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상투약기와 자동조제기로 대표되는 조제 관련 기술의 발달이 약계, 나아가 보건의료 분야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한약사회는 약국의 화상투약기 설치 허용 여부를 논의하려고 8일 만났다. 마치 음료수 자동판매기와 비슷한 이 화상투약기는 앞쪽 한면에 커다란 디스플레이 패널이 설치돼 약을 구입할 때 약사에게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복약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앞서 논란이 됐던 일반약 자동판매기가 복약지도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보완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약국 문을 닫아도 이 화상투약기는 24시간 설치한 지역 어디에서든 운용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든 복약지도와 약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화상투약기 설치를 반대하는 측은 약을 판매할 수 있는 장소는 약국으로 한정돼 있다며 약사법 위반을 주장했지만 화상투약기가 없던 시절에 만든 규제로 기술의 발달을 막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약계에 따르면 개국 약사의 약 35%는 중형 국산차 한 대 값이 나가는 '자동조제기(ATC)'를 두고 있다. 한 해 자동조제기 시장은 350억원을 넘었다. 마치 서랍장처럼 생긴 자동조제기는 약국 종업원이 각 서랍(조제판)마다 특정 약을 넣어두면 처방전을 읽은 컴퓨터가 명령하는 대로 포장된 약을 뱉어낸다.
얼마 전 창원지법은 약사가 아닌 종업원이 약을 조제기에 넣고 의약품을 조제한 혐의로 피소된 약국의 대표 약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약사가 약을 분배하는 종업원을 관리·감독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약사의 조제가 "자동조제기로 대체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봤다.
관리 약사 한명만 있으면 처방전의 바코드를 읽는 프로그램과 자동조제기가 몇 명의 약사를 거뜬히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조제기와 화상투약기의 단계적 도입은 익숙했던 약국의 모습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이러다 약사가 AI 약사와 자동조제·복약시스템으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만 하다.
그 어느 보건의료 전문직보다 기계의 대체율이 빠르고 클 것으로 예상되는 약국의 변화 속에서 의료계 역시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