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변질되면 어쩌나…"의료기관 직접 수령 문제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백신 '집접 수령' 개선했는데 다시 등장?...염호기 위원장 "안일한 판단 곤란"
코로나19추진단 "긴급한 상황 일시적 조치...빠르면 다음 주 정상화"
위탁의료기관 코로나19백신 접종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의료기관이 직접 백신을 수령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이 나와 '콜드체인'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7월 29일 의료단체에 보낸 공문에서 "코로나19 백신 배송 시 유통업체를 통한 의료기관 직접 배송을 우선으로 하고 있으나, 휴진 등 위탁의료기관의 사정, 신속한 배송 등이 필요한 경우에 한 해 일정 바이알 이하의 경우는 보건소로 배송하고, 이를 의료기관이 수령하고 있다"면서 콜드체인 유지 등 백신 수령·이동 시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방역당국의 공문을 전달받은 의료인들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백신 특성상 온도 유지와 충격에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백신을 직접 운반하다가 변질 등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백신 변질되면 어쩌나…"직접 수령 문제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장
D 유명 의사커뮤니티에는 '코로나19 백신 직접 수령' 안내를 받은 의료기관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A 의사는 "보건소에서 9바이알 이하 백신은 직접 수령하라는 연락이 왔다"며 "요새 같은 날씨에 아이스박스로 온도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B 의사는 "경찰, 군대를 대동해 백신을 운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사전 안내도 없이 갑자기 아이스박스 하나로 백신을 가져가라고 한다"면서 "백신 접종을 위탁받은 거지, 배달까지 위탁한다고 한 적은 없다"고 비판했다.
댓글에는 "콜드체인 붕괴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의료기관이 지라는 건가?", "제2의 독감 백신 콜드체인 붕괴 사태다", "접종도 모자라, 이젠 콜드체인까지 직접 관리하라니 너무하다" 등 항의와 걱정의 목소리가 담겼다.
박근태 대한내과의사회장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해 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근태 회장은 "회원들의 불안 섞인 항의가 많다. 직접 수령 방식은 콜드체인이 깨질 우려는 물론, 사고가 나거나 떨어트리는 일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많은 의료기관이 여름휴가도 반납한 채 백신 접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백신 관리에 더해 이송·운반에 대한 책임까지 지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8월 2일) 접종할 백신을 당일 수령해야 한다는 보건소 안내가 나온 곳도 있다.
C 개원의는 "당장 다음 주 월요일 오전부터 접종이 시작되는데, 당일 백신 물량이 부족한 경우 보건소로 직접 받으러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너무 촉박한 안내에 조급한 마음이 든다"며 "오전에 가서 백신과 주사기를 직접 수령해야 한다. 다음 주 월요일 백신 수령을 위해 보건소를 찾는 의료기관이 많을 것 같다. 제대로 백신을 수령받을 수 있을지, 잘 운반할 수 있을지, 너무 혼란하지는 않을지 모든 것이 걱정된다"고 전했다.
우려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침 시정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동네의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라고 밝힌 청원인은 "코로나 접종은 지침이 까다롭다. 온도가 올라가면 폐기 처분해야 하므로 지침 준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그런데 보건소로 백신을 가지러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동네병원이 콜드체인 업체도 아닌데, 이 더위에 4도에서 8도로 유지가 잘 되겠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병원의 경우, 10바이알 이상이어서 배송을 해줬는데 바이알이 적다는 이유로 함께 배송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보건소를 가는 내내 온도 유지가 잘 안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 백신을 집적 수령하라는 지침은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직접 수령' 개선했는데 다시 등장?…염호기 의협 코로나19 위원장 "안일한 판단 곤란"
'위탁의료기관 코로나19 백신 직접 수령' 지침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고령층에 대한 위탁의료기관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시작됐을 당시, 위탁의료기관들은 '4바이알 이하 백신'의 경우, 아이스박스를 통해 수령해야 했다.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처음 (위탁의료기관에) 백신 배송을 시작하면서 4바이알 이하 백신은 보건소로 보내, 의료기관이 보건소에서 직접 수령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접종 의·정협의체'를 통해 의료 현장의 의견을 전달하면서 정부는 해당 지침을 변경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협의체 첫 회의에서 백신 소량 배송 문제 등 현장의 어려움을 건의사항으로 전했다. 정부는 이후 1바이알까지 모두 의료기관에 배송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그런데 최근 모더나 백신 도입 일정이 지연되고, 예약한 모더나 백신의 일부를 화이자 백신으로 바꾸면서, 접종 예정일에 맞춰 짧은 기간 내에 모든 백신을 배송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염호기 코로나19 대책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백신 보관·관리 문제에 대해 너무나 안일한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 '괜찮겠지'라는 짐작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신 전달을 음료수 판촉처럼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자칫 콜드체인 유지에 우려가 큰 의료기관이 백신 접종을 포기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철저한 관리를 위한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염호기 위원장은 "촉박하더라도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검증된 콜드체인 배송방식으로 민간과의 협조를 통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본다. 당장 아이스박스나 온도계에 대한 검증도 진행된 적이 없다"며 "백신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은 알지만, 대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전문가 협의체가 있음에도 협의 없이 일방적인 통보가 이뤄지는 행태 또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콜드체인 유지 위해 사전 안내할 것"…다음 주 '배송 정상화' 예상
정부는 일정상 부득이한 상황이라며 콜드체인 유지를 위해 사전 안내를 철저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7월 29일 브리핑에서 "콜드체인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위탁의료기관에서 보건소로 방문수령하는 경우 콜드체인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위탁의료기관 직접 배송이 원칙이고, 이번 경우 부득이하게 한시 적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방접종대응추진단 공문에 따르면, 백신 이송을 위해서는 아이스박스 등 수송 용기와 함께 백신배송 시 사용하는 소분상자, 에어캡(뽁뽁이), 아이스팩(냉매), 온도계 등을 구비해야 한다.
유의사항으로는 ▲소분상자 안에 고정된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2∼8도가 유지되는 수송 용기에 입고해야 하며 ▲백신을 담은 상자와 아이스팩이 직접 접촉되지 않도록 에어캡을 사용해 상호 간 2∼3㎝를 유지하고 ▲백신 이동 작업 시 수송 용기 내부 온도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서 ▲백신을 수송 용기에 입출고 시 수송 용기의 온도가 2∼8도로 유지되는 것을 반드시 확인한 후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직접 수령'은 일시적인 조치라면서 빠르면 다음 주 중에 정상화 가능성도 내비쳤다.
질병청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상적으로 백신이 수급되고, 진행된다면 이전처럼 정상 배송될 것이다. 지금은 긴급한 상황에서의 임시적 조치"라며 "위급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당장 이번 주에만 한시 적용하는 것이다. 다음 주 정도에는 다시 정상적으로 배송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