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가협상, 도대체 무슨 근거로 결정하며,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기고] 수가협상, 도대체 무슨 근거로 결정하며,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 garden@kma.org
  • 승인 2021.05.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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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

2022년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협상이 시작된 후 어느덧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에 가입자단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예년과 크게 변화된 게 없어 보인다.

올해는 새로운 대한의사협회장 취임과 맞물려 협상단 선정 등 준비가 늦어졌다.

다만 주목할 점은 그간 의협이 진행하던 일을 대한개원의협의회로 이관한 점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의협은 종주단체로서 대한병원협회·대한개원의협의회·대한의학회 등을 아우르면서 차질없이 진행하기를 바란다.

수가 협상에는 크게 두 축이 있다. 즉, 건강보험 가입자와 공급자 단체다. 가입자를 대표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유형별 공급자 5개 단체가 매년 5월이면 협상에 돌입한다. 5개 단체 외에도 조산사와 보건기관이 있으나 협상 및 결정 방식이 달라 논외로 한다.

지난 2000년 건강보험법 제정을 계기로 이전까지 보건복지부가 고시로 정하던 의료수가를 건보공단과 공급자 간의 협상으로 결정하게 됐다. 하지만 이 '협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협상과는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일반적으로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며,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수가 협상을 막상 경험해 보니 공급자 단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는 약자의 입장이며,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는 길 이외에는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의료수가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보자. 의료수가는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상대가치 점수당 단가)의 곱하기로 정한다. 요양급여의 가치를 점수로 나타내는 상대가치점수는 관련 학회에서 조율을 거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결정하고, 환산지수는 건보공단과 공급자들의 수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그런데, 상대가치점수는 수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서 건강보험 공급자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총점을 원칙적으로 고정하고 있어 인구 고령화나 신의료기술의 개발 등으로 인한 자연 증감분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환산지수의 연구와 산출방식은 더 큰 문제가 있다. 

2008년부터 미국에서 도입한 '지속 가능한 진료비 목표증가율(Sustainable Growth Rate, SGR) 모형'에 따라 건보공단이 수가 협상에서 반영하는데, 의료비가 지나치게 증가하지 않도록 적정한 진료비 증가율을 유지하는데 목표를 두다 보니 의료의 질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기 어렵다.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미국은 2015년에 폐기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대체할만한 방법이 없어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인정 가능한 증가율(Acceptable Rate, AR) 모형'을 개발해 대체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 역시 크게 보자면 SGR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수가 협상을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건보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수가 인상분 결정구조다. 주로 건보 가입자 대표들로 구성된 재정운영위원회는 익년도 수가 인상에 투입할 재정, 즉 밴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보수적이라고 한다. 의료의 질을 높이려면 충분한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그 구성에 있어 직장가입자 10명, 지역가입자 10명, 공익대표 10명으로 이뤄져 있어 공급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도 수가 협상 도중에 좀 일찍 결정하면 협상 전략에 도움이 될 텐데, 수가 협상 마지막 날 그나마도 자정을 전후해서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니 공급자 수가협상단들은 밴드를 모른 채 소위 '깜깜이 협상'을 해야 하고, 건보공단 역시 제대로 된 수치를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수가 협상 마지막 날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든 게 결정이 되는 구조이다.

그러니 재정운영위원회가 밴드를 정하고 나면, 그 돈으로 몇 시간 내에 공급자들 각 유형이 공단과 '밀당'을 하면서 파이 나눠먹기식 수가 협상을 하고, 새벽이 밝기 전에 끝내야 한다. 이러니 유형별 특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의료의 질을 제고할 수 있겠는가? 

유형별 수가 협상 초기에는 협상이 결렬되면 건보공단은 건정심 협상에서 제시한 수치보다 더 낮은 수치로 수가를 결정하도록 이른바 '페널티'를 요구했다. 

협상이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하는 것인데도, 공급자들이 페널티를 받을 때 건보공단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이 또한 현행 수가 협상의 불합리성과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증명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 건보공단 우위의 협상 방식과 가입자단체 대표들이 주도하는 재정운영위원회의 보수성,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려는 정부 방침 등으로 인해 공급자단체 대표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껏해야 수가 인상률은 2∼3% 수준에 불과한 구조가 됐다.

그간 얼마나 많은 협상단과 위원들이 자괴감과 허탈함에 몸서리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그간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고 싶을 정도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실정은 이렇다.

의원급 의료기관 수는 3만 3,115곳으로 총진료비의 19.6%를 점유하고 있는데 반해 불과 42개의 상급종합병원이 무려 17.6%를 차지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로 일차의료가 붕괴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대비 20년간 진료비 증가율은 병원의 절반 수준이며, 연평균 증가율은 6.2%로 다른 종별에 비해서도 가장 낮은 상황이다.

