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공적 재정 공급하는 모든 의료기관 포함
건강보험제도 도입으로 모든 의료기관 '공익 의료' 수행
▶ 의협신문·의료정책연구소 공동기획 ◀
광복과 함께 급조한 의료제도의 틀 안에서 1977년 저부담·저급여 구조로 설계한 의료보험제도는 곳곳에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40년이 넘은 의료제도에 대해 의료 공급자는 물론 이용자인 국민과 관리자인 정부와 보험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의 땜질식 처방은 코로나19를 비롯한 한국 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중병에 걸린 한국의료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반대와 비판만 하기에는 때가 급하다.
[의협신문]은 [의료정책연구소]와 함께 2022년 신년특집 '3·9 대선을 겨냥한다'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실마리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대한민국 의료, 초고령사회 준비 시급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2. 저출산·고령화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3. 국민 생명 지키기 위한 안전망 구축 (문성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4. 공익(公益) 위한 의료, 민간 의료와 함께 (임선미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5. 고통뿐인 '의료분쟁'…화해 위한 제도 개선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6. 백약이 무효 '저출산·고령화 대책' 확 바뀌어야 (김계현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부장)
7. 일자리 보고(寶庫) 보건의료서비스…전체 산업 2.36배 (오수현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8. 코로나19 숙제, 전문성 부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김진숙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공공'이란 말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책에 모두 붙는 단어가 되었다. '공공버스'·'공공주택'·'공공농업'·'공공병원' 심지어는 사업 주체가 아닌 활용 데이터에도 '공공데이터'란 표현이 접두어처럼 사용된다.
의료에서도 '공공'이란 용어는 최근 더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으로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정책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고, 일부 정책수립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며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막대한 예산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법률에서 정의하고 있는 '공공보건의료'란 '모든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지칭한다(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주요 선진국들도 공공의료는 공적 재정이 투입되는 의료행위를 주로 지칭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다. 영국 'National Health Service(NHS)'를 'Publicly Funded Medical Care'라고 부르듯이 영어권 국가들은 공적 재정이 공급되는 의료를 공공의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공의료의 정의만 살펴봐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을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는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 보장을 위해 건강보험제도를 도입(1989년 7월)했고,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공공의료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개념이 모호한 '공공 의료'라는 표현 대신 '공익 의료'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저수가 개선,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공익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민관이 협력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도입하는 등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위 공공병원인 국립대학병원과 지방의료원 등은 민간의료기관과의 차별화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화하고, 대다수의 민간의료기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공익 의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표 1>.
첫째, 공적 재정을 지원받는 의료기관의 공익 기능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 재정을 지원받는 국립대병원은 교육·연구 등의 기능을 강화하고, 민간의료기관에서 수행하기 힘든 특정 질환(희귀 난치 질환 등)의 진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아울러 소외계층 진료·감염병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등 사회적 책임 이행으로 기능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100%로 확대하며,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관리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국립대병원 100% 재정지원 '교육·연구' 강화…특정질환·소외계층 진료 기능 전환
민간병원 국가 매입 통해 넘쳐나는 병상 문제 해결…'공익 의료자원' 확충해야
지역사회 필수의료 지속하려면 국공립 병원 신설 대신 민관 협력체계 효율적
내년 6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민관 협력의원' 개원…민관 협력 시범모델 주목
정부·지자체·지역 의료기관·지역 주민 '참여'…지역의료 안전망 구축 성과
둘째, 민간병원이나 병상을 국가가 매입하여 공익 의료자원을 확충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가 당장 국가 소유의 의료기관을 모두 신설하여 운영하기에는 막대한 재정과 시간이 소요되며 현재 의료기관의 넘쳐나는 병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차라리 국가가 필수의료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민간병원을 매입해 국공립법인으로 변경하여 직접 운영 또는 민간병원의 병상만을 매입해 병상의 관리는 민간에서 하되 관리운영비를 지원하는 방향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영국이 NHS 체계를 도입할 당시 병원을 매입하여 국유화한 사례가 있다. 또한 일부 국가들은 '공공-민간 동반자 관계(Public-Private Partnership:PPP) 전략'을 채택하여 보건의료서비스를 일부 민간에 위탁해 왔다. 영국의 경우 국가가 모든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므로 PPP의 일종인 민간자본 이니셔티브(Private Finance Initiative, PFI)를 추진하였다.
프랑스는 부족한 공공의료자원 확보를 위해 1970년부터 공공의료서비스 병원(Service public hospitalier, SPH) 개념을 도입하여 국립병원뿐만 아니라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민간비영리병원(Participation au Service Public Hospitalier, PSPH)도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랑스는 국립병원, 공공이익참여 민간병원(Etablissements de sante prives d'interet collectif, ESPIC), 민간 영리병원으로 세 가지 형태의 기관이 조화를 이루면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전체 공공의료서비스의 비중은 병상 수 기준으로 75.8%(병원 수 기준으로 67.3%)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역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PPP 일환의 보건의료 서비스 개선을 중점과제로 삼았고, 민간의료기관이 정부를 대신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면 재정·시설 및 장비 지원, 기부금 조성 등 자금 조달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감세정책을 시행하였다.
일본은 비영리 의료기관인 특정의료법인과 특별의료법인에 대해 수익사업을 허용하고, 보험진료 수입에 비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셋째, 필수의료 분야 민관 협력체계 확립을 통해 국가 보건의료 안전망 구축을 마련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지역의 우수병원', '거점병원 지정', '필수의료 병원' 등 개념이 모호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병원의 신설·지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필수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병원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병원을 신설해도 인력확보가 미흡하고 적자가 발생하면 운영이 어려워 폐업하는 등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민관이 협력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인력·시설·장비 등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내년 6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우리나라 최초 '민관 협력의원'이 개원할 예정이다. 전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이 사업은 국비·지방비 각 50%를 들여 건물 신축과 의료장비 등을 지원하고, 민간 의료인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서귀포시의 '민관 협력의원' 시범모델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권역·지역 의료기관 및 지역주민 참여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통해 지역의 의료안전망을 구축하게 된 정책 성과라 생각된다.
민관 병원이 '치료'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의료수준을 같이 고민하고 협력하여 공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더 이상 모호한 '공공의료'의 용어에 휩싸여 재정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공익적 기능을 하는 모든 의료기관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보상, 민관 협력 방안 등 정부의 일관성 있는 지원과 정책을 추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