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정 교수 "감염·임종·장례까지, 가족은 철저히 배제된 이별"
국감 지적 통해, 다시 주목…장례비용, 위로 성격 전환 필요성 제기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화장을 원칙으로 한다'
-중앙방역대책본부/중앙사고수습본부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中
코로나19 사망자의 사체를 통한 전염성의 과학적 근거가 미비함에도, 우리나라 지침으로 인해 사망자의 존엄한 사후처리를 받을 권리와 가족들의 추모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 개정 필요성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언급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지난 6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대상 국정감사 자리에서 중대본의 가이드에서 잠재적 전염성을 이유로 '선 화장 후 장례'를 권고했는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견해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 의원은 "코로나19는 초창기 미지의 세계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WHO나 CDC 견해와 다른 권고라는 점에 의구심이 있다"고 짚었다.
WHO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화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근거가 없고, 문화적인 것에 맡겨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CDC 역시 사망자로부터 감염될 위험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고 의원은 "유가족 입장에서는 코로나19에 걸려 화장해야 했기에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확진자들은 사망 직전까지 가족들과 면회하기도 힘들었을 거다. (정부가) 유가족 입장에서 좀 더 바라봤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사체를 통한 전염성의 과학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과, 코로나19 사망자와 유가족들의 입장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을 더 먼저 제시한 전문가가 있었다. 바로 허윤정 아주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다.
허윤정 교수는 올해 4월 대한의사협회지(JKMA) 시론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의 화장 장례에 대한 의견'을 통해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지 않아, 지금까지 사망자의 존엄한 사후처리를 받을 권리나 가족들의 추모 권리가 외면돼 왔다"고 지적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2021년 2월 23일 발표한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 제2판에 따르면,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화장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2021년 2월 사망자 장례비용 지원 안내 3판의 지원 목적에서도 '코로나19로 사망한 자의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감염병 확산 방지 및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비용을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허 교수는 "코로나19 사망자는 코로나19 확진 이후부터 가족과의 면회가 전면적으로 제한된다. 환자 본인에게는 매우 불안하고 절망스러운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돼 지내다 사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고인은 의료용 팩에 밀봉된 채로 병실 밖으로 나와 안치실로 이동된다. 이후 관으로 옮겨져 결관(끈으로 관을 동여맴)된다. 영구차까지 관을 옮기는 운구도 거리두기를 위해 가족이 아닌 장례지도사가 진행한다.
허 교수는 "가족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가장 가까운 가족임에도, 임종부터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 감염부터 임종, 그리고 장례까지 가족은 철저히 배제된 이별"이라고 지적했다.
WHO의 가이드라인(2020년 3월 24일 발표)을 정리하며 사체를 통해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가 없음도 짚었다.
WHO는 ▲코로나19의 전파는 주로 비말, 밀접 접촉, 또는 매개물에 의한 것으로 공기 전파에 대한 증거는 아직 없다는 점 ▲에볼라 등 출혈성 열성 질병 및 콜레라 외에는 사체는 일반적으로 전염성이 없다는 점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사체를 화장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흔한 미신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CDC의 지침에서도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매장과 화장 사이의 선택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하며, 고인의 가족과 친지의 바람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허 교수는 "현재 한국의 '선 화장 후 장례'의 장례 지침은 WHO 표현대로 흔한 미신 외에 어떠한 과학적 근거에도 기인하고 있지 않다"면서 "쏟아지고 있는 코로나19 연구 결과의 과학적 고찰을 통해 국내 방역 및 치료 가이드라인뿐 아니라 현재의 '선 화장 후 장례'의 장례 지침을 갱신하는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장례지원금이 단순히 전파확산 방지를 위한 화장 비용이 아니라 유족들을 위한 위로금 차원의 비용으로 전환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허 교수는 "장례비와 전파방지비 같은 위로금 성격의 예산집행은 고인을 불태움으로써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목적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역시 "전파확산 방지 비용은 화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 부분을 줄여야 한다"면서 "장례지원금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연속된다는 점을 고려해 위로금 차원의 비용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조언과 국정감사 지적을 통해, 질병관리청은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선 화장 권고는 사태 초기 장례 접촉 과정에서 감염병이 전파될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으로 마련됐다"라며 "현재 쌓인 (과학적) 근거들을 토대로 개정하려 한다"라고 전했다.
장례비용 지원에 대해서도 "유가족 위로금과 함께 합리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밝히면서 "지침은 현재도 보완 중이다. 관련 단체들과 함께 전문가 회의도 많이 개최하고 있다. 곧 지침안을 마련하겠다"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