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 오디세이아-공공의료와 공공정책 수가

한국의료 오디세이아-공공의료와 공공정책 수가

  •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8.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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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공공·민간 똑 같이 공공성 높은 의료 제공
세계 1위 병상수…초고령 사회 앞두고 병상 감축 '의료개혁' 필요
공공병상 신·증축 대신 공공·민간 협력…환자·가치 중심 정책 펴야

ⓒ의협신문
ⓒ의협신문

저수가로 인한 박리다매식 진료가 만든 3분 진료 문화, 의사 1인당 과도한 업무량, 의료분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사회적 갈등,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속에 규모의 경제로 무한 확장하는 대학병원 분원 문제, 공공의료기관 확장으로 인한 민간의료기관의 생존 위협, 대학병원-지역중소병원-1차의료기관의 기능 미분화로 인한 의료계 내부 갈등,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료비 급증 등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 드러난 어두운 그림자는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되고 있다.

오는 2025년이면 우리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 인구의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 사회를 맞게 된다. 초고령 사회에는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로 말미암아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발생한다. 대한민국 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해서는 결코 미래의 비전은 없다. 초고령 사회와 함께 들이닥칠 건강보험재정 위기가 보건의료의 위기를 넘어서 국가 위기로까지 대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의 위협 요인들을 사전에 제거하고 관행처럼 이어져 온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험난한 여정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만 한다. 

<한국의료 오디세이아>는 1977년에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45년 동안의 숨 가쁜 여정을 통해 현재 OECD 국가 중 최상위 보건의료 지표 달성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의료의 빛나는 성공신화 이면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명해보고, 그동안 성공 신화의 소모품처럼 여겨진 수많은 관련 분야의 땀과 수고와 헌신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의료 오디세이아가 초고령 사회를 앞둔 이 시점에 우리는 한국의료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혁신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공론화와 사회적 문제 제기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현행 공공보건의료법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로 '<span class='searchWord'>의료급여환자</span>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련된 보건의료' 등을 우선해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수익성 진료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협신문
현행 공공보건의료법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로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련된 보건의료' 등을 우선해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수익성 진료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우리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공공의료의 부족에 관한 주장들이다. 그동안 공공의료에 관한 레토릭의 패턴은 이러했다. 먼저 일부 편향적 시각을 가진 학자나 보건의료노조 등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수는 5.4%(OECD 55.2%), 공공병상 수로는 9.7%(OECD 71.6%)에 불과하여 코로나19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것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최상의 방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이후 언론이 받아서 '민간의료기관은 악이고 공공의료기관은 선'이라는 이념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러한 전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이제는 국민 사이에 "공공의료 확충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일상적으로 '공공의료'를 말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의료에 대한 학술적 개념은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공공보건의료법)'에 '공공보건의료'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되어 있다. 

아울러 '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가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여 설립·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영어에는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정의에 부합하는 용어 자체가 없다. 비슷한 개념의 용어로 'Public Health(공중보건)' 정도가 있는데, 이는 "사회, 조직, 공공 및 민간, 지역 사회 및 개인의 조직적인 노력과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과학·기술"로 정의할 수 있다.

현행 공공보건의료법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로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련된 보건의료' 등을 우선해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있음에도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수익성 진료에 몰두하고 있다.

2020년 1월 12일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와 더불어민주당·국힘의힘·정의당은 서울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지역 공공의료 강화, 의사 인력의 효율적 황용이 최우선 과제다!'라는 주제로 공공의료 강화 정책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했다.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2020년 1월 12일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와 더불어민주당·국힘의힘·정의당은 서울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지역 공공의료 강화, 의사 인력의 효율적 황용이 최우선 과제다!'라는 주제로 공공의료 강화 정책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했다.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공공의료기관장의 공공의료기관에 관한 인식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의료포럼 제5차 정책토론회'에서 경기도의료원장은 "경기도의료원 산하 병원들이 감염병 전담병원 해제 이후 지역환자 회복이 되지 않고 있어서 당장 직원 급여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면서 "다음번에는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을 거부하겠다"고 발언했다. 

