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 시절 닥클 프로젝트 지휘...'코로나19 체크업' 앱 개발
2020년 3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19 환자의 예후를 예측해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를 선별할 수 있는 '코로나19 체크업' 앱이 개발된 것이다. '코로나19 체크업' 앱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관련 솔루션으로 등재됐으며, 구글로부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혁신 솔루션으로 선정돼 5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앱 개발과 함께 개발자에 관한 관심도 높았는데 닥클(DOCL: Doctors in the Cloud) 팀을 이끈 개발자는 컴퓨터 전공자가 아닌 군의관 허준녕 대위(현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신경과)였다.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앱 개발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이후 환자를 만나면서 의학적 지식에 IT기술을 접목했을 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학과 관련된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큰 임팩트를 주고 싶다"는 그는 프로그래밍이라는 취미가 없었으면 이런 꿈도 아예 꾸지 못했을 것이란다. 백인백색 시즌 2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의료와 IT가 접목돼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미래 의료를 이끌어 갈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Q. 화학생물공학을 공부하다 의학으로 전공을 바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공대 재학시절 교양수업으로 '창업과 경제'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벤처캐피털 대표께서 강의했는데 학생들이 창업을 실제로 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었죠. 그때 창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험을 해보니 재미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의대에 오면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제가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다 보니 그게 의학에 접목되면 더 많은 임팩트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지인들의 조언도 의대에 진학하는 계기가 됐어요. 하지만 막상 의대에 들어와서는 수업 듣고 시험 보는 일상에 정신이 없다 보니 그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그러다 전공의 생활을 하고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이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IT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무척 게으른 사람이라서 더 쉽고 더 편하게 무언가를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리고 그걸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했을 때 어떤 희열과 재미를 느끼는데 이게 묘미 같아요.
Q. 애초에 프로그래밍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2년 정도 거주했어요. 당시 미국에서는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시기여서 Yahoo 같은 사이트로 검색하면 무엇이든 다 찾을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경험해보지 못하다가 미국에서 처음 경험해보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웹페이지라는 것을 처음 보고 너무 신기해서 나도 이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인터넷으로 강좌를 찾아보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 기술 선생님께서 프로그래밍에 진짜로 입문을 시켜 줬어요.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독학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들과 달리 게임을 아예 못한 덕에 게임하는 시간에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Q.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프로그래밍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는 건데 어떤 점이 프로그래밍의 매력이었나요?
취미로 미술을 하는 사람들처럼 뭔가 생산하며 창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활동 중의 하나라서,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래밍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살다 보면 '이걸 조금 더 쉽게 할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예를 들어 당직표 짜는 일 같은 거죠.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게으른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저도 무척 게으른 사람이라서 더 쉽고 더 편하게 무언가를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리고 그걸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했을 때 어떤 희열과 재미를 느끼는데 이게 묘미 같아요.
Q. 프로그래밍을 의학에 접목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프로그래밍은 결국 사람을 돕는 기술이잖아요. 처음에는 계산을 쉽게 해주는 데에서 시작됐고,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요. 의료 현장에서는 효율적으로 일할수록 더 많은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학과 접목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일을 소개해줄 수 있나요?
공대 재학 중 창업을 했는데, 첫 번째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아요. 2007년쯤이었는데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대부분 노트북이 없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공용 컴퓨터에서 작업한 후 저장을 해야 했는데 웹하드나 클라우드 서비스가 없어서 한메일에 들어가서 자신에게 이메일 보내기를 많이 했어요. 클라우드 서비스를 처음으로 런칭해서 간단하게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리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이걸 만들고 나서 주변 친구들이 무척 좋아하고, 많이 이용해줘서 큰 희열을 느꼈어요. 내 취미생활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두 번째로는 이번에 '닥클 프로젝트(DOCL Project, Doctors on the Cloud Project)'에서 출시한 '코로나19 체크업(COVID-19 CheckUp) 앱' 입니다. 뭔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IT기술이 의학에 접목돼 임팩트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맛보기로 경험해본 일이어서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Q. '닥클'은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닥클프로젝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환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보다는 코로나19 환자들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코로나 환자의 10~20%만 입원치료가 필요하고, 이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선별해서 의료자원을 집중하면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닥클은 머신러닝과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triage, 즉 중증도 분류를 하기 위해 코로나19 앱을 만들게 됐습니다.
