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선택할 권리 당연해"
최근 약사 출신 과학 분야 번역가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과학을 쫌 안다면 타이레놀 대신에 아세트아미노펜을 달라고 해야 한다.'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어서 왜 그래야 하는지 그 번역가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직접적 답변 대신 국내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으로 70 품목이 허가되어 있다는 기사를 링크했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발열, 오한이 있으면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관계자가 제품명을 언급하면서 일부 약국에서 타이레놀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약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백신 접종 후 성분명으로 말해요! 아세트아미노펜 주세요!' 라는 주장을 했다. 위 번역가는 서 의원의 주장에 '과학'이란 거창한 명분을 붙였다.
얀센의 '타이레놀'은 오리지널 약품이다. 종근당의 '펜잘', 대원제약의 '펜세타'는 제네릭 의약품이다. 둘 다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이다. 그런데 오리지널 약품과 제네릭 약품은 같은 것인가? 약은 원하는 효능과 원하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원하는 효능은 같고 원하지 않는 부작용은 똑같이 적을 때 두 약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약을 복용하면 소화 흡수되어 혈중 약물 농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혈중 약물은 표적 기관에 도달해 원하는 효능을 만들어 낸다. 오리지널 약품은 최후의 효능까지 검증해 허가를 받는다. 가령 고혈압약이라면 실제 혈압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를 검증한다.
반면 제네릭 약품은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는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은 실제 혈압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를 검증하는 게 아니라 약물의 혈중 농도를 측정한다. 따라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은 사실 '혈중농도동등성시험'이라고 해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만약 타이레놀과 제네릭 의약품이 효능이나 부작용 면에서 같다고 가정해 보자. 소비자가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달라'고 하면 약사는 70개 품목 중 어느 하나를 골라 줄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인가? 과학을 쫌 안다고 소비자가 편의점에서 특정 브랜드 물을 선택하지 말고 그냥 '물을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방역 당국은 성분명과 품목명을 균형있게 알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가 약국에서 반드시 '아세트아미노펜을 달라'고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소비자는 자신이 신뢰하는 특정 브랜드 약을 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같은 성분의 다른 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된다.
타이레놀, 펜잘, 펜세타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이라는 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과학을 쫌 안다면 타이레놀 대신에 아세트아미노펜을 달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그냥 약사에게 넘기라는 것을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제품명이던 성분명이던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고 항상 환자의 권리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성분명이 절대선인 것처럼 떠드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과학은 언제든 미신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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