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투명성·책무성·자율성 확보해야
'전문직 자율권' 구축 문제 해결 '핵심'
최근 대리수술을 문제로 사무장 병원이 다시 문제가 됐다. 이제 대리 수술과 사무장병원에 대한 기사는 언론에 보도가 되어도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반대로 가볍게 받아 들일 수는 없는 골치 아픈 만성병적인 사안이다.
사무장병원은 주로 비의료인이 면허가 있는 의료인을 바지사장(바지원장)으로 앉혀 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의 실질적인 경영주체는 물론 사무장이다. 대신에 개설을 임대한 원장에게 고액의 급여를 지급한다.
의사가 사무장병원인지 모르고 들어갔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면죄부의 고려 대상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사무장병원에 근무하며 사무장의 경영간섭을 묵인한 것 자체가 사무장병원을 은폐해 주는 능동적 역할을 한다는 비판에 자유스러울 수 없다.
또 다른 사무장병원의 형태는 의사 자신의 지분과 비의료인의 지분을 받아 병원의 수익을 분배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사무장병원의 형태가 어떻든 결국 의사의 면허대여로 개설하고 비의료인과 동업하는 형태로 간주된다. 최근에는 허위 출자금 납부와 서류상 총회를 거쳐 그럴듯한 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사무장병원의 허위나 과다청구 그리고 평균을 웃도는 재원기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대한 공공 의료보험 재정에서 조직적인 허위청구는 여러 나라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사무장병원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설립이 불법인 경우인데 비의료인에게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제도에서는 의료비란 의료 활동에 대한 의료수가와 더불어 투자자의 자본에 대한 보상과 투자자의 영리추구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직장 창출이라는 명분하에 전문자격사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비의료인의 의료기관개설이 한동안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개방적 제도가 초래하는 의료의 상업성 문제, 그리고 의료윤리의 파괴 문제로 결국 의료소비자인 환자의 피해와 진료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되는 부작용이 예측되어 시행하지 못했다.
의료 기생충 같은 사무장병원의 사례는 의료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선진국에서 사무장병원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의료기관 개설에 대한 심사가 까다롭고 의사의 고용에 대한 심사도 엄격해 사무장병원 자체가 설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서 프랑스에 의사가 고용계약을 맺었다면 고용계약서를 면허기구에 제출하고 고용계약 상태가 의사의 임상적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심사한다고 한다. 선진국 의료윤리에서 의사의 임상적 판단과 독립성 보장은 의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의사를 고용하는 주체는 반드시 이를 보장해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임상과장을 하던 시절 매월 열리는 임상과장회의의 주요 화두는 의료수익 실적과 전년대비 증가율 등이다. 의료수익이 떨어지면 원장은 이를 자신의 능력과 실적에 대한 우려로 간단한 피검사와 흉부사진 촬영만 부지런히 해도 경영수지가 개선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물론 거대한 대학병원의 경영자로서의 고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병원의 리더가 공식적인 석상에서 할 내용은 아니다. 이것이 외국의 경우 독립성에 대한 압박이나 임상 자율권에 대한 훼손으로 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발언의 비윤리적 내용으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사무장병원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과 같은 대처방식은 실패임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와는 다른 방식의 원천 봉쇄제도와 중간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능동적 혹은 수동적인 공모자인 면허대여 의사에 대한 교육과 계도도 필요하다.
일부 의사의 일탈이 전체 의사 집단에 미치는 심각한 이미지 손상과 해악의 누적은 전문직 집단적 대처가 필요하다. 정부의 고위 행정 관료는 심각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 항상 무관용으로 처리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자신이 재판장도 아니요 사법부의 관리도 아닌 행정관료가 무슨 힘으로 무관용으로 처리하겠다는지 궁금하다. 정부 고위관료가 국민의 위에 존재하는 어르신인 모양이다. 무관용의 엄포도 만성적인 사회문제에 대하여는 엄포일 뿐 실제적인 개선은 보기 힘들다.
선진국의 의사 면허제도의 특징은 매우 튼실한 전문직 주도의 자율기구가 존재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사무장병원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매년 신고하는 자신의 고용상태에 대해 허위로 작성하는 것 자체가 전문가집단에서 용납되지 않는 자율적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용상태가 의사로서의 임상적 자율권과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의료윤리이며 동시에 법적으로도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사의 행동 규칙이다.
지금도 미국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람이 아닌 법인은 의료활동(Cooperate Practice of Medicine)을 할 수 없다는 금지조항을 37개 주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법인은 사람이 아니기에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인데 그렇다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보건소 등에서 근무하는 미국 의사는 불법인가? 라는 질문에 합법이라는 답변과 함께 법인이라도 선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경우는 예외임을 밝히고 있다.
의료수가 분할(Fee Splitting)도 엄격히 법으로 금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물리치료비를 의사와 물리치료사가 일정비율로 나누거나 환자 의뢰에 따른 일부 수수료 징수와 같은 진료비 분할이나 원장과 투자자인 실제 주인이 의료수가에 대한 분할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상장된 기업의 대규모 병원 그룹에서 주식에 대한 이득 배분은 적법한 일이다.
선진국과 같이 의료의 투명성과 책무성 그리고 자율성의 확보가 잘 되어 있다면 사무장병원은 존재할 수 없을 것으로 예견된다. 의사 개인의 사무장 병원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의학전문직업성의 기본인 임상적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직무윤리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상승되면 사무장병원이나 대리 수술 문제도 해소될 것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전문직업성의 상승을 위해서는 의사의 집단적 전문직업성의 중요 요소인 자율규제를 담당할 별도의 기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의 면허기구와 같이 전문직업성의 수호를 위한 교육과 예방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보여주는 사무장병원의 만성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권력을 갖고 있는 보건복지부, 사법부 등 관련 기관에 의한 사후처벌 위주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간주된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닌 현재의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나 전문가평가제 등 전문직이 직접 해결하기에는 법적·제도적 보완이라는 힘든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결국 직·간접적으로 의사가 관련되어있는 사무장병원의 문제는 아직 우리나라 사회제도에 들어와 있지 못하는 현대적인 전문직 자율권의 구축과 작동이 문제 해결의 핵심 사안이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