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신년특집 대한민국 의료, 초고령사회 준비 시급

2022년 신년특집 대한민국 의료, 초고령사회 준비 시급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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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진료권 폐지·보장성 강화 대책 여파…의료비 급증
대학병원 분원 신설·원정진료 등 환자 쏠림 부작용…지역의료 붕괴

▶ 의협신문·의료정책연구소 공동기획 ◀

광복과 함께 급조한 의료제도의 틀 안에서 1977년 저부담·저급여 구조로 설계한 의료보험제도는 곳곳에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40년이 넘은 의료제도에 대해 의료 공급자는 물론 이용자인 국민과 관리자인 정부와 보험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의 땜질식 처방은 코로나19를 비롯한 한국 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중병에 걸린 한국의료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반대와 비판만 하기에는 때가 급하다.

[의협신문]은 [의료정책연구소]와 함께 2022년 신년특집 '3·9 대선을 겨냥한다'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실마리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대한민국 의료, 초고령사회 준비 시급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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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민 생명 지키기 위한 안전망 구축 (문성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4. 공익(公益) 위한 의료, 민간 의료와 함께 (임선미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5. 고통뿐인 '의료분쟁'…화해 위한 제도 개선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6. 백약이 무효 '저출산·고령화 대책' 확 바뀌어야 (김계현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부장)
7. 일자리 보고(寶庫) 보건의료서비스…전체 산업 2.36배 (오수현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8. 코로나19 숙제, 전문성 부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김진숙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코로나19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급기야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대기하다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위기에 직면했다. OECD 국가 중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12.4개로 일본(12.8개) 다음으로 많은 나라에서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표면상으로는 코로나19 환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입원할 병상이 부족한 것이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면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동안 누적되어 온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600달러에 불과한 1977년 당시 북한과의 체제경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면서 재원 부족으로 인해 '저수가·저부담·저급여'의 기조로 추진되었다. 그 이후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하면서 저수가를 양(量)으로 메꾸는 '3분 진료'가 고착되었다. 양으로도 메꿀 수 없는 적자는 '비급여'로 대신했다. 

'3분 진료'와 '비급여'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주홍글씨'다. 지난 시절 의사들은 공급자로서 현실에 안주하여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는 앞장서지 못한 채 한편으로는 자조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실용적으로 이를 용인하고 때로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과거 경제개발 시대에 국가는 국민의 궁핍한 삶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보건의료 분야는 소홀히 했다. 대신 민간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1973년 8월 17일 의료법을 개정해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 통로인 의료법인을 허용했다. 의료분야에 대한 민간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민간 중심의 보건의료 서비스체계가 성장 발전하게 되었다. 

초고령사회 대비 '통합 의료복지체제' 혁신
생애 전주기 의료·요양·돌봄 연계체계 구축…공공의료 기능 재정립
1차 의료·지역 중소병원, 건강증진·질병예방·만성질환관리 역할 강화

국민소득이 점차 증진되어 국민의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수요가 일어났지만 1999년 2월 28일 舊 의료보험법 제32조를 개정해 의료법에 따라 개설한 의료기관은 별도의 지정 절차 없이 모두 의료보험요양기관이 되도록 하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시행하면서 의료 서비스의 다양성에 대한 국민의 선택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당연지정제의 영향으로 서비스의 다양성 대신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병상 수 늘리기에 매달리면서 기관당 병상 수가 1000개가 넘는 메가급 대학병원(Mega-hospital)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정부 정책도 지난 20년 동안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급성기 질환 보장성 강화를 지속한 결과, 우리나라 보건의료 지표들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낮은 수가로 인해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과잉진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정부는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지난 1989년 행정구역에 따른 진료권을 설정하고 1차·2차·3차 의료기관 간 의료이용체계(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1998년 지역 간 공급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규제 개혁 차원에서 진료권 개념을 폐지하면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자유방임형 의료이용체계가 고착되게 되었다. 자유방임형 의료이용체계의 토대 위에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나라 의료비 증가 추세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건의료비는 1970년 2.6%(OECD 평균 4.6%)에서 2000년 3.9%(OECD 7.1%)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노인 인구 비율이 2010년 10.8%에서 2019년 15.7%로 증가하면서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10년 5.9%에서 8.2%(2019년)로 9년 만에 39% 증가했다. 