진료과목별로 봤을 때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는 전년 대비 진료비가 각각 55.2%, 24.3%나 줄면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건당 진료비는 비급여의 급여화와 내원일수 감소로 인해 처치와 검사 등으로 일부 과목에 따라 오른 것 이외에 입내원일수 -13.7% , 실수진자수 -3.7%, 1인당 입내원일수 -10.4% , 기관당 총진료비 -1.5%, 기관당 행위료 -1.5% 등 모든 데이터에서 감소 폭이 매우 큰 상태다

그 와중에도 의료정책연구소 인건비 분석자료를 보면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과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등 매우 어려운 조건 속에서 간호사 등 의료인력 고용이 2020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24.16% 증가했다. 고용 창출에 의원급 의료기관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지금도 모든 의료기관이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모든 의사들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답해야 한다. 한 번만이라도 의료와 국민 건강을 위해 원가 이하의 수가를 정상화 해주길 바란다. 적정부담이 적정진료와 최고의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밝혀주길 바란다.   

또 지난 십여 년간 누적된 건강보험 국고 미수금이 물경 24조 5374억 원이다. 최근 4년간 법정 지원금 지원 비율은 더 줄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코로나19 관련 지원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점 또한 밴딩폭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른 나라는 공적 보험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10%를 넘는 주요 국가의 최근 수가 결정 구조를 살펴보면, 미국은 2015년 SGR 모형을 폐지하고, QPP(Quality Payment Program) 모형을 도입했다. 의료의 질이 높은 의료공급자는 보상을, 성과 기준에 미달한 공급자는 삭감할 수 있는 구조다.  

평가는 ▲질(Quality) ▲개선 활동( Improvement Activities) ▲상호 운용성( Promoting Interoperability) ▲비용(Cost) 등 네 가지로 한다. 기본 성과급과 최상위 성과급에 속한 의료인의 최대보너스는 각각 0.21%, 1.68%다. 

독일은 1993년부터 부문별 총액관리제(Sectoral budgeting system)를 운영하고 있다. 

전체 총액이 아니라 주요 진료 서비스 영역별로 각각의 총액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외래·입원·약제부문에서 각기 상이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외래는 총액계약 범위 내에서 행위별수가제에 기반해 진료비를 지불하며, 입원은 포괄수가제를 적용해 지불하고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보험료율을 14.6%로 동결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한 증가율을 국가의 기본임금 소득인상률로 고정해 건강보험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진료비 지불제도는 행위별 수가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의원급은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진료보수가를, 병원급은 행위별수가제에 포괄수가방식을 혼용하고 있다. 

수가 결정구조는 행위별점수X환산지수(점수당 단가)로 결정하는데, 환산지수는 점수당 10엔으로 고정돼 있다. 수가 결정은 행위별점수의 조정과 진료 항목 신설에 따라 이뤄진다. 2년마다 수가를 개정하며, 2019년 진료보수 전체 개정률은 2018년에 이어 감액됐다. 일본은 초진료가 2000년 2만 7000원(2700엔)에서 2019년 2만 8800원(2880엔)이며, 재진료는 2000년 7400원(740엔)으로 시작해 2019년까지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대만은 총액계약제를 토대로 진료의 특성에 따라, 행위별수가제·포괄수가제·일당정액제·인두제 등 다양한 진료비 지불 제도를 혼합해 운영하고 있다. 기본 예산은 보험자와 공급자간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협상요소와 의료서비스 원가 변화, 인구 구조 변화 등을 비롯한 비협상 요소로 구성하고 있다. 특별 예산은 의료비용 조정, 의료접근성, 질 향상 등을 위해 제공하는 예산으로 성과보상제·주치의제도·외래통합서비스 등이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지불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독일·일본·대만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마다 환산지수의 역할 정도가 다르다

환산지수가 단순히 '행위당 상대가치점수에 적용하는 단가 산출' 역할만 하는 일본과 달리, 미국·독일·대만은 가격 통제에 의한 진료비 지출관리와 나아가 가격과 볼륨을 통제하기 위한 거시적 진료비 증가 관리를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환산지수의 주요 역할은 '행위당 상대가치점수에 적용하는 단가 산출' 및 '가격 통제'의 목적이 크다. 정부는 진료량·진료비 통제 및 관리 기전으로 진료비 목표관리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협과 의료정책연구소를 비롯한 수가협상단은 이런 문제에 주안을 두고, 향후 의료계를 위한 환산지수 연구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인 의료정책과 수가는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원가 이하의 저수가에 허덕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력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협상해야 한다

필수진료과 육성과 올바른 의료전달체계 확립, 공공의료 활성화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의료수가 협상제도와 함께 적정한 원가를 보상하는 수가 연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 가입자단체의 대표인 건보공단과 재정운영위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한다.

아울러 공급자 단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수가 협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 의료계가 지속해서 요구한 건정심의 구조 역시 개선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수가 계약에 임하는 현 협상단에게도 철저한 준비로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지면을 빌어, 김동석 단장, 좌훈정 간사, 그 외 위원들과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박유환 광주광역시의사회장 및 자문단, 자료 준비와 대응에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의협과 대개협 팀장과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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