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환자 동의 없이 우상엽 절제...'주의의무'·'설명의무' 위반에 해당" 판단
일반적 설명의무 위반 아닌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악결과 인과관계 인정 사례
최근 대법원이 환자의 동의 없이 폐를 절제한 의사 및 학교법인에 대해 손해를 11억원 배상하라고 판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수술을 할 때 환자에게 동의를(설명의무)를 구하지 않고 폐 부위를 추가로 절제한 것은 의료행위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 및 설명의무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7월 8일 환자 A씨가 B학교법인 및 C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환자 A씨)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의사가 의료행위를 할 때 발생하는 일반적인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설명의무 위반과 수술 후 '악결과'에 대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은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환자의 폐 절제(우상엽 전체 절제)라는 악결과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 손해배상의 책임도 치료비·간병비·위자료뿐만 아니라 일실수입(소득상실) 등을 고려해 11억원을 인정했다.
그러나 흉부외과의사들은 폐 절제(우상엽 전체 절제)를 악결과로 볼 수 있는지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환자가 우상엽 절제술로 인해 폐기능이 완전히 망가졌어야 악결과로 볼 수 있는데, 환자는 퇴원 후 수술하기 전 상태로 돌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 악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다는 것.
흉부외과의사들은 폐는 우측에 3조각(우상엽, 우중엽, 우하엽), 좌측에 2조각(좌상엽, 좌하엽)으로 나눠져 있는데, 우상엽을 수술 중 전체 절제를 해도 나머지 4조각으로 정상적인 폐기능을 할 수 있고, 환자도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악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즉, 수술 중 우상엽 전체 절제에 대해 환자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한 설명의무 위반은 있지만, 우상엽 전체 절제를 악결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너무 높게 인정하는 판단을 했다는 주장이다.
환자 A씨, 건강검진결과 결핵 확률 높다는 소견으로 D대학병원 내원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자 A씨는 2016년 2월 11일 B학교법인이 운영하는 D대학병원을 내원해 흉부CT검사를 받았다. A씨는 2016년경 F의료원에서 건강검진결과 결핵일 확률이 높다는 소견을 듣고 상급병원(종합병원)에 가서 확진을 받고자 D병원을 찾았다.
D대학병원 E호흡기내과 전문의는 폐렴 진단하에 항생제를 2주간 처방했다. A씨는 2주간 항생제를 복용하고 2월 26일 D병원에서 흉부방사선검사를 받았으나, E의사는 검사 결과상 특별한 변화가 없어 경과를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항생제를 변경해 처방했다.
이후 3월 11일 시행한 흉부방사선검사에서도 특별한 변화가 없자 E의사는 폐결핵의 재발(A씨는 1993년 결핵을 앓은 적이 있음)을 의심하고 3월 14일 A씨에게 기관지내시경검사를 했다. 이 검사에서 결핵균 등 원인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E의사는 4월 21일 시행한 흉부방사선검사 결과 염증이 진행된 것을 확인하고, 폐결핵 재발 의심하에 A씨에게 항결핵제를 처방했다.
5월 12일 시행한 흉부CT검사결과, 기존 병변 부위가 부분적으로 줄어들었으나, 그 아래쪽에 새로운 병변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항결핵제를 계속해 처방했다.
그러나 6월 20일 시행한 흉부방사선검사 결과, 우측 폐상엽의 병변이 진행되는 양상을, 같은 날 시행한 흉부CT검사 결과, 기존 병변 부위는 호전됐으나 주변에 새로운 병변이 진행(확장)되는 양상을 보였다.
E의사는 A씨가 약 2개월간 항결핵제를 복용했음에도 병변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자 결액이 아닌 (희귀 원인균에 의한)폐렴을 다시 의심하고 항결핵제의 투약을 중단했다.
