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낙태약' 사용법부터 내놓은 정부, 산과 "직권남용" 제동

'먹는 낙태약' 사용법부터 내놓은 정부, 산과 "직권남용" 제동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21.11.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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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전문가 자문회의 소집...임신중절의약품 안전사용법 초안 공개
산부인과의사회 "근거법도 없는데 허가·사용 논의부터?" 항의 후 퇴장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의협신문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가 경구용 인공임신중절의약품 도입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정부는 먹는 낙태약의 국내 도입에 대비해 일단 사용법 등을 구체화하자고 나섰는데, 산부인과의사회 등은 법적 근거도 없이 의약품의 허가나 사용법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정부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신중절의약품 안전관리방안'을 주제로 24일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었으나, 양측의 이견만을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 측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 의료계 측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학회,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등이 참석했다.

먹는 낙태약 국내 사용, 식약처 구상은?

국내 첫 경구용 임신중절의약품 '미프지미소(성분명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국내 공급사 현대약품)' 허가 건을 검토 중인 식약처는 이와 별도로 의약품의 안전관리방안을 마련하자며 이날 회의를 소집했다. 

진단과 처방, 조제와 복용, 후속조치 등 낙태약 사용법에 관한 논의를 구체화하자는 제안이다. 의제도 구체적으로 던졌다. 낙태약 사용법과 관련한 일종의 정부 초안이다.

전제는 전문의약품으로서의 분류다. 일단 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의사의 진료와 처방 하에 사용하도록 한다는 원칙은 섰다. 

낙태약 진단과 처방 자격은 '임신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의사'로 제안됐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포함해, 타 과 전문의까지 처방 자격을 확대하는 안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요구와도 맥을 같이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의약품 접근권 보장을 이유로 특정 진료과목으로 처방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최근 식약처 전문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처방의 권한을 산부인과 전문의로 제한할지, 아니면 역량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타 전문과목에도) 처방권을 부여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자문회의를 통해 논의를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협신문
임신중절의약품 안전관리방안(식품의약품안전처)

조제 및 복용에 관한 사항으로는 1제인 미페프리스톤 성분에 한해 '보건의료인 지도 하에 복용'하게 하는 것으로 정부안을 내놨다.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 200mg 1정과 미소프로스톨 200㎍(mcg) 4정으로 구성된 콤비팩 형태로, 미페프리스톤 1정을 먼저 먹고 하루 뒤에 미소프리스톨 4정을 먹는 것을 용법으로 한다. 

미페프리스톤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해 그 작용을 방해해 자궁내막을 탈락시키는 기전으로 임신을 종결시키며, 미소프리스톨은 강한 수축을 일으켜 탈락된 조직들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부가 복용관리 자격을 부여하자고 제안한 '보건의료인'은 의료인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현행 법률상 의료인이라 함은 의사·간호사·조산사를 포함하며, 보건의료인은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자격·면허 등을 취득하거나 보건의료서비스에 종사하는 것이 허용된 자로 약사와 간호조무사, 의료기사까지 포괄한다.

후속조치와 관련해서는 '7∼14일 후 병원을 재방문해 임신중절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정부안이 마련됐다. 투약 후 2주 내에 처방 병원을 재방문해 임신중절이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한 후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조치들을 취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산과의사회 "근거법도 없는데 허가·사용 논의부터?" 퇴장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정부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후, 이날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낙태죄 처벌 규정이 효력을 잃어 낙태행위가 처벌되지는 않지만, 후속 입법안들은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라면서 "이런 입법 공백 상황에서 낙태약 허가가 이뤄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법적근거가 없는 만큼 아직까지 낙태약은 불법의약품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한 김 회장은 "식약처가 가교임상조차 하지 않고 허가를 내려는 일련의 행위는 직권 남용에 해당하며, 낙태죄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을 먼저 허가하는 것은 의사가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는 방조하는 행위가 된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시일이 걸리더라도 가교임상을 거쳐 안정성을 확인한 뒤, 산부인과 병·의원의 관리 하에 약품이 신중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낙태약 허가·도입 논의는 '속도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김재연 회장은 "낙태약의 도입은 코로나19 백신처럼 시간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며 "선거를 앞둔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약물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이 마련된 후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순서다. 그럼에도 식약처가 무리하게 허가를 추진한다면 직권 남용으로 고발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낙태약 사용법을 열거한 정부 초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냈다.

해당 의약품의 진단과 처방 자격은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의사 즉 '산부인과 의사'로 제한해야 하며, 조제 및 복용 또한 임신종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산부인과 의사의 지도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후속조치로서 임신중절 확인 기한을 2주 내로 못 박은데 대해서도 "임신주수에 따라 매주부터 주수에 따라 한달간 병원을 재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 측의 반발로 회의가 무산되면서, 정부는 이날 준비해 온 안전사용 논의 안건을 테이블에 올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부인과의사회가 법 개정을 논의 시작의 전제로 못박으면서 차기 회의 일정도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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