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죽음의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출발해야"
2022년 6월 15일 안규백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제2조는 조력존엄사대상자 및 조력존엄사의 정의를 신설하고 있다. 개정안 제20조는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의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서 조력존엄사 신청을 심의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연명의료중단 혹은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관련된 사회적 논의를 하고 입법적 준비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안과 관련해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존엄사'라는 용어의 모호성을 인식해야 한다. 형법학자 사이에서도 존엄사의 정의가 다르다. 김일수 교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라 정의했다. 이는 미국 오레곤주의 'Death with Dignity Act'를 번역한 것이다.
반면 이형국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회생불가능한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존엄사라 정의했다. 전자는 적극적 안락사의 일종이고 후자는 소극적 안락사의 일종이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대법원은 '김할머니 사건'에서도 존엄사라는 용어 대신에 '연명치료중단'이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했다.
국민에게 존엄한 죽음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거의 100%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반대할 국민도 많다. 따라서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회적 논의를 할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둘째, 조력존엄사법안은 법익 보호에 있어 불균형을 초래한다. 가령, 음주의 사회적 해악이 크다고 편의점에서 맥주에 해당하는 알코올 도수 이상의 술 판매를 금지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다가 갑자기 소주 판매만 허용한다면 매우 불균형적 조치일 것이다.
현재의 연명의료결정법은 말기환자와 임종기환자를 구별해 임종기환자만 연명의료중단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말기환자는 아예 연명의료중단, 즉 소극적 안락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 안락사의 일종인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는 것은 입법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셋째, 의사조력자살은 의사의 기본적인 역할과 배치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윤리지침 제36조 제2항은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의업의 세계에서 진료중단과 같은 소극적 행위는 폭넓게 인정될 수 있지만 의사조력자살과 같은 적극적 행위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성격이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의사조력자살을 금지하기도 하고 허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사협회 의료윤리규약(AMA Code of Medical Ethics)은 의사조력자살이 의사 윤리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조력존엄사법안은 환자가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의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매개로 모든 의사에게 의사조력자살을 요구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의사윤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입법 형태다.
넷째, 조력존엄사법안은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의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조력존엄사 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합당하지 않다.
국가는 후견적 입장에서 민간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국민의 삶에 대해 국가가 직접적으로 최종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국민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개별적 국민에게 특정 직업을 가질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고 있는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 정부 소속 위원회가 직접적으로 의사조력자살 여부를 결정하는지 의문이다.
조력존엄사법안은 죽음의 문제 중에서 특수한 일부 사례를 해결하겠다는 접근방법이다. 이는 연명의료결정제도와 비슷한 한계를 갖고 있다. 이미 제도화된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의료기관, 특히 대형병원 중심의 제도다.
마찬가지로 조력존엄사가 입법된다 해도 의사조력자살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요양시설이나 집에서 겪는 죽음에는 여전히 큰 문제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죽음의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조력존엄사법안이 언론의 화두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의 죽음의 모습에 문제를 느끼는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죽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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