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협력 절실한 수술실, 감시·대립 공간으로 '변질'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워…개인권 침해·노동 감시 신호탄
요즘 국회에서 무자격자의 수술을 감시하고 적발해야 한다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모든 수술 장면을 녹화토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했다며 입법 여론을 조장하고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은 설문 문항도 문제지만 설문조사 결과를 앞세워 개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가 볼썽사납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2019년 주요 수술 통계 연보'를 보면 척추 수술·심장 수술·관상동맥우회수술·뇌기저부수술 등 33개 주요 수술만 한 해 200만 건이라고 한다. 200만 건 중에 대리 수술이 과연 몇 건이나 될까?
극히 일부의 사례를 들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려는 법안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협력이 절실한 수술실을 감시와 갈등과 대립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속담에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의사와 환자가 가장 신뢰해야 할 공간을 없애고, 개인권을 침해하며, 노동을 감시하는 사회를 앞당기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수술은 기술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료 기술과 의료 수가에 우선하여 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 해도 환자에게는 돈을 주고, 수술을 사는 것 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수술실 CCTV는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를 깨버리는 하지하(下之下)의 방법이다.
정책이나 법을 만들 때는 헌법의 기본권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동향도 파악해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충분히 담아야 한다. 일시적인 감정이나 정치에 편승한 입법은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일부 지방 자치단체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목숨을 끊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고 모든 지자체장 집무실에 CCTV를 달아야 할까? 여론조사를 하면 국영기업과 공공기업의 비리 문제를 감시하기 위해 CCTV를 달아야 한다는 찬성 입장이 우세할 것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제가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은 어디라도 감시용 CCTV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어렵고 힘들어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수술하는 의사들을 겨냥한 마녀 사냥식의 CCTV법을 기어이 만들어야 한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늘도 7시간씩 걸리는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와 분만실에 CCTV를 들이대려는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반딧불이를 보고 불이 났다고 해선 안 된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 사례가 발생했다고 전체 백신을 폐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 무엇이 국가를 위하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정치인과 공무원으로서 맡은 소임을 다해 주길 바란다. 좋은 입법을 통해 국민이 편안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국민은 바보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바보는 아니다. 명심하기 바란다.
2021년 하오(下午) 진료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