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P 의학' 시대…의사의 자세·능력 함양해야
'소통능력' 포함한 '의료인문학 교육' 강화
요즘, 전 세계 의과학 분야에는 '미래 의학'이 최대 화두다. 유명대학마다 관련 연구소를 만들고, 전자 산업 개발업체가 많이 모여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미래 의학을 주도할 바이오 연구개발 업체가 줄을 이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30년 동안, 컴퓨터, 인공지능, 생명공학, 그리고 빅 데이터 관련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이를 융-복합적으로 의학 분야에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이런 의학기술이 보편화할 것으로 생각되는 미래를 '4P 의학(4P Medicine)' 시대라고 부른다. 여기서 '4P'는 Predictive, Preventive, Personalized, Participatory 라는 영어 단어들의 첫 글자 P를 모은 것으로, 장차 개인에게 발생이 예측되는 질병까지 찾아내어 예방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1994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시스템 생물학자 르로이 후드(Leroy Hood, 1938∼ )가 의학 학술지 Science 에 처음 언급한 이후, 세계 최고 의료정책 연구 및 자문기관인 미국의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 IOM)'가 2010년을 전후해 정리한 개념이다 (IOM은 2015년 National Academy of Medicine 으로 명칭을 변경했음).
'4P 의학'의 전형적인 실천 사례는, 역시 2013년 '예방적 양측 유방 전절제술'을 받은 할리우드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1975∼ )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졸리는 할머니와 이모, 어머니가 유방암과 난소암의 가족력이 있었고, 본인도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 관련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자, 의사와의 상담을 거쳐 미래에 예측되는 유방암 발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리 수술을 받았다.
미래 의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 중에는 이런 '4P 의학'이 과연 인류에게 바람직한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불가피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이를 우리 인간의 삶에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게 대세다.
의학계가 지금 '4P 의학' 시대의 도래에 관해 관심을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질병 진단도, 치료도 거의 모두 인공지능과 초정밀 기계가 해 주는 상황에서 과연 의사들은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자괴감 때문이다. 이런 상항에서 어쩌면 의사는 단지 환자에 관한 임상 증상과 필요한 검사항목들을 기계적으로 입력만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의 과학적 측면의 발전이 의사들에게 설 자리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래 의학자들은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다만 의사의 역할이 달라질 뿐이다. 예컨대, 질병 진단과 치료과정에 있어서 의학적 지식을 가진 의사는 환자와 더욱더 긴밀한 소통을 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건강 행동이나 생활행태 등에 관해 좀 더 많은 의학적 지식과 폭넓은 인문 사회과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4P 의학' 시대를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IT)'이나 '생명공학(biotechnology, BT)' 기술 등이 이미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을 이용한 '4P 의학' 시대를 이끌어 갈 의사들의 자세와 능력인데, 이 점에서도 우리나라는 매우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유능한 인재들이 해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있고, 의학교육 또한 선진화된 '의과대학 평가인증제도' 등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능적인 의료인을 넘어서는 지식인이 되도록 의과대학마다 '소통능력'을 포함한 의료인문학 교육을 강화해 가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학자들조차 의학의 인간화를 위한 노력에 참여하고 있어서 더욱 더 희망적이다. 2016년 10월에 국내 철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생명과학자 등이 모여 <미래 의료 인문사회과학회>라는 긴 이름의 학술단체를 발족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이 학회 설립에 앞장선 한 법학자는 학회 창립 인사말에서, "의료에 관한 과학, 기술 전문가와 인문학 및 사회과학 전문가가 함께 모여, 생명과학과 의료기술의 현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 변화 동태를 날카롭게 관찰하는 기초 위에 우리의 풍부한 상상력을 결집하여 미래 의료가 야기할 여러 과제와 그 해답을 연구해 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은 국가와 이념과 역사를 초월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고양하는 바에 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의학과 그 실천을 위한 의료가 단순히 과학적 지식과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환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소통할 때 건강증진과 질병 치료라는 의학의 진정한 학문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의료계 안팎에서의 이런 변화는, 능력 있는 미래의사 양성과 '사람 냄새' 나는 진료 현장을 만들기 위한 매우 긍정적 변화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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