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분명히 위험"…국가책임제 시급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분명히 위험"…국가책임제 시급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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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해 위험 땐 공권력 개입·(준)사법입원 도입·보호자의무제 폐지 바람직
공공 '비자의 호송 체계' 마련·신청입원제 신설·치료비 전액 국가부담 시급
대한조현병학회 추계학술대회 성황…'조현병 국가책임제' 등 심층 진단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이 11월 12일 열린 대한조현병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국가책임제: 사법입원과 보호자의무제도'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이 11월 12일 열린 대한조현병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국가책임제:사법입원과 보호자의무제도'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제 필요성이 제기됐다. 자·타해 위험 시 공권력 개입, (준)사법입원 시행과 보호자의무제도 폐지, 공공 '비자의 호송 체계' 마련 등이 관건이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은 11월 12일 열린 대한조현병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국가책임제:사법입원과 보호자의무제도' 발제를 통해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방치된 조현병 환자가 타인을 해하는 사건을 최소화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전체 조현병 환자의 인권·권익을 보호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김영희 연구원은 먼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언론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비 정신질환자 보다 낮다며 편견을 버려야한다고 에둘러 강요하고 있지만, 제시된 각종 통계를 제대로 살펴보면 잘못된 분석이라는 지적이다. 

2016년 조사에서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비 조현병 환자의 4분의 1 정도로 집계됐지만, 살인·방화 등 강력범죄로 특정해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살인은 약 5배, 방화는 8배 넘게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높다. 강력범죄를 일으킨 조현병 환자들은 대부분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임의중단·거부)였다. 조현병 환자의 실상을 전체 정신질환 수치로 왜곡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정신질환과 연관된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이 수감되는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입소자의 절반이 조현병 환자이고, 그들 중 43.3%가 살인죄였다. 국립법무병원이 개원한 이래 조현병 환자 비율이 50% 이하로 내려간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존·비속 살해 가능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국내에서는 연평균 38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가운데 존비속 살인은 약 85건을 차지한다. 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정신질환과 연관성이다. 존속살해 39.6%, 비속살해 28.7%가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다. 존속살해와 연관된 정신질환은 거의 100%가 조현병이며, 비속살해도 우울증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한다. 

국내 조현병 평생 유병률(0.4∼0.7%)을 감안하면 비 조현병 환자 보다 존속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은 95∼250배 높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이 수치는 적절한 치료를 유지하고 있는 조현병 환자까지 포함한 유병률이어서 이들을 제외하면 존속살해 가능성은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다.

김영희 연구원은 "이런 실상은 누구도 말하기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한다. 환자 단체는 펄펄뛴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조현병 환자의 절대 다수는 치료를 방치하거나 받지 못한 상태"라며 "조현병 환자가 결코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치료를 거부한 환자는 분명히 위험하다. 이같은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져야 정책이나 제도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라고 단언했다. 

김 연구원 자신이라도 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 연구원은 가톨릭의대 출신으로 실제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다. 33년째 조현병 환자인 형을 집에서 돌보고 있다.  

그렇다면 조현병 국가책임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국가책임제 전제조건으로는 ▲응급·행정입원 활성화 ▲응급·행정입원, 외래치료지원(명령) 등 비자의 치료비 전액 국가 지원 ▲신청입원제 신설·보호의무자제도 폐지 등 비자의 입원 조건 개선 ▲공공 비자의 호송 체계 마련 ▲(준)사법입원제 도입 ▲커뮤니티케어 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먼저 행정입원 활성화를 통해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가족 유무나 동의여부에 상관없이 공권력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호의무자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현재는 조현병 등에 대한 입원의 90%를 가족이 결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게 과도한 의무와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고 있는 상황이다. 보호의무자제도는 서구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동아시아권에서도 한국·중국에서만 존치하고 있다.

엄격한 비자의입원 요건도 개선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치료 필요성만 있어도 비자의입원이 허용된다. 

대안으로 제시된 신청입원제는 가족이나 후견인이 입원을 신청하면, 경찰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결정을 통해 일정기간을 입원시키는 방식이다. 신청입원 후에는 전문의 판단에 따라 (준)사법입원 심사 청구 를 통해 행정입원이나 외래치료지원(명령) 대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조현병 환자의 치료와 권인을 위한 법 환경의 이해' 심포지엄의 좌장을 맡은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왼쪽)·최준호 한양의대 교수(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현병 환자의 치료와 권인을 위한 법 환경의 이해' 심포지엄 좌장을 맡은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왼쪽)·최준호 한양의대 교수(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공공 '비자의 호송 체계' 마련도 중요하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조현병 환자 이송을 가족이나 사설 이송단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설 호송을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고 비자의호송 조항 신설, 정신건강 전문의에 의한 비자의호송 필요성 실시간 판단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준)사법입원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판사정원제 등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는 준사법입원이 더 적절하다는 인식이다. 현재 정신질환 환자의 입원을 결정하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폐지한 후 (준)사법심사기관으로 대체하고, 일정 경력을 갖춘 전직 판사·검사·변호사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다.

치료비용 전액 국가 부담도 주장했다.

김영희 연구원은 "자·타해 위험성이 있어야 비자의입원이 되는데 왜 보호자에게 치료비를 내야 하나"라며 "국가가 자타해 위험이 있어서 비자의입원을 시키는데 치료비용 역시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병 국가책임제 발제가 이뤄진 '조현병 환자의 치료와 권익을 위한 법 환경의 이해' 심포지엄에는 이밖에도 ▲정신질환자의 인권담론: 인권인가, 치료인가(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신응급체계 수행을 위한 관련 법령 개정(이해우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권익을 위한 국공립병원의 역할 및 입적심 현황(전진용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 등의 강연이 이어졌으며,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최준호 한양의대 교수(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가 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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