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정책, 메커니즘 디자인이 필요하다

의료 정책, 메커니즘 디자인이 필요하다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2.08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케냐·탄자니아 vs 짐바브웨·남아공...'코끼리 사냥·상아거래' 처리 결과 비교
의료 정책설계자, 당위성만으로 일방적 자원 쏟아붓기...누군가를 강제하는 정책 등 성공하기 어려울 것

# 1989년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 개체수가 급감했다.
당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종, 식물 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아의 거래와 코끼리 사냥을 금지할 것을 각국에 권고했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코끼리 사냥과 상아 거래를 금지했고, 짐바브웨와 남아공은 코끼리 사냥을 허용하고 사냥한 사람이 상아를 가져가서 소유하는 것을 허용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케냐와 탄자니아에서는 코끼리 개체수가 급감하고, 짐바브웨와 남아공에서는 급증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짐바브웨와 남아공은 코끼리 사냥을 합법화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자신의 소유지 내에서만 코끼리 사냥을 허용한 것이다. 이 규정하에 토지 소유자들은 자신의 소유지 내의 코끼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그래야만 지속해서 사냥과 상아 획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케냐와 탄자니아에서는 여전히 정부는 단속해야 했고, 코끼리 사냥꾼은 이를 피해 밀렵과 밀수출을 했다.

#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개 들자면, 농촌지역에 의사와 의료기관이 없어지고, 의사들은 소위 편하고 돈이 되는 과에 몰린다. 환자들은 지역의 의료기관을 가지 않고 대도시로 몰리고, 주요 대도시에 사는 환자들은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온다.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의사들의 진료는 많은 검사와 의료행위로 연결되고 있고, 대학병원이 동네의 병원이나 의원과 경쟁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가까운 병·의원에 가기가 어렵고, 편의시설이 있는 큰 병원이나가야 진료를 보기가 원활한데 그나마도 환영받지 못하기 일쑤이다.

문제가 없는 나라가 있겠냐마는, 문제는 그 해결 방법이다. 공공의대를 만들고 공공의료원을 만들면 해결된다면서, 국회의원들은 각 지역마다 의대와 병원을 지을 돈을 달라고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과잉 검사나 치료를 막겠다면서 이것저것 기준을 세워서 삭감하지만 의사들은 또 다른 검사와 치료로 옮겨가고, 경증환자 비율을 제한한다고 하니 이에 걸리지 않는 진단명을 넣기 시작한다. 장애인 주치의 제도나 장애친화 검진기관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장애인 당사자도 별로 이용하지 않고, 신청하는 의료기관이 별로 없는 상태이다.

# 2007년도 노벨 경제학상은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이론을 창시하고 발전시킨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게임의 룰을 정하는 예술이자 과학이다. 참여자인 각 개인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정책 설계자는 각 참여자가 설계자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센티브의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목적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각 지역마다 우후죽순 공약으로 나오는 공공의대나 공공의료기관 문제를 보자.
그러면, 각 지역마다 공공의대나 공공의료원을 지어주면 지역 의료 문제가 해결될까?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지역민 다수가 무조건 찬성한다. 자신들을 아무 부담이나 제한 조건이 없는 반면, 그 지역에 학교나 병원이 들어오면, 그 자체로서 지가가 상승하고 일자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을 지역의 자체 예산으로 지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에서 돈을 걷자고 하면? 또는, 지역 내 의료문제 해결이라는 취지에 맞게 타 지역까지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웬만한 질환은 그 지역의 공공의대 출신 의사에게만 진료받아야 하거나, 공공의료기관에서만 진료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게 되면? 아마 지역민들이 먼저 자신의 지역에 공공의대나 공공의료기관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과연 공공의대 의사들은 10년 의무 복무를 못 채웠을 때 장학금을 토해내게 하거나, 의사면허를 박탈하면 순순히 지역에 남아서 일을 할까? 필자가 그 입장이라면, 오히려 돈이 되는 전공을 가서, 위반에 따른 장학금은 빨리 벌어서 토해내겠다고 생각하거나, 의대 졸업장만을 가지고 외국에서 의사면허시험을 보려고 할 것 같다. 혹시 10년을 지역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대도시 지역으로 움직일 것 같다. 이런 조건으로 의대에 입학해야 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일반 의대 입학생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다.

차라리, 인구가 적고 의료기관이 적은 동네일수록 경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기본적인 의료기관 운영비를 보전해주고 의료수가를 가산해주면 어떨까? 지방에 젊은 의사들을 억지로 근무시키려고 강제하느니, 자녀교육을 마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이룬 50∼60대 의사들이 주 3일 정도씩 교대근무로 지방과 서울을 오가면서 반퇴(半退)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일단 필자가 그 입장이라면 할 만할지 생각해보면 해볼 만할 것 같다.

# 보건의료는 특성상 자유시장경제만으로는 풀 수가 없다.
공공의 선을 위해, 어느 정도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책 설계 시에는 이 시장에 참가하는 이해관계자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반응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당위성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자원을 쏟아붓거나, 누군가를 강제하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각 이해관계자가 개별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동시에 이 행동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적의 제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를 실행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턱대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의료기관을 만들거나 돈을 쓰고, 규제와 벌칙을 강화하자는 것은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가장 하수(下手)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이 케냐와 탄자니아를 더 닮은 것 같아서 걱정이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