Q. 그럼 현재 이 코로나19 앱이 적용되고 있는 건가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같이 협력업체로 선정돼 현재 인도네시아에 적용하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여러 가지 법률 검토나 현지 병원과의 MOU를 진행 중이라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에 직접 적용하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당장 이 앱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환자들이 길거리에서 죽는 상황이 벌어지고 의료 인프라 자체가 부족해서 누구를 꼭 입원시켜야 하는지 잘 결정해야 합니다. 의사들 입장에서도 이 환자가 나빠질지 안 나빠질지 알기 힘들고, 한 의사당 200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면 현실적으로 다 회진을 돌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럴 때 환자가 직접 자기 증상을 입력하면 머신러닝이 그 증상을 기반으로 어떤 환자가 위험하고 앞으로 나빠질지를 의사한테 알려줍니다. 이렇게 되면 의사가 환자를 선정해서 더 집중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이 앱을 사용해 보신 의사분들은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들을 하나의 숫자로 평가할 수 있게 돼 이 환자가 어제에 비해서 오늘은 나아졌는지 혹은 나빠졌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여러 명의 환자가 있으면 A와 B 중에 누가 더 위험한지를 숫자로 볼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Q. 미래에는 코로나 말고도 다른 질병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코로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의사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Decision supporting tool과 같은 서비스의 효용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데이터가 많이 늘어나면, 진료하는 환자가 좋아질지 나빠질지에 대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머신 러닝이 알려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IT기술이 진료현장에서 의사들의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느꼈습니다.
사실 IT를 빼놓고 의학의 발전을 논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IT기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면 나중에 뒤처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 아니라 사회의 리더이기도 하니 메타버스나 AI, VR, AR과 같은 신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직접 코딩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IT 기술의 발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프로그래밍을 하다보면 힘든 점도 있을 거 같습니다.
힘들기보다는 내가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든 앱이 환자분들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이 두렵기는 합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보니 그런 면에서 사실 부담도 많이 됩니다. 지금도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만들면서 이게 정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Q.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도 사실 궁금한데요, 어떤 직장이라던가 어떤 위치를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임팩트를 낼 수 있을까가 저한테는 제일 중요하거든요. 의대생 때부터 목표 설정에 대해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왔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내가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였어요.
Q. IT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의대생들이 코딩을 공부하는 것을 추천하시나요?
사실 요즘 그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향후 어떤 일을 할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일단 대학병원에 남아서 연구를 많이 한다면 데이터를 다루는 Python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직접 필요한 순간에 공부하는 것이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니 굳이 학생 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레지던트 때나, 이후에 전문의 따고 나서는 워낙 시간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공부하려면 너무 힘든 것이 사실이예요. 왜 하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한번 프로그래밍에 대한 논리를 익히면 나중에 다시 기억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원리로 좀 쉬어요. 그러니 한번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 연구에 관심이 없다 해도, 사실 IT를 빼놓고 의학의 발전을 논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IT기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면 나중에 뒤처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 아니라 사회의 리더이기도 하니 메타버스나 AI, VR, AR과 같은 신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직접 코딩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IT 기술의 발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프로그래밍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코딩을 의학을 공부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학공부는 사실 기초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하는데,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처럼 기초부터 코딩을 시작한다면 너무 질릴 수도 있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냥 재미있는 것부터 하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성취감을 빨리 느낄 수 있고 피드백이 빨리 되는 그런 일들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결과물이 오래 걸리면 지치고 힘드니까 조금의 노력으로 재미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보상이 빨리 되는 일들 위주로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추천을 좀 하자면 데이터 분석하는 게 재미있다면 python이 도움될 것이고, 앱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Flutter라는 개발 툴이 간단하고 유용하니 한 번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