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정립 시급…필수의료 지원·적정수가 체계 전환 필요
4차 의료산업 혁명 현실…고령화·저출산 상황 '의료혁신'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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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의 보건의료는 어느 방향을 지향해야 할까. 법·제도적인 개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보장성 강화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의료계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법·제도적 토대 마련, 정의로운 공공의료 정립, 필수의료 지원과 제도적 정비, 적정수가 패러다임 전환, 의료와 4차 산업혁명과 조화로운 접목 등을 선결과제로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16일 '포스트 코로나 의료혁신과 제도 개선'을 주제로 워크숍을 열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보건의료 정책 방향과 의료 및 건강보험 제도 등을 집중 점검했다.
이상운 의협 보험정책 부회장이 좌장을 맡은 세션의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제도 개선'.
첫 발제를 맡은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방향-코로나 이후, 의료혁신 방향' 발표를 통해 보건의료 현안과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방안을 중심으로 정책기조를 설명했다.
이창준 정책관은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일상과 의료 현실을 진단하고, 국민-의료계-정부가 함께 창의와 혁신, 협력과 소통을 기반으로 미래 의료체계를 일궈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먼저 낮은 의료비 지출로 OECD 평균 이상의 국민 건강 수준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대응 성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인구대비 확진자수 3위, 사망자 수 2위로 나타났다고 밝힌 이 정책관은 G20 국가 중 코로나 이전 GDP를 상회하는 3개국(한국·미국·호주)에 들었다며 방역과 경제적 측면의 성과를 제시했다. 음압격리실·중환자실 입원료, 중증환자 전담치료 병상·중환자실내 음악격리관리료, 야간간호료 인상 등 수가 조정 내역을 소개하고 의료기관 애로사항 해소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코로나19 대응 전략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예방적 대응 강화 체제로 개편하고, 예방·검사율 제고·적정 치료를 위한 전방위적 수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백신 도입과 관련해서는 지난 4월 24일 화이자 백신 4000만회분(2000만명분)을 추가 구매, 총 1억 9200만회분(9900만명분)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치료제·백신 개발 촉진을 위해 전임상-임상-생산에 이르기까지 전주기 지원을 통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에 5개 국산 백신의 개발 가능성도 전망했다.
보건의료 주요 정책 과제로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환자 중심 보건의료체계 구축 ▲공공의료 역량 강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사전적 건강관리 기반 강화 ▲코로나 우울 해소 등 마음건강 지원 강화 등을 제시했다.
"저성장에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건강보험 재정·취약계층 건강 문제를 고려한 보장성 강화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이 정책관은 "만성질환 예방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코로나19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담보하는 예방적 건강으로 보건의료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정책관은 "공공병원의 감염안전설비 확충, 원격협진·스마트 감염관리·공공의료기관 간 연계를 통해 미래 의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잘 준비하겠다"며 "코로나를 계기로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발전계획은 6월중 초안이 마련되면, 각계 의견 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올해 말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보건의료정책 비전과 청사진을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료제도와 건강보험' 발제를 통해 "의료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민 건강 향상"이라고 단언했다.
정 교수는 "의료제도의 지향점은 국민건강 향상에 있다. 이를 위해 인적자원을 교육·훈련시키고 물적자원을 조직화해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의료제도의 목표는 인적·물적 자원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국민 건강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특수한 자원 상황에 대해서도 짚었다.
"인구 1000명당 병상규모는 OECD 국가 가운데 단연 최고다. OECD 평균이 5병상인데, 한국은 12병상에 이른다. 지난 20년간 3배나 늘었다. 또 CT·MRI 등 최첨단 의료장비 역시 4∼8위권"이라며 "한국 의료제도는 인적자원이 부족한데 많은 물적자원으로 보충하는 형태"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국민의 의료기관 방문 횟수도 압도적이다. OECD 평균이 국민 1인당 1년에 7회인데, 한국은 17회에 이른다"면서 "접근성이 좋은 측면도 있지만, 의사 수가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한의사를 제외하면 절반)인 상황에서 국민의 의료기관이용은 2배가 넘는다. 의사 1인당 진료하는 환자수가 많다. 의사가 과로상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자원은 정책으로 쉽게 조절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갔다. 결국 의료정책은 건강보험으로 귀결된다는 판단이다.
