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기생충 감시 질환 22종 불과... 비법정 기생충질환 감시체계 필요
외국 여행 시 감염 유행 주시...장기 체류했다면 기생충감염 검사 받아야
기생충질환은 잠재적인 공중보건 위협요인이다. 정부는 22종을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3급 말라리아는 전수감시, 4급에 속하는 장내기생충 6종, 장관감염원충 4종, 외국유입 기생충 11종은 표본감시기관을 지정하여 환자 발생을 신고받는 수동감시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팬데믹 이후 한국은 2020년 1월 1일 법정감염병 분류체계를 질환의 특성을 고려한 '군'별 분류체계에서 감염병의 심각도·전파력·격리수준·신고시기 등을 중심으로 '급'별 분류체계로 개편했다.
식품매개를 통한 감염 사례 여전
이제 기생충질환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하는 감염병이 아니다. 1971년 1차 전국 장내기생충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기생충 감염률은 84.3%로 회충과 편충 등 토양매개성 기생충이 대부분이다.
그 후 경제발전과 생활수준 향상, 화학비료 사용, 상수도 시설 확대 보급, 치료제 사용으로 토양매개성 기생충 질환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2012년 8차 전국 장내기생충 실태조사에서는 전체 기생충 감염률이 2.6%로 감소했다.
토양매개성 기생충질환은 감소 추세지만 식습관에 의해 발생하는 식품매개 기생충 감염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 기생충 왕국으로 불리던 상황을 돌이켜 보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한국에서 기생충질환이 공중보건의 위협요인으로 꼽는다면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기생충질환이 유행하고 있다. 휴전선을 기점으로 경기 북부에서는 말라리아(Plasmodium vivax) 감염, 강 유역을 중심으로 낙동강, 섬진강 일대에 유행하고 있는 간흡충(Clonorchis sinensis)과 장흡충(Metagonimus sp.)을 포함한 식품매개 흡충류 감염이 대표적이다.
2019년 장내기생충 감염조사는 32개 시군에서 30,41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장내기생충 양성자는 1,528명으로 양성률은 5.1%로 나타났다. 기생충별 양성률은 간흡충 3.1%, 장흡충 1.7%, 편충 0.2%, 참굴큰입흡충 0.1%로 조사됐다. 과거 높은 양성률을 보인 회충과 구충은 검출되지 않았으며, 편충은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여전히 검출되고 있다.
지역별로 감염률을 분석한 결과 경상남도가 9.2%로 가장 높았다. 다른 병원체 감염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기생충질환은 종종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와 의사에게는 오진의 확률을 높이므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기침·흉통·폐기능 저하 등으로 인해 결핵으로 오인되는 폐흡충증(Paragonimiasis)은 적절한 치료의 지연을 초래하게 된다. 이때 환자의 생식 등에 대한 과거력은 식품매개 기생충증을 진단하는데 필수적인 단서가 된다.
영상진단기술 발달로 검출 사례 증가
식품매개성 장내 기생충질환은 소화기관 또는 폐 등에 감염되는데 대개 대변에서 충란을 검출하는 진단이 통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고충 조직감염과 폐흡충, 개회충 등에 의한 이소기생은 소화기관이 아닌 다른 장기로 이행하여 기생하므로 대변검사로 진단할 수 없다.
과거 조직 감염 기생충은 외과적 수술을 통해 병변 부위에서 성충이나 충란을 확인해 진단하고 치료했다.
최근 영상진단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장기 이행 기생충 감염증 검출이 가능하다. 개회충·폐흡충·고충 등과 같은 이소기생 또는 조직감염 기생충은 CT·MRI·초음파 등의 검사를 통해 조직 병변을 확인한 후, 혈액 내 항체가를 측정함으로써 진단해 치료하고 있다. 소화기관에 감염되는 기생충증도 건강검진이나 이상 증상을 확인하기 위한 내시경 검사를 통해 충체를 비교적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원충이나 조충 등에서는 유전자 진단을 통한 종 동정까지 이어지는 임상보고 사례가 있다.
영상진단기술 발전으로 과거에는 잘 발견하지 못한 기생충증을 확인하는 사례도 있다. 뇌염의 원인으로 최근 원충 감염례가 늘어나고 있을뿐 만 아니라 최근에는 뇌를 파먹는 아메바로 불리는 '발라무시아 만드릴라스(Balamuthia Mandrillaris)' 감염 사례도 연이어 보고되고 있다. 앞으로 조직 병변 영상 판독에 희귀 기생충 질환에 의한 증례도 염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외국 감염 유행지 여행력 반드시 고려해야
최근 5년간 외국여행 후 발생한 기생충 감염은 총 6종류의 유입사례가 있다. 방광주혈흡충·포충증·열대열과 난형열 말라리아 혼합감염 등 3가지 사례와 국내에서 감염 가능성이 낮은 기생충질환인 바베스열원충증·구더기증·유충 피부이행증 등의 3가지 사례가 확인됐다.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2019년 카메룬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돌아온 여행자가 발열 증상을 보여 열대열 말라리아(Plasmodium falciparum)로 진단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5주 후, 다시 발열 증상이 나타나 다시 검사를 진행했는데 현미경과 항원신속진단키트에서 검출되지 않은 난형열 말라리아(P. ovale)가 유전자 증폭 검사(PCR)를 통해 검출됐다. 난형열 말라리아는 간에 잠복하는 특성이 있어 발현이 지체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환자는 국내에서 유행하지 않는 말라리아 2종의 혼합감염 사례로 보고됐다.
이 사례는 이전에 말라리아 치료를 받은 사람이라도 잠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말라리아 감염을 의심해야 하며, 감염 강도가 낮거나 잠복 상태 말라리아가 의심된다면 PCR 검사 실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외국여행이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위드코로나 정책과 엔데믹 단계로 조정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어 여행자 증가로 인한 기생충 감염 위험 또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여행 환자는 솔직하게 생식 및 여행력을 전달해야 하며, 의사는 환자의 증상뿐만 아니라 문진을 통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외국여행자 중 기생충질환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장기 체류했다면 귀국 후에 증상이 없더라도 방문 국가에서 유행하는 기생충감염 검사를 받아야 한다.
22종에 해당하지 않는 비법정 기생충질환에 대한 감시체계가 없어 발생 현황을 정확하게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 전문의들의 임상사례 보고는 일부 기생충의 간헐적인 감염과 외국 감염사례 증가 등 공중보건 위험요인을 경고하고 있다.
비법정 기생충질환의 발생은 전체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하지만 잠재적으로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병원체의 발생 현황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정책적인 노력과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