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의식 없을 때 가족에게 못하는 설명…부실하게 만든 법안
법률 전문가 "환자-의사 '분쟁' 조장 졸속 입법…보완 입법 필요"
국회는 우리나라의 입법부로서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모여 있는 기관이다. 삼권 분립에 의해 국회는 입법을 하는 역할을 한다.
매년 국회에서 소관 위원회별로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존 법률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률안을 제정하는 입법활동은 쉼없이 이뤄진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국회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잉 입법을 남발하기 일쑤다. 각 정당별로 비슷한 입법을 한 번 걸러주는 것도 필요하고, 법안의 실효성, 적절성은 물론 법안을 제정 또는 개정했을 때 법리에 맞는지, 여론을 등에 업고 졸속으로 입법하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한다.
입법과정에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도 연다. 공청회 역시 여론을 수렴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찬반 의견이 대립하더라도 법률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수정·보완하기 보다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밀어붙이기도 한다.
의료관련 법안은 특히 국민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더욱 신중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만 강조하는 법안 발의도 마찬가지다.
[의협신문]은 의료관련 법안 중 2016년 12월 1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현재 시행 중인 '설명의무' 관련 조항의 입법 과정과 규정이 모호한 '법정대리인' 문제를 짚어본다.
졸속으로 만든 '설명의무'…보완 입법 필요
현행 의료법에서는 수술 등을 하는 경우 환자에게(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법정대리인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혼란을 겪고 있다.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는 보완 입법을 통해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가족에게 설명해도 되는데, 법정대리인 규정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술' 등에 대한 설명의무 조항으로 인해 '시술' 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안을 만들면서 의료현장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법정대리인 규정을 신설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대 국회, 김승희 의원·윤소하 의원 법안 발의
설명의무를 강화하는 법률개정안(의료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률개정안은 의사가 수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행위를 하고자 할 경우 환자에게 진료의 내용과 방법, 진료 의사, 부작용 등을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행정처분, 형사처벌,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규정했다.
의료계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자 법사위 제2소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설명의무 적용 대상을 수술, 수혈, 전신마취로 제한하고, 구체적인 설명 항목 또한 기존 8개 항에서 ▲진단명 ▲수술 등의 필요성과 방법 설명 및 수술참여 의사 이름 ▲수술 등에 따라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수술 전후 환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 등 5개 항으로 축소했다.
위반 시 행정처분과 징역형 조항 역시 심사 과정에서 삭제, 3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으로 완화했다. 이 의료법 개정안(의료법 제24조의 2)은 2016년 12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17년 6월 2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의사에게 설명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징역형의 처벌을 하는 것은 위헌소송감이라며 비판했다.
김선욱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당시 이 조항과 관련 "설명의무가 법제화 돼 있는 영역도 매우 적고, 다른 법령에서는 설명을 안 했다고 형사처벌을 규정한 것이 없다"면서 "이 조항이 입법화된다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형사처벌하는 최초의 법률 조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명의무의 개념과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상태에서 설명을 안했다고 형사처벌하는 법률 조항을 만들 경우 형사법의 대원리인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침해의 최소성 원칙도 위배하고 있어 입법화될 경우 위헌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설명의무법, 오히려 환자와 의사간 '분쟁' 조장 우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에서는 징역형을 포함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과태료 300만원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설명의무법으로 인해 환자와 의사간 분쟁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2017년 2월 13일 의료윤리연구회가 주최한 월례모임에서 "설명의무를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은 환자와 의사의 신뢰를 깨고, 분쟁을 유발하는 졸속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현 변호사는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 가능함에 따라 의료분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수혈·전신마취의 경우 반드시 환자에게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 수술등의 필요성, 방법 및 내용,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및 수술 등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성명을 비롯해 수술등에 따라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과 수술등 전후 환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을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동의서 양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스스로 설명 받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한 경우에까지 설명의무를 강제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봤다.
현 변호사는 "환자가 설명받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했음에도 설명을 강행하면 환자에 대한 '배려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법이 의사에게 모순되는 의무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정 의료법 시행 이후 설명의무 위반이 동일한 사안이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과 의료법상 과태료 처분이 서로 달리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며 "법질서 전체의 통일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우려스런 상황"이라고 법질서 혼란을 우려했다.
'설명의무' 조항을 시행하기도 전에 비판을 받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 공청회와 기존 법리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발의 3개월 만에 입법됐기 때문"이라며 의료법 개정 과정이 상당히 부실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2020년 발표한 '최근 4년간 설명의무 관련 의료분쟁 현황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감정을 완료한 전체 4405건 의료분쟁 사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7%(2102건)에서 설명의무가 보상 책임 등을 결정하는 쟁점으로 작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2102건의 설명의무 분쟁사건 가운데 28.3%인 595건이 병원급에서 발생했으며, 종합병원 22.5%(472건), 상급종합병원 22.1%(464건), 의원 15.7%(33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진료과목별로는 정형외과가 전체의 26%(546건)로 가장 높은 분포를 보였고, 신경외과 14.6%(308건), 외과 9%(190건), 성형외과 5.9%(123건), 산부인과 5.7%(119건) 등으로 나타났다.
'법정대리인' 개념 모호…부실하게 만든 법안 증명
설명의무 법안 시행 이후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보완 입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천수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의협신문] 기고글을 통해 '환자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 설명을 해야할 상대방을 환자의 법정대리인으로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법정대리인이 상대방으로 되는 경우란 환자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인데, 이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며 "그 판단을 잘못해 부적절한 상대방에게 설명해 동의를 받은 의사는 과태료 부과 처분의 위험에 빠진다"고 밝혔다.