정 교수는 "자원은 의료정책으로 조절되지 않지만 건강보험에는 의료정책이 작동한다. 건강보험의 핵심은 돈을 어떻게 걷을 것인가에 있다"며 "한국은 GDP가 2000조원, 의료비가 160조원 수준이다. GDP의 8%가 의료비로 쓰인다. OECD 평균인 9%보다는 낮지만 2∼3년 내에 평균치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들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고언도 잊지 않았다.
정 교수는 "미국은 GDP 대비 18%의 의료비를 투입하고 있다. 미국 의료비용이 엄청난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며 "한국 의사들은 미국의 의료에 대한 고비용 구조를 많이 이야기한다. 게다가 한국은 공공이 관여해서 민간영역을 규제로 옥죄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느나라도 의료를 사적 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 미국만 그렇다. 미국인들은 인생에서 의료와 장기요양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설명한 정 교수는 "미국은 결코 잘된 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백신 개발로 미국이 경제적 보상과 함께 국가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이유도 설명했다.
정 교수는 "사적 시장에 의료를 내놓은 대신 민간이 투자하지 않는 R&D에 집중 투자했다. NIH·CDC 등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한다. 백신 개발도 그 연장선에서 이뤄졌다"며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다. 미국이 백신개발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국민을 평생 의료비 걱정 속에 살게하는 게 맞는 지 의문이다. 한국 역시 좀 더 넓은 시야로 의료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의료계의 대비' 발제를 통해 "보건의료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의 급증하는 의료비"라면서 "재정 위기를 막기 위해 정책 우선 순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 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료혁신에 대비해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법·제도적 토대 마련 ▲정의로운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 ▲필수의료 지원과 제도적 정비 ▲적정수가 건강보험 패러다임 전환 ▲4차 산업혁명 도입을 위한 제도 정비 등을 제안했다.
먼저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법·제도의 정비를 강조했다. 의료법에 의료전달체계에 관한 규정이 단 한 줄도 없이, 의료공급자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와 질병명 통제만으로는 사상누각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정의로운 공공의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 민간 의료기관의 노력을 외면하고, 공공기관에만 재정 지원을 하는 등 편향적 정책을 펼쳐왔다"고 밝힌 우 소장은 "늦었지만 공공의료 역할을 떠맡아 온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 정의롭고 올바른 의료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 소장은 "기존 의료공급체계를 담당한 민간 의료기관의 공익적 역할에 대한 평가나 인식 없이, 민간 의료기관과 큰 차이없는 공공병원의 병상 확충만을 공공성 강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설득력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과 제도적 정비도 촉구했다.
우 소장은 "몇 해 전 80대 고령 환자의 대장내시경 시술 중 사망사선으로 담당 교수가 법정 구속돼 의료계에 큰 충격과 파문을 불러왔다"며 "올해 전공의 지원에서 필수의료 과목의 지원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 건강 수호와 직결되는 필수의료 체계의 제도적 정비와 직업적 안전성 제고를 위해 의료사고특례 조항의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료가 곧 일자리'라는 점도 짚었다.
우 소장은 "코로나19의 와중에 지난해 제조업은 일자리가 1.6% 줄었지만, 보건산업은 오히려 6.8%가 늘었다"면서 "의료비를 소비로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일자리를 어디서 만들 것인가. 의료비는 의사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건산업 전체로 퍼진다. 의료가 일자리"라고 평가했다.
건강보험 수가 패러다임을 '적정수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3분 진료'에서 벗어나 '감성진료'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 소장은 "의료소비자의 욕구가 고급화·다양화되면서 더 이상 박리다매식 '3분 진료' 문화로는 의료서비스를 지탱할 수 없다"며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걸맞게 '적정수가 패러다임'으로 환자의 감성까지 살필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와 4차 산업혁명의 조화로운 접목에 대한 고민도 내비쳤다.
우 소장은 "4차 산업혁명은 가능성 차원에서 현실 세계의 한 축이 됐다. 이제 어떻게 의료와 조화롭게 접목시킬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맞닥뜨린 또 다른 표준의 시대에 대한 다각적인 준비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