피고 흉부외과의사, 폐조직검사(쐐기절제술) 후 환자 동의 없이 우상엽 전체 절제술 시행
E의사는 A씨에게 정확한 원인균을 확인하기 위해(염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폐 조직검사를 권유했고, A씨가 이를 수긍하자 D병원 소속 C흉부외과 전문의에게 협진의뢰를 했다.
A씨는 6월 27일 C의사로부터 흉강경을 통한 폐조직검사(쐐기절제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조직검사에 동의해 당일 D병원에 입원했다.
C의사는 6월 28일 A씨를 전신마취한 다음 흉강경을 통한 쐐기절제술(병변이 의심되는 폐 조직 일부를 절제해서 하는 조직검사)을 시행해 A씨의 우측 폐상엽 말초 부위 조직(약 5.9×3.7×2.2㎝)을 쐐기 형태로 절제했다.
이 과정(박리)에서 A씨의 병변에서 'caseous material'(치즈처럼 생긴 염증성 물질. 결핵을 비롯한 여러 감염성 폐질환에서 나타남)이 나왔고, 쐐기절제술을 통해 얻은 검체의 냉동생검병리판독 결과, '악성 종양 세포가 없는 염증 소견'이 나왔다.
이 결과를 확인한 C의사는 ▲(냉동생검병리판독 결과 만성염증세포 외에 병변을 특정하기 어려워) 검체로 최종 병리판독을 하더라도 진단이 되지 않을 가능성(원인균을 확인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그 진단(확진) 및 치료 목적으로 우상엽 전체를 절제 ▲쐐기절제술로 절제한 폐 부위에 염증이 있어 절제된 부위가 다시 잘 봉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우려된다(자동봉합기를 이용해 폐절제를 시행한 봉합부위에 염증 등의 소견이 있어 폐절제 부위 치유가 원활히 되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우상엽 전체를 제거하는 폐엽(우상엽)절제술(lobectomy, 이 사건 수술)을 시행했다.
며칠 후 쐐기절제술을 통해 얻은 검체의 최종 병리판독결과는 건락성 괴사로 '결핵'을 시사하는 소견이고, 이 사건 수술로 얻은 병변의 병리판독결과도 '결핵'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피고 의사, "최적의 치료방법…불가피한 선택" VS 법원, "의료행위상 주의의무 위반"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는 C의사가 냉동생검병리판독 결과를 확인 후 폐엽(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한 것은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C의사는 "A씨의 우상엽은 이미 만성염증으로 폐기능이 심히 저하돼 있으며, 결핵이 잘 치유되지도 않고, 치유된다고 해도 병변 부위가 모두 섬유화로 대치되어 폐 기능의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유에서 흉부외과의사로서 이 사건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확진과 함께 병이 빠르고 깨끗하게 나을 수 있는 최적의 치료 방법 내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런 C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당초 C의사에게 조직검사를 의뢰한 목적이 정확한 원인균을 파악해 그에 합당한 약물치료를 하기 위함이었지, 병변 부위 자체를 수술적으로 절제해 치료할 목적이 아니었던 점 ▲A씨는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무렵, 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쐐기절제술(경피적 침흡인에 의한 조직검사보다 더 침습적인 방법)로 절제하는 범위에 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당시 A씨의 몸 상태, 치료 경과 등에 비춰 만일 쐐기절제술에서 더 나아가 폐엽(우상엽) 전부를 절제하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면 결코 이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냉동생검병리판독 결과 악성 종양 세포가 없는 점은 확인됐으므로, 쐐기절제술을 시행한 부위만 봉합하고 최종 병리판독결과를 기다려 볼 필요가 있었고, 이 사건 수술 당시 반드시 우상엽 전체를 절제해야 하는 급박한 사정도 없었던 점 ▲폐 봉합 부위의 지속적인 공기 누출로 인한 농흉 등의 발생가능성이 있어 폐절제 범위를 확장할 수는 있지만, 이를 근거로 (우상엽 전체를 떼어내는) 폐엽절제술을 시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점 ▲임상적으로 다제내성결핵이 의심되고, 폐절제 부위의 치유가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나, 수술 당시 육안적 소견만으로 광범위한 폐엽절제술을 시행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는 점 ▲다제내성결핵이더라도 일차적으로 바로 수술하지 않고 약물치료를 하고, 충분한 기간의 약물치료에도 뚜렷한 호전이 없거나 폐결핵의 합병증 소견을 보이는 경우에야 수술적 폐절제술을 고려해야 하는 점 ▲수술 전 흉부CT 또는 적출된 폐의 병리사진만으로 이 사건 수술 당시 A씨의 우상엽의 환기 기능이 거의 소실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A씨의 병변(결핵)은 내과적 약물 복용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대다수 결핵환자의 경우 약물치료만 시행할 경우 병소의 일부는 섬유화로 인한 흉터로 남지만 나머지 대부부은 기능이 회복) 등을 주의의무 위반 이유로 들었다.
