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대중 인기에 영합해 전문가 비판 억누르려는 유혹 존재
의료관련 입법과 의료 정책 형성…전문가인 의료계 목소리 잘 반영되길
1960년대 중국 문화 대혁명의 시대. 만삭의 산모가 산통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는 의사가 없다. 반동 학술권위자로 타도 당해 감옥에 갔기 때문이다. 대신 흰 가운에 붉은 완장을 찬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산모와 가족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산모가 갑자기 출혈이 심해지자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허둥지둥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산모는 결국 사망한다.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영화 '인생'의 한 장면이다. (▶관련 영상)
얼마 전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anti-intellectualism)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반가웠다. 그간 필자가 [의협신문]을 통해서 쓴 칼럼들을 관통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는 '전문가와 지식인을 혐오하고, 지성주의를 적대하는 태도'이다. 반지성주의자들은 지식인들이 대중과 격리된 엘리트일 뿐이며, 그들 스스로가 대중의 의견을 대변하는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부추기며, 보통 사람의 판단력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나 전문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료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영역이라 반지성주의의 대표적인 영역이다. 당장 TV에서는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결과와 같은 전문지식보다는 'OO가 몸에 좋다'는 식의 비전문가의 허위정보가 판친다. 대중에게 쉽게 먹히기 때문이다.
2008년에도 광우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은 촛불시위로 이어졌고, 백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현대의학에 대한 반감은 안아키 운동,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주어진 상황에서 의사가 최선의 판단을 했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료과실 또는 적어도 설명의무 위반이라며 대중적 비난 또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다. 이렇게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가의 식견은 종종 대중의 정서 앞에 무력해지곤 한다.
의료 정책도 마찬가지다.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의 공포 와중에 정부는 공공의대를 추진했는데, 심지어 공공의대 후보 학생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추천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의사들의 반대는 '이기적이고 돈 밖에 모르는 비윤리적인 의사 집단'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당했고, 머리 좋은 학생이 아닌 인성 좋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졌다. (▶관련 칼럼)
2021년에는 의사들을 믿을 수 없으니 수술실에 CCTV를 달아야 한다는 입법이 실제로 이뤄졌다. 세계의사회조차 이 법안을 전체주의적인 사고 방식이라며, 의료행위에서의 신뢰 붕괴와 환자 프라이버시의 침해 위험을 경고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관련 칼럼)
최근에는 선거와 맞물려 '남성형 탈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화해주겠다는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의 원칙과 급여화 우선순위에는 맞지 않았지만, 남성들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관련 칼럼)
전문가들은 100% 확신을 가지지 않는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는다. 생산성이 동반되지 않는 최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만 낳을 것이고, 과도한 부동산 규제는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했었으나 정책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시행됐다.
정책은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고 대중의 바람을 반영해야 하겠지만, 전문가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 정책이 실제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용할지를 예측해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근본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해결방안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에 대한 열린 공론화 과정 없이 만들어진다. 실생활과 관련이 많고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료 영역은 더욱 그렇다. (▶관련 칼럼)
최근의 예를 들다 보니 위의 내용에 전 정부의 비판이 주를 이뤘지만, 반지성주의의 대표사례는 미국의 반공주의 매카시즘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련 없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 전문가들의 비판을 억누르려는 유혹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대통령이 반지성주의를 언급한 만큼, 의료관련 입법과 의료 정책 형성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의사들과 의료인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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