공공의료기관장으로서 공공보건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를 정면으로 부정한 심각한 인식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장의 인식이 이 정도니 전체 16만 개 병상이 모두 다 공공병상인 영국과 비교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6만 개가 넘는 공공병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입원이 필요한 코로나19 환자 수천 명조차도 공공병상에 다 수용하지 못해 민간병상을 동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의 의료 대응에 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보건의료노조의 주장과 달리 민간병상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2022년 7월 11일 현재 코로나19 치명률은 0.13%로 영국 0.79%, 프랑스 0.47%, 이탈리아 0.87%, 스페인 0.84% 등 공공병상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나라들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간 투자로 설립된 민간의료기관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진료를 하도록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적용을 받고 있어서 공공의료기관이나 민간의료기관이 특별이 다른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똑같이 공공성이 높은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의료기관은 정부의 의료수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 심사를 통해 의료의 양과 질을 포함한 전 영역의 규제를 받고 있다. 

똑같이 국민건강 증진이란 공공적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공공의료기관과 달리 민간의료기관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 하나 없이 시장의 찬바람을 맞아가며 모든 운영의 책임을 개설자가 다 지고 있다. 그 자체가 불공정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구조 가운데도 우리나라는 주로 민간의료기관 의사들의 열정과 헌신에 기반하여 과거 열악한 보건의료 환경에서 현재 OECD 국가 최상위권의 보건의료 지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과잉경쟁으로 인구 1000명당 병원 병상 수가 12.7개로 OECD 평균(4.3개)의 2.95배에 달하여 지난해까지 1위였던 일본(12.6개)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는 심각한 병상 과잉 상태에 놓여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2025년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점차 병상 수를 줄여나가는 의료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노조 등을 중심으로 공공병원 신설을 지속해서 주장하고 있는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치과병원과 한방병원을 제외한 전체 의과 병원급 공공의료기관은 213곳 중 67곳(31.5%)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고, 민간의료기관은 3262곳 중 73곳(2.2%)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노조 가입률이 민간의료기관과 비교하면 14배 이상 높다. 

또한 최근 발표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일반간호사 평균임금이 4678만 원으로 파악됐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들의 간호사 연봉은 일반간호사 평균의 1.5배 수준이다. 노조의 단체교섭행동으로 인해 지속해서 임금이 오른 결과다.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보다 특별히 더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의료 수준이 더 높다고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급여만 높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
보건의료노조가 "돈보다 생명"을 외치면서 공공병상을 늘리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저의가 다른 데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병상이 과잉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 공공병상을 신·증축하면 주변 민간의료기관이 큰 타격을 입고 심하면 폐업에까지 이르게 된다. 정부가 혈세를 퍼부어 잘하고 있는 민간 기업을 망하게 하는 꼴이다. 

공공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 정의할 수 있다. 

공공성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의식적으로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담론이다.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담론에 대한 일종의 대항 헤게모니 담론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의·평등·공공복리를 추구하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성 담론은 신자유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에서는 예리하나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구축하는 데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공공성은 소유 주체를 강조하는 형식 중심에서 공공적 가치나 공공 성과를 강조하는 내용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계를 강조하고 주체를 구분하는 예리한 공공성에서, 체계의 특성과 주체의 본성을 존중하고 통합하면서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너그러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지속해서 공공병상을 신·증축하며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공공정책 수가'는 과거 정부와 확연히 다른 정책적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의료의 기준을 소유 주체 중심에서 가치나 성과 중심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윤석열 정부의 공공정책 수가와 유사한 정책으로는 영국의 '공공-민간 동반자 관계(Public-Private Partnership, PPP) 전략'이 있다. PPP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협력하여 사회간접자본이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동반자 관계를 맺거나 공공과 민간이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수행하는 공공서비스의 조달 및 제반 행위 등으로 정의된다.

프랑스에서도 부족한 공공의료 자원 확보를 위해 1970년부터 공공의료서비스 병원(Service public hospitalier, SPH) 개념을 도입하여 국립병원뿐만 아니라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민간비영리병원(Participation au Service Public Hospitalier, PSPH)에서도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공의료에 관한 그동안의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을 이제는 이만 종료하고 환자 중심·가치 중심의 정책을 펼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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