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종교인 등 대리처방 확대 법안 잇따라 발의
의료계 "대면진료 원칙"…현실성·당위성 없고 역차별 우려
사실혼 관계자, 요양보호사, 종교인에까지….
대리처방 확대 법안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의 반응은 차갑다.
사실혼 관계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한정된 시간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가 환자 상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당연한 의문이다. 게다가 목사·신부·승려 등 종교인이 대리처방을 지정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일반인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노정된다.
최근 사실혼 관계자, 요양보호사, 종교인 지정자 등에게 대리처방을 허용하는 두 개의 의료법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됐다.
의료법 제17조는 대면진료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환자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하고 동일한 상병에 대해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뤄지는 등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없을 경우에 대리처방을 허용한다. 대상 역시 환자의 질병상태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잇고, 법정 대리인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가족 등에 한해 인정된다.
두 법안 모두 '환자 권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의료계는 현실적인 제약과 당위성 부족, 역차별 우려 등을 이유로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먼저 사실혼 관계자를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다.
대법원은 사실혼에 대해 '당사자 사이에 혼인 의사가 있고, 사회적으로 정당한 실질적인 혼인 생활을 공공연하게 영위하고 있으면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때문에 법률상 부부로 인정되지 않는 남녀의 결합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계는 사실혼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나 정부가 일정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인정하는데, 의료기관은 이에 대한 권한도 없고 절차도 규정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만약 사실혼 관계자라는 진술만으로 대리처방했다가 나중에 사실혼 관계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의료기관은 처벌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요양보호사에 대한 대리처방 허용은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한정된 시간에만 서비스를 제공해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환자가 대부분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요양보호사가 굳이 대리처방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의료기관 방문자의 진술만을 믿고 대리처방을 확대할 경우 소수 관계자의 권익을 보호해 얻는 이익보다, 이 사례가 악용돼 약물오남용으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더 크다"며 "국민건강 보호와 보건의료질서 유지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중론이다.
환자가 신부·목사·승려 등 종교인인 경우 직계 존·비속이 아니더라도 대리처방을 가능토록 하는 데에는 종교인이 아닌 경우 오히려 역차별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종교인'에 대한 정의·범주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고, 목사·승려 등은 교리에 따라 가족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어 전체 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는 판단이다.
더 큰 문제는 종교인이 아니면서 가족이 없는 일반인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도 두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교리 등의 이유만으로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는 종교인에게 대리처방 수령자를 별도로 지정할 수 있게 하는 법안에 반대한다"며 "향후 대리처방 문제에 대해서는 대면진료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