특히 2010년에서 2015년(6.7%) 사이 5년간 0.8%가 증가한 것에 비해 2015년에서 2019년 사이 4년간에는 1.5%가 증가하여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의 연간 증가율이 이전 5년간에 비해 2.3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증가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지난 2017년 8월부터 시행한 대형병원 위주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케어)'이다. 

보장성 강화 대책 이후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더욱 심해지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에 정부는 2019년 9월 4일 상급종합병원을 중환자 중심 진료기관으로 개편하기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하고, 대형병원의 경증환자를 줄여나가고 중증환자 진료를 늘리도록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과 수가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정책의 동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우리나라의 의료비 급증 추이와 다르게 우리보다 먼저 급속한 인구 고령화를 겪은 일본이 1987년 노인 인구 비율 10.9%에서 1997년 15.7%로 급증하는 동안 의료비가 6.4%로 동일했던 것을 보면 단지 고령화의 영향만으로 의료비가 급증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건강보험제도와 문화·낮은 수가·많은 병상 수와 외래 진료 횟수·급격한 인구 고령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고령화에 따른 경상의료비 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결정적 요인으로는 병상 기능을 '고도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구분하고 지역별, 기능별로 필요한 병상 수를 산정하여 높은 의료비를 유발하는 고도급성기와 급성기 병상의 무분별한 증설을 억제할 수 있는 의료이용체계에 관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자유방임형 의료이용체계로 의료비 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큰 대비를 보인다. 

그런 가운데 최근 수도권 대학병원이 대거 분원 신설을 추진하면서 의료비 증가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지방의 의료 붕괴에 대한 경고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는 상급종합병원과 달리 지자체장이 인허가 권한이 있는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 분원 신설로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대학병원과 지역 민심을 의식한 정치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KTX를 타고 수도권 대형병원 원정진료를 하는 환자가 급증하는 상태에서 수도권 대학병원이 분원을 대거 설립하면 병상 자원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되고 보건의료비가 급증할 뿐만 아니라, 진료보조인력(PA) 문제, 의사 수 부족 논란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하게 되고, 더 나아가 지역 의료체계 붕괴로 인한 농촌 노인 인구의 도시 유출로 지역소멸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공공의료의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공공의료가 뭔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조차 확립되어 있지 않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에 따르면 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가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여 설립·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을 뜻한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정의에도 같은 법 제7조(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에서 규정하는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등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는 조직 내부 반대와 기관장의 의지 부족으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민간의료기관과 전혀 차이가 없이 수익성 진료에 몰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현재 6만 병상이 넘는 공공병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입원이 필요한 코로나19 환자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센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필수의료 문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2020년 장폐색이 있는 대장암 환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 전처치를 시행하다 사망한 사건에 대해 금고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사건, 2021년 수술실 CCTV 설치를 강제화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 등은 2022년도 전공의 모집에 악영향을 끼쳐서 필수의료 과목 지원자들이 급감했다. 게다가 최근 소장폐색환자에서 경과 관찰을 위한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외과의사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은 필수의료에 대한 확인 사살 행위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지금 시점에 메가급 병원을 중심으로 한 급성기 위주의 의료체계는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 이미 OECD 주요 선진국들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급성기 치료 중심의 의료시스템에서 의료·요양·돌봄이 통합하여 생애 전주기를 전인적으로 케어하는 통합적 의료복지체제로 바뀌고 있다.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를 맞게 되는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의료제도 혁신에 나서야만 한다. 

초고령사회를 위한 의료제도 혁신은 자원의 효율성을 우선으로 추진해야만 된다. 1차 의료기관과 지역 중소병원의 건강관리 역할을 강화하여 건강증진·질병예방·만성질환관리 등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고, 상급종합병원에서부터 요양병원에 이르기까지 지역별·기능별 병상 자원의 수요를 정확하게 산출하여 질병의 시기와 생애 전주기를 고려하여 의료와 복지가 연계된 지역 완결형 의료·요양·돌봄 연계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공공의료의 기능과 정의를 재정립하고 감염병 병상 등 특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도 별도로 설립해 운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차기 정부가 직면하게 될 보건의료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될 것이다. 향후 노인 인구의 증가는 과거 10년과는 다른 차원의 의료비 폭증을 유발할 것이기에 지금 혁신하지 않으면 위기를 피할 수 없다. 

3·9 대선에서는 초고령사회를 위한 의료시스템 개선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대비할 수 있도록 대한의사협회가 보건의료 분야 최고의 전문가 단체로서 각 당에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정책에 반영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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