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기대감에 문의 급증·노쇼 백신 접종 후기 공유 '포착'
전문가 "이미 예견된 혼란…이제라도 제대로 된 시스템 마련해야"
"남는 백신 있나요?"
최근 '노쇼 백신'을 맞으려는 희망자들이 늘고 있다. 노쇼 백신은 예약을 해놓고, 이행하지 않는다는 뜻의 '노쇼'를 코로나19 백신에 붙여 만든 단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예약해 놓고,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접종하러 오지 않아 생긴 잔여 물량을 일컫는다.
실제 인터넷 검색창에 '노쇼 백신'을 검색하면, '노쇼 백신 맞은 후기', '노쇼 백신 맞는 법', '노쇼 백신 어디서 맞을 수 있나요?', '대형병원보다는 동네의원 노쇼 백신 맞기가 더 쉬워요' 등 접종 경험을 공유하거나 문의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위탁의료기관에서 접종하는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바이알 당 7∼10명이 접종받을 수 있다. 이때, 1바이알을 개봉한 순간부터 시간제한이 생긴다. 접종 지침에 따라, 개봉 후 6시간 이내에 접종을 마쳐야 하기 때문.
이에, 정부는 폐기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노쇼 백신'의 경우, 누구나 접종이 가능하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4월 19일 브리핑에서, 잔여 백신과 관련한 [의협신문] 질의에 "접종을 우선적으로 맞아야 하는 고위험군이 좀 더 많이 맞게끔 안내를 하지만, 백신을 개봉한 이후 6시간의 시간적 제약이 있다"며 "이에, 그 시간 안에 추가 접종대상자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누구나 예방접종을 할 수 있도록 일부에 대해서는 재량권을 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쇼 백신 찾기 열풍은 해당 지침이 처음 발표됐을 때보다 최근 더 '핫'해졌다. 백신 접종 후 '자가격리' 의무 면제 발표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경우 '자가격리' 면제도 함께 발표됐지만 접종 열풍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해외여행 후 자가격리 면제' 부분이다.
유명 E여행커뮤니티에는 "6월에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 오전에 노쇼 백신을 접종하고 왔다"며 "운 좋으면 여행 전까지 2차까지 완료해 귀국 후, 자가격리가 면제되길 희망해 본다"는 글이 올라와, 조회수 1300을 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댓글에는 "저도 대기 명단에 올려놨는데, 연락왔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어려우면 미국에서 맞고, 여행을 다닐 생각도 하고 있다", "지방은 그나마 노쇼(백신)을 찾기 쉬운데, 서울은 하늘의 별따기다" 등 반응이 이어졌다.
조승국 원주의료원 과장(내과)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진을 하면서, 최근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조승국 과장은 "그전에는 휴가를 내고 가더라도 추가로 2주를 더 격리해야 하니, 현실적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해외 업무가 필요했었던 회사인들 역시, 관심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해외관리 업무가 밀려 있었던 상황에서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노쇼 백신 열풍이 백신 폐기량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위탁의료기관에서는 쏟아지는 문의 전화를 감당하고 있다는 호소도 나온다.
인천 소재 A위탁의료기관의 경우 "하루에 백신 잔여량을 묻는 전화만 거의 100통은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A의료기관은 "예약이 취소되어야 잔여량이 나오는 건데 예상할 수 없으니 언제 차례가 오느냐는 민원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문의 전화까지 하면 다른 업무는 거의 보지 못할 지경"이라며 "현재까지 등록된 대기자만으로도 이미 포화상태"라고 덧붙였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접종 희망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오랫동안 가족을 보지 못했다는 B씨(43세·서울)은 "해외에 있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도, 휴가에 자가격리 기간까지 감당이 되지 않아,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 자가격리 면제 소식을 듣고, 노쇼 백신을 찾았다"면서 "20군데를 전화한 끝에 겨우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형병원은 아예 불가능했고, 동네의원의 경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되도록 빨리 접종을 완료하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 기자가 서울 소재의 한 위탁의료기관에 '노쇼 백신'을 문의해 보니 "언제 받을 수 있을지는 기약 없고, 연락이 왔을 때 10분 안에 오셔야 접종을 받을 수 있다. 대기자 명단이 얼만큼 쌓여 있는지는 안내드리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창원 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앞서 각 전문과의사회와 질병청과 회의를 진행했을 때, 노쇼 백신과 관련한 혼란을 경고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마상혁 부회장은 "개인의원의 경우, 직원 수가 적기 때문에 전화상담으로 대기자를 받게 되면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라는 지적을 했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결과 발생한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노쇼 백신 상담 문제 외에도 대기 공간 확보 문제 역시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 상황이다. 실제 현장에 있는 위탁의료기관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듣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끝으로 "지금부터라도 정부에서 중심을 잡고, 이 부분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노쇼 백신을 관리하는 애플리케이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3일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 브리핑에서 "잔여 백신이 발생할 경우, 사전 동의한 희망자에게 알림을 통해 접종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기남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예방접종관리반장은 같은 날 "일괄적으로 남는 백신을 활용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예기치 못한 백신이 남아 폐기되는 것을 최소화할 것"이라면서 "각 의료기관에서는 남는 백신을 등록하고, 사전 희망자는 남는 백신이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 매칭해 줄 수 있는 기능을 갖춘 백신 활용 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쇼 백신'과 관련, 매체 접근도가 높은 연령대가 백신을 더 많이 맞는 '차별'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어, 방역당국의 고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승국 과장은 "백신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목하에 노쇼에 대해, 체계 없이 진행하면서 일어나는 혼란 중 하나"라며 "차별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취약 계층이나 고령층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촘촘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과장은 "장기이식을 할 때도 위험도가 더 높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주게 된다. 백신 역시 위험도가 높은 대상자들, 예를 들어 고령층 등을 우선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시스템이 좀 더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