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원격의료 정책 현황과 대응 방안 연구' 발간
국내외 정책 현황·관련 법 검토·회원인식조사 종합 4가지 방안 제시
의사 인식 변화…의협 주도·일차 의료기관 중심 땐 수용 가능 의견 ↑
원격의료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4년 진행한 원격의료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찬성 3.5%, 반대 95.2%로 압도적으로 반대의견이 높았지만, 올해 설문조사에서는 찬성 34.8%, 반대 65.2%로 격차가 크게 줄었다.
여전히 반대 의견이 높았지만 이렇게 손놓고 있다가는 의료계가 원격의료 대응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74차 정기 대의원총회에서는 ▲의료사고 및 책임 ▲적정 수가 보장 ▲1차 의료기관 중심 ▲회원의 권리 보장 등의 전제 하에 의협 집행부가 비대면 진료(원격의료)에 대한 연구 및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회무를 추진하도록 일괄 위임했다. 말 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원격의료 봉인은 해제됐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원격의료 정책 현황과 대응방안 연구>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원격의료에 대해 의료계가 마주할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지고 미리 대비할 내용들에 대한 지혜의 폭을 넓히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먼저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격의료 시행 규정이 완화됐다. 초진 허용, 지역·질환 제한 완화, 항목 증가, 활용기술 범위 확대 등이 시행됐고, 원격의료 수가가 적용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국가는 국가 혹은 민간 주도로 EMR 통합시스템을 구축했거나 추진 중에 있으며, 관련 앱도 개발돼 활용 중이다.
해외 의사들도 대면진료를 더 선호했지만 재정적 문제 혹은 원격의료 경험 환자의 만족도에 따라 향후 원격의료를 대면진료와 함께 활용하겠다는 인식이 높았으며, 오진율은 대면진료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또 대부분 원격의료 시행 이전에 법·제도 정비를 먼저 진행했다.
원격의료에 대한 회원 인식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전체 응답자 955명 중 65.2%가 원격의료에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원격의료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미검증으로 인한 오진 가능성'을 가장 많이 선택했으며, 반대 응답자 중 61.5%는 원격의료 허용 시 총파업 등 전면 투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반대 응답자의 38.3%는 '원격의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의협이 주도할 경우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해 원격의료 시행 주체가 관건으로 부각됐다.
원격의료 허용시 제한 조건에 대해서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까지 모두 찬성'(53.8%), '초진 불가, 재진 허용'(72.5%), '지역·대상 제한없이 모두 허용'(46.7%), '의료계에서 허용하는 질환으로 제한'(58.9%)', '의원급 한정, 병원급 이상과는 협진'(57.4%), '수가 수준은 대면진료보다 높게 책정'(50.1%) 등으로 다수 응답을 보였다.
연구보고서는 이론적 논의, 국내외 정책 현황, 관련 법 검토, 회원 인식 조사 결과를 종합해 의료계의 원격의료 대응 방안으로 ▲원격의료 반대:현재 입장 유지(PLAN A) ▲의료인 간 원격의료(원격협진) 활성화(PLAN B) ▲의사-환자 간 원격모니터링만 찬성(PLAN C)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진단·처방) 찬성(PLAN D) 등 4가지 플랜을 제안했다.
각 플랜을 의료계 입장으로 내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우려되는 점은 없을까?
첫 번째로 원격의료 반대를 견지하려면 반대 논거를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다른 대면진료 보완 수단에 대한 지원 강화 역시 제안해야 한다. 또 원격의료 강행 시 투쟁 등을 고려해야 하며, 원격의료 제도화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국회 압박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원격의료 정책에서 주도권 상실, 산업적 측면이 강화된 제도화 가능성, 회원 간 내부 갈등 문제, 투쟁 불가피성과 회원 피로도 증가 등은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의료인 간 원격의료 활성화에는 사안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인지도를 높이고, 원격협진 시스템을 의협 주도로 개발해야 한다. 일차의료기관의 원격협진 활성화를 위해 의료정보화·표준화 사업을 실시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이 방안 역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저지 방안으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며, 회원 간 내부 갈등 문제도 남게 된다. 원격 협진 사업은 확장성이 있기 때문에 환자 회송-의뢰 서비스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세 번째는 의사-환자 간 원격모니터링만 찬성하는 방안이다.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을 제안하고, 원격모니터링의 대원칙은 대면진료이며, 원격모니터링은 건강관리 수단이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또 의협이 시범사업 및 실제 제도 시행의 주도권을 행사하며, 대상기관은 환자가 있는 지역 내 일차 의료기관으로 한정해야 한다.
적정한 수가와 관련해 의료계와 사전에 협의해야 하며, 의료계에서 허용하는 질환으로 제한해야 한다. 원격모니터링 월 단위 관리 환자 수도 설정해 원격모니터링만 전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방안도 회원 간 내부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원격의료시스템 자체에 대한 거부감 및 수용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반발도 예상되며 책임소재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정부가 결국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원격모니터링은 일차의료기관의 수익모델 가능성이 높아 적절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며,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의료의 안전성·유효성·비용경제성 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찬성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시행하기 전에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제안하거나 전화상담·처방 데이터 연구 분석 등을 통해 원격진료의 의학적 안전성, 임상적 유효성, 기술적 안전성, 비용 경제성 등에 대한 검증을 우선 실시토록 해야 한다. 또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원격진료는 보조수단임을 명확히 하고, 의협이 원격진료 시행의 주도권을 갖고 전용 플랫폼을 개발·관리해야 한다.
원격진료 대상 기관은 일차의료기관으로 한정하며,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막기 위해 환자 위치 기준 지역 내 일차기관에서 실시토록 한다. 적절한 수가 산정은 의료계와 사전 협의토록 하며, 초·재진 여부, 질환 제한, 월 진료 환자 수 등 제한 요건과 법적 책임 소재도 규정해야 한다.
원격진료를 시행할 경우 원격모니텅링 방안 처럼 내부 갈등, 원격의료 거부감, 병원급 반발 등이 빚어질 수 있으며, 의료의 질 저하, 편리성을 추구하는 환자와 안전성을 주장하는 의사 사이의 간극 해결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일차의료기관 수익모델 가능성, 원격의료 검증 등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원격의료 제도화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연구 책임자인 김진숙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이슈로 원격의료 활성화라는 세계적 흐름, 고령화시대로 인한 만성질환자 중심 의료 환경 변화, 국민의 의료접근 편의성 요구 증대 등 원격의료 제도화에 대한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아진 시점"이라며 "이 연구는 정부의 원격의료 제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의협의 입장 변화에 따라 필요한 각 플랜들을 제시함으로써 대비해야 할 사안들을 검토하고, 의협 차원의 대응방안을 제안하고자 수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보고서는 원격의료에 대한 의협 입장을 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초 자료이며, 원격의료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연구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덧붙였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도 "이번 연구는 특정 정책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원격의료 관련 국내외 현황을 살펴보고 의협이 향후 정부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형 개발에 주안점을 뒀다"라면서 "의료계 내에서 예민한 주제인 원격의료에 대해 보다 정확한 사실과 정보에 근거한 올바른 정책 대응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