 그래서 의사들의 직업만족도가 더불어 높아질 가능성이 있느냐이다.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사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 스스로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홈페이지에서 이들이 지향하는 교육목표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유능한 의사', '좋은 의사', '사회가 바라는 의사', 등을 양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모두가 바람직한 교육목표이긴 한데, 의사들의 낮은 직업만족도를 보면 아무래도 저런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목표들이 너무 관념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레토릭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의대 교육목표가 의사들의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다는 느낌 때문이다. 지금 정작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일이다. 그래야 저런 의사의 덕목들도 가능하고 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고 추상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행복'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내가 불행한 것은 대체로 남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코 명예나 돈처럼 눈에 보이는 '외적 가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성과 지혜 같은 '내적 가치'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제 답은 분명해진다.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의학적 지식과 기술 못지않게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행복한 삶을 위한 정신적 가치를 키워야 한다. 

미국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초창기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내과 교수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 1869-1919)는 이미 20세기 초에 "의사들의 진료 활동에 필요한 지식의 최소 1/3은 의학 이외의 학문에서 온다."라고 했다. 의사들에게 있어서 삶에 관한 폭넓은 이해와 인성의 필요성을 주장한 그의 시대를 앞선 혜안이 놀라울 정도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 대부분 의과대학들에서는 의학지식과 기술 못지않게 인성을 기르는 교육을 통해 균형 잡힌 의사 만들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학 내지 의료의 본질, 그리고 의료윤리를 포함한 직업전문성, 등 소위 '의료인문학' 관련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시(詩) 중에 단 세 줄짜리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이 짧은 시는 무엇이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 사람들 마음에 참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시로 유명하다.

의사라는 직업이야말로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매일 매일 그 누군가에게 뜨거운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직업이다. 이보다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직업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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