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인권 신장 주장 내세우면서 전공의 수술 경험 부족·의사 양성 체계 무너져
수련병원서 치료받는 환자, 전공의·인턴·의대생 참여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현대의학의 짧은 역사에 비하여 우리나라 의학 수준은 글자 그대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한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 정상 수준에 이르고 있다. 국민은 아주 저렴한 의료 수가로 고품격의 의료 혜택을 받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의사들의 뼈를 깎는 희생 속에 이룩된 일이기는 하지만 의료의 사회적 역할과 국민 편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발전한 것이 천만다행이며 고마운 일이다.
현대의학이 이렇게 발전하기까지는 의사와 의학자들 개개인의 피나는 노력뿐만 아니라 각자의 쌈짓돈을 털어내는 개인적인 부담을 통해서 이룩한 것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선진국을 통틀어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하고 의아한 일이다. 한국 사회의 특이한 모습이다.
어쨌든 실로 걱정스러운 일은 의료강국의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회의적인 현상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품격의 의료라고 하여도 이를 유지하고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영국이나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을 도입한 나라에서 현대의학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목도했다. 의료의 질은 한 번 추락하면 회복되기까지 300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미래를 위해 확보해야 할 의료자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주 다양한 근심거리가 있다, 그중에 전공의 교육과 국민 개개인의 인권 의식 강화라는 개념의 현실적 충돌을 직시해 보자.
의료계에 지각 있는 사람들은 의료의 인적 자원 면에서 미래 의료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 품격 높은 의술을 행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까지는 형극(荊棘)의 길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은 고품격 의료란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항상 원하는 대로 구매할 수 있는 공장의 생산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먼 훗날 내 후손들이 양질의 의료를 받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민 각자도 반드시 성찰해야 한다.
40년 이상 의료 현장과 의학교육 일선에서 감동의 환희와 환멸의 영욕을 넘나든 필자의 눈앞에 보이는 미래 의료는 먹구름에 싸여있다.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의료 현장에서는 미래의 의료자원으로서 유능하고 훌륭한 의사를 양성하는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은 장벽의 벽돌이 한 장 한 장 빠져나가고 있는데 무관심과 시류의 흐름만 탓하고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것이 의학교육의 현장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시급히 대책을 세우는 것이 미래 의료자원을 걱정하는 선각자들이 가져야 하는 시대적 사명임에도 애써서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말하는 전문의 양성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재와 같이 높은 의료 수준을 일궈내기 위해 우리는 과거 수십 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은사님들의 엄청난 꾸중과 훈도를 감내하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때로는 환자들과 하나가 되어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훌륭한 은사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거울삼았다.
그러는 가운데 일취월장이 생겨나고, 때로는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르는 제자들이 배출됐다. 의료 현장에는 교수, 전공의, 인턴은 물론 의과대학 고학년 학생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학술적 토론과 협의를 통해 환자에게 유익하고 효율적인 의술을 시행하면서 도반의 길을 걸어 왔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의료가 세계적인 반열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석이 된 것이다.
수년 전 열악한 수련환경을 개선하는 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공의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둔 것이다. 잘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훌륭한 전문의를 양성하고 교육해야 하는 교육 환경은 점점 척박해져 가고 있다. 세상이 무서워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래 의료자원 중에도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이라는 부분에 어둠이 엄습하고 있다. 미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피사의 사탑 모양 기울어지고 있다.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일부에서 수술 경험이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음에도 개인적으로 1000여만원에 달하는 돈을 갹출하여 의료 저개발 국가에 납부하고 그 나라 환자들을 통해 수술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이 명백하고 슬픈 현실이다. 냉가슴을 언제까지 앓고 있어야 하나.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교수들이 게을러서? 전공의들이 열심히 안 해서? 아니다 오로지 한 가지 이유는 환자들이 교수 이외의 사람들이 자기를 치료하는 데 관여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낸 천하의 명의라 하더라도 수술은 절대 혼자 못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행위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인권 신장에 따라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환자들에게 병원 당국이나 그 누구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악순환의 바퀴만 힘차게 돌고 있다. 우리나라 미래 인적 의료자원은 수술 경험의 가뭄 속에 메말라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점점 심화할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수련병원에 입원·외래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행동지침을 입법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전국의 수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들은 교수를 중심으로 전공의, 인턴, 그리고 의대 고학년 학생들이 진료팀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필자가 대한의학회장 때부터 고민했던 일이다. 이런 제안을 하는 마음이 한없이 괴롭고 무겁고 슬프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을 왜 우리나라에서는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까.
이런 법을 제정하더라도 환자들이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매우 넓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의 고품격 의료는 수련병원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의료를 시행하는 개인 의원이나 종합병원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인권을 최우선하는 환자들은 그곳으로 가면 된다.
미래 인적 자원은 우리 자식들의 앞날에 대한 일이다. 그들도 고품격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세대가 의료환경을 만들어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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