법정대리인이 없는 경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법상 정신적 제약을 불문하고 성년자에게는 후견인 즉 법정대리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힌 김 교수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가 장성한 자녀에게 설명을 듣고 결정을 하도록 미리 위임해 놓은 경우라도, 이 자녀는 법정대리인이 아니므로 이 자녀에게 제24조의 2 제1항의 설명·동의 절차를 밟아야 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의사는 법정대리인이 아닌 그 자녀에게 설명과 동의 절차를 밟았어도 환자에게 설명·동의 절차를 밟지 않으면 과태료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환자로부터 수술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위임받은 자(의료결정의 수임자)를 설명·동의 절차의 상대방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법정대리인 없는 경우, 가족간에도 설명 못해…범위 재설정해야
의료법에서 설명은 환자에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성인 중 법정대리인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법률에서 법정대리인에 대해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법정대리인은 법률이 정한 대리인이라는 뜻인데, 민법은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은 부모로 정했지만 성년이 되는 순간 법정대리인은 없어진다"며 "다만, 성년후견이 개시되는 경우 그 후견인이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부부라 하더라도 각 상대방의 법정대리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법정대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 변호사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의료법 개정 당시 법정대리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반드시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조항은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환자 대신 누구에게 설명해야 그 의무를 면하는지 법률에서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친족 중 어느 범위까지 상대방으로 설정할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과 '시술'의 모호한 경계…의료분쟁 소송 빌미 제공
의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의료의 전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는데,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수술'·'수혈'·'전신마취'의 경우만 설명을 하도록 해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표 참조)
정혜승 변호사는 "기존 판례는 의료의 전 과정에서 설명을 하도록 하는 것에 비해 의료법에서는 오히려 설명의 대상을 좁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례는 침습적 행위라면 '시술'까지도 동의서에 따른 설명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의료법은 시술도 배제하고 있다"며 "오히려 판례가 환자를 더 보호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의료법에서는 설명의 주체를 '의사'라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여러 의사가 환자의 진료에 관여하는 경우, 그 중 누가 설명을 해야 하고, 누가 과태료 처분을 받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며 "의료법 개정안을 만들 때 여러 의사가 진료에 관여하는 형태를 예상하지 않은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수술'의 범위에 '시술'이 포함되는지 여부도 다툼이 되고 있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의료법 상의 설명의무의 경우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의료법에 수술이나 전신마취에 관한 정의(definition) 규정이 없고, 임상의학적으로도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그 범위가 모호하다는 문제점이 있어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실제로 자궁내막소파술을 받은 환자가 시술이 아닌 수술에 해당함에도 설명하지 않았다며 형사 고소를 제기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또 유방보형물 수술 후 수술 부위에 대한 세척술을 놓고 환자 측은 수술이라며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 반면 의사 측은 시술이라며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반론한 사례도 소개했다. 의식하 진정요법이 전신 마취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이런 문제는 입법 당시 수술이나 전신 마취가 다른 의학적 처치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적절하지 않은 모호한 단어를 사용해 법률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영역에 대한 구체적 이해 없이 전문영역에 적합하지 않은 모호한 범위를 가진 법문언에 기반해 수범자들에게 구체적 법적 의무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입법학적으로 상당히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수술이 성공적이라도 설명의무 어기면 '과태료 처분'
수술의 성공이나 악결과와 상관없이 설명의무 위반 시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의료법이 개정 이전 판례상 설명의무에서는 악 결과가 발생한 경우, 환자가 그 악 결과에 대해 충분히 고려할 기회를 상실했으므로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해 배상했다.
그러나 의료법상 개정 이후 설명의무에서는 환자에게 악 결과가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거나를 떠나 설명을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불법이어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정혜승 변호사는 "환자에게 아무런 부작용과 후유증 없이 수술을 마쳤더라도 설명을 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환자에 대한 배상이 아닌 국가에 대한 과태료 납부라서 과연 의료법상 설명의무를 제정한 취지가 환자를 위한 것인지 다소 의문"이라고 의아해 했다.
또 "입법 당시 설명을 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벌금)을 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는 너무 과하다는 취지에서 과태료로 변경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과태료는 행정질서벌로서 주차위반을 하는 경우 등에 부과하는 것인데, 과연 환자에게 설명을 하지 않는 상황을 행정질서벌로 규제하는 것이 법률 체계상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관련 법령>
* 의료법 제24조의2(의료행위에 관한 설명)
① 의사ㆍ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이하 이 조에서 "수술등"이라 한다)를 하는 경우 제2항에 따른 사항을 환자(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을 말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에게 설명하고 서면(전자문서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으로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수술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에 따라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 사항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환자에게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
2. 수술등의 필요성, 방법 및 내용
3.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 및 수술등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성명
4. 수술등에 따라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5. 수술등 전후 환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
③ 환자는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에게 제1항에 따른 동의서 사본의 발급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요청을 받은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제1항에 따라 동의를 받은 사항 중 수술등의 방법 및 내용, 수술등에 참여한 주된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변경된 경우에는 변경 사유와 내용을 환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⑤ 제1항 및 제4항에 따른 설명, 동의 및 고지의 방법ㆍ절차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2016.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