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부족 및 생명경시 풍조 확산 우려
단일법에 연명의료·호스피스완화의료·조력존엄사 포함 혼선 초래
조력존엄사의 최종 이행의 결정 주체인 의사의 보호방안 미흡 지적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회복할 수 없는 말기 환자가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것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가 부족하고,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만연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지난 6월 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안규백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조력존엄사대상자 및 조력존엄사의 정의를 신설(안 제2조제10호·제11호 신설)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도록 하고, 이를 심의·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둠(안 제20조의2·제20조의3 신설) ▲조력존엄사대상자로서 대상자 결정일부터 1개월이 경과하고, 대상자 본인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인에게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한해 조력존엄사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함(안 제20조의4)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의 적용을 배제함(안 제20조의7) ▲관리기관 등에 종사하거나 종사했던 사람과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근무하거나 근무했던 사람이 조력존엄사 및 그 이행에 관해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유출해서는 아니 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안 제32조)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안규백 의원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80%가량의 성인들이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응답을 하는 등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종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라고 하더라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본인의 의사로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며 법률개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의협은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 부족 ▲생명경시 사회 풍조 만연 우려 ▲자살예방법과 상충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 우선 마련 등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 구성 문제 및 객관적 평가 근거 미비 ▲조력존엄사의 최종 이행의 결정 주체인 의사의 보호방안 미흡 ▲단일법에 상이한 특성의 세 가지 제도를 포함하여 혼선 초래 ▲용어 정의 명확화 및 구체화 작업 필요 등을 이유로 조력존엄사법을 반대했다.
■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 부족
의협은 "존엄사 및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매우 다양하며,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강조한 측면과 윤리를 강조한 측면에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제화는 시기상조"라고 분명히 했다.
■ 생명경시 사회 풍조 만연 우려
생명경시 풍조 확산도 우려했다.
의협은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임종기에 국한한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결정은 자기결정권과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에서 고민하도록 하고, 동시에 어떤 경우에도 임종에 이르는 과정을 앞당기도록 시간을 단축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연명의료중단은 남은 삶에 인위적인 생명의 단축은 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기여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무의미한 의료 활동을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내용"이라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이런 시기에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활동이자 의료"라고 짚었다.
그러나 "조력존엄사는 생명을 앞당기는 행위로 연명의료결정 중단이나 호스피스완화의료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고, 이 또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만큼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만연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 자살예방법과 상충
의협은 "법률개정안은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과 상충되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2019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1위 국가인 실정에서 조력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국가가 자살에 대해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 우선 마련해야
조력존엄사보다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법률개정안과 같이 조력존엄사 허용을 위한 법개정보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질환의 확대를 비롯한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과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심리사회적 지원을 위한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종기 연명의료여부에 관한 논의를 좀 더 일찍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연명의료 관련 질 높은 상담과 사회저변 확대가 필요하며, 인생 후반부에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또한 의료인들의 경우 말기와 임종기를 달리 적용하면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진행된 의료진 교육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 구성 문제 및 객관적 평가 근거 미비
법률개정안에 따르면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가 조력존엄사 대상을 심사해 결정하게 되는데, 해당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고위공무원, 조력존엄사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윤리 및 심리 분야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의협은 "우리나라에 조력존엄사 관련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있을 지와 보건복지부 장관과 고위공무원이 조력존엄사 대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윤리 및 심리분야 전문가도 위원이 될 수 있으나, 의사가 아닌 해당 전문가가 환자의 현재 상태를 평가하거나 판단할 근거나 자료가 없어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실정"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해당 위원회가 객관적인 평가 없이 합법적인 자살을 허용해 주는 잘못된 결정내릴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더군다나 "심사결정 기한이 명시돼 있지 않아 심사가 지연되는 경우, 말기 환자의 상태 변화에 따른 현장에서의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조력존엄사의 최종 이행의 결정 주체인 의사의 보호방안 미흡
법률개정안은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 의협은 "조력존엄사는 살인과 자살이라는 법적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단순히 자살방조죄를 면책한다고 해서 환자의 죽음에 따른 법적 문제를 비롯한 윤리적 문제, 가족문제, 민사문제, 종교적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대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단일법에 상이한 특성의 세 가지 제도를 포함해 혼선 초래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호스피스완화의료'라는 두 가지 상이한 사안이 동일한 법에 제정돼 혼선을 초래하는 면이 있으며, 실제로 연명의료결정 관련 사항은 보건복지부 대행처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사항은 보건복지부 대행처로 중앙호스피스센터가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협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력존엄사라는 사안을 연명의료결정법에 추가할 경우 법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이를 시행하는 의료현장의 혼선 초래는 물론 대상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 용어 정의 명확화 및 구체화 작업 필요
용어 정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문제도 짚었다.
의협은 "법률개정안에서는 '조력존엄사 대상자'란 말기환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말기환자라는 용어 자체가 사전적·사회적·의학적 정의가 없는 용어"라고 밝혔다.
또 "존엄사는 그 자체로 조력 사망의 의미를 내포하는 용어"라면서 "존엄사, 안락사, 연명의료 중지, 조력 사망 등 죽을 권리를 존중하는 다양한 용어의 정의를 통일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