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3법 통과 이후에도 면책 불가능...데이터 활용 제도적·행정적 한계
의료 데이터 주체 '환자·의료진' 권리 보장·자산가치 인정...유출 책임 완화 제안
의학회 학술대회, 김재선 부산대 법전원 교수 "의료행위 본질·특수성 인식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의료정보와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불명확한 법과 제도부터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6월 17일 열린 '2022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Digital Transformation시대의 다양한 의료계 대응' 세션(좌장 한상원 의학한림원 부원장/이진우 대한의학회 부회장)에서 김재선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건의료 데이터 연구 활용에 관한 법령 정비' 주제 발표를 통해 "디지털 전환(트랜스포메이션) 추세 속에 가장 중요하게 풀어나가야 할 쟁점은 데이터 개방과 활용에 관한 법·제도적인 정비"라고 지적했다.
2020년 데이터 3법(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데이터 3법은 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금융위원회 등 각 정부 부처별로 나뉘어 있어 발생하는 중복 규제를 없애는데 초점을 맞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개인과 기업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안전하게 처리한 가명정보를 활용, 새로운 서비스·기술·제품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데이터 3법 개정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제정을 계기로 가명정보 활용 시 IRB 심의와 동의 면제 등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의료정보 활용 권리·재식별 가능성·책임 분배·상업적 이용 등의 쟁점을 놓고 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등이 맞물려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현행 법령과 규정으로는 면책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데이터 제공과 활용의 발목을 잡는 문제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의료법에서는 의료정보의 제3자 제공을 본인과 가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고, 의료정보 유출 시 정보 누설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의료정보를 가명 처리 하더라도 재식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보를 제공하는데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가명 정보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 시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하더라도 여전히 의료법과 경합 관계가 남아 있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 관한 행정청의 해석은 있지만 판례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의료 데이터의 핵심 주체는 환자와 의료진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환자는 정보 주체로서 열람·정정·삭제·전송 요구권의 주체다. 환자는 보안 문제와 정보 활용에 관한 우려와 동시에 의료 접근성·치료 편익 향상에 관한 기대도 있다. 아울러 의료인은 의료정보를 작성 관리하는 주체로서 편집권·사용권·접근 통제권 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의료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한 인센티브가 부족한 점도 산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의료진과 산업계는 의료정보와 데이터를 대하는 근본적인 자세와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는 점도 짚었다.
김 교수는 "의료기관과 의료의 본질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의료진은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협력적 관계"라면서 "의료진은 데이터의 활용과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해관계자들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의료정보 주체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법적·제도적인 정비와 지원에 무게를 실었다.
김 교수는 "동의에 기반한 실명 정보 활용 절차와 익명 조치를 간소화 하고, 규제 체계의 명확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보안 규칙을 정비해 재식별 위험과 정보 유출 시 책임을 완화하고, 정보 활용에 관해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비식별 조치 간소화를 통해 면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연구 목적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규제 체계의 명확성, 정보 주체의 권리 확보, 절차 간소화, 인센티브 마련, 보완성 확보, 데이터의 의미 있는 활용 방안에 대한 방향성 제시 등을 전제해야 한다"며 "의료계에서도 디지털 전환에 관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학회 학술대회 패널토론에 참여한 정연희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도 "의료 데이터와 관련된 법안이 흩어져 있어 일관된 법 적용과 해석이 어렵고, 가이드라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안정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있어 굉장히 쟁점이 많고,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의 생각도 많이 다르다. 데이터를 활용했을 때 오남용되지 않고, 안전하게 간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부분부터 신뢰를 구축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지점부터 차근차근 법제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