의료진 설명에 환자 슬쩍 고개 끄덕…"명백한 승낙 아니다"
1심 재판부는 C의사 내지 D병원 의료진이 쐐기절제술에도 추가로 폐엽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거나, A씨가 폐엽절제술에 동의했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봤다.
또 이 사건 수술로 A씨의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C의사와 B학교법인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A씨에게 가장 적절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추가 절제를 하겠다고 했고, A씨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등 묵시적으로 우상엽 절제술에 대해 승낙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올바른 설명을 들었더라도 수술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이른바 '가정적 승낙'에 의한 의사의 면책은 의사 측의 항변사항으로서 환자의 승낙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들의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A씨가 여러 가지로 대처할 선택의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고 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이 사건 수술을 승낙했을 것이 명백하다고 추정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부정할 수는 없다"며 원고 측의 항변을 인정하지 않았다.
설명의무 위반은 했지만, 우상엽 절제술이 '악결과'?
이번 사건과 관련 설명의무 위반 및 이에 따른 악결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법조계와 의료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의료소송을 주로 맡고 있는 J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설명의무 위반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J변호사는 "단순한 설명의무 위반이라면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를 물어내면 되는데, 동의도 없이 우상엽 전체를 절제한 것이고, 이를 재판부가 악결과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일반적인 설명의무와 다르게 본 것이고, 위자료외에 일실수입 등도 고려해 손해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대법원이 예외적으로 판결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흉부외과계는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위반의 책임이 있더라도, '악결과'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S대학병원 K흉부외과의사는 "의학적으로 악결과가 무엇인가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의사는 "판결 내용을 보면, 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부분에 대해 환자 동의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필요에 의해 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5개의 조각으로 되어 있는 폐 중 1조각을 절제한다고 해서 폐기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수술 후 A환자는 수술을 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와(폐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악결과는 '우상엽 전체 절제'가 아니라 '폐기능 상실'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흉강경을 통해 쐐기절제술로 우상엽에서 의심되는 부분의 조직을 절제할 때 의심되는 조직이 폐의 깊숙한 부분에 있으면 우상엽 거의 대부분을 절제하게 되는데, C의사는 이를 고려해 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쐐기절제술을 통해 병리판독을 해주더라도 수술을 하는 입장에서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 우상엽 전체를 절제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C의사는 악결과에 대한 인과관계가 인정돼 손해배상액으로 11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대법원, C의사의 손해배상 책임 인정...배상액 11억원 확정 판결
A환자가 20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치료비·간병비, 그리고 입원에 따른 소득상실(월 소득을 3000만원으로 계산) 등을 고려해 배상책임의 범위를 70%로 제한(14억 4000여만원)했다.
C의사와 B학교법인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패소했다. 다만, 손해배상책임 비율은 11억원으로 줄어들었다. A씨가 만 60세 정년 이후 급여와 상여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반영됐기 때문.
피고들은 2심판결에도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상고기각' 판